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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사업가는 왜 발가벗고 '벌'을 받았나

[김성수의 한국현대사] 오주석 간첩 조작 사건

등록 2020.07.25 15:23수정 2020.07.25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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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공산당이나 사회당이 합법화되어 있다. 그래서 공산당원이나 사회당원도 아무 제약 없이 국회의원으로 활동한다. 공산주의 문헌들도 손쉽게 일반서점에서 구할 수 있다. 재일동포들 또한 민단, 조총련 등 좌우이념과 무관하게 부모형제는 물론 친척, 친구, 지인들끼리 교류, 왕래하고 명절, 생일이나 집안에 혼사 등이 있을 때는 자유롭게 선물이나 금전 등을 주고받는다.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가 모국을 방문하거나 우리 국민이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 친척 등을 방문해 선물, 금전이나 소식 등을 주고받고 교류하는 것은 지난 박정희·전두환 정권에서는 아주 '바람직한' 일이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상황에서 박정희·전두환 정권이 주요 선거 때나 공안 정국을 조성할 필요가 있을 때 수시로 '대형 간첩사건'을 만들 수 있는 '황금어장'이 바로 재일동포나 일본을 방문한 국민들이었다. 일본에 사는 삼촌을 오랜만에 방문해 용돈을 받고 귀국하면 공안기관은 고문 끝에 그 용돈을 '공작금'으로 둔갑시켰다. 재일동포 친지와 반갑게 만나 서로 근황이나 소식을 주고받은 후 귀국하면 정보기관은 그를 잡아다가 고문 후 '국가기밀'을 누설한 '고정간첩 일망타진'으로 언론에 내보냈다.

오주석(1933- )은 잘나가던 사업가였다. 하지만 지난 1980년 일본을 한 번 방문해 재일동포 친지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파탄을 맞았다. 평온하던 오주석의 삶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오주석은 1953년부터 1961년까지 강원도 경찰국 경사로 근무했다. 그 후 경찰에서 퇴직하고 춘천 중앙시장에서 소매유통업을 하며 학교육성회 임원, 라이온스클럽 회원 등 지역 유지로 활동했다. 춘천시 소재 ㈜새시대체인의 영업이사로 재직 중인 1980년 5월 8일부터 5일 25일까지 오주석은 한국슈퍼체인협회 주관, 일본 ㈜가스미 스토아 초청으로 일본 유통업계 연수와 시찰 목적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그의 일본출장길에는 친척 김성규, 송아무개, 김아무개 등도 동행했다. 그는 일본에 출장 간 김에 이들과 함께 재일동포 친척들을 오랜만에 만나 술 한잔, 밥 한술을 함께 나누며 회포를 풀고 귀국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약 3년 후인 1983년 3월 11일 춘천시에 있는 오주석의 집으로 건장한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던 오주석에게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다짜고짜 그의 팔을 붙잡고는 질질 끌어 시커먼 차량 속에 밀어 넣었다. 공포에 떠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차는 어둠을 뚫고 몇 시간을 달렸다.

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끌려간 곳이 그 무서운 국가안전기획부(아래 안기부) 남산 분실이라는 것을. 안기부 지하실에서 오주석은 약 60여 일간 불법 감금된 채 가혹한 고문조사를 받는다.

안기부는 왜, 어느 날 갑자기, 그를 강제연행해 잔인하게 고문한 것일까?
 

안기부 남산분실로 향하는 터널. 수많은 국가폭력피해자가 이 터널을 지났을 것이다. ⓒ 지금여기에

   
침대봉으로 무수히 구타
 

1983년 10월 18일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오주석은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1983년 3월 11일 연행되어 10일간 수사관으로부터 침대봉으로 무수히 구타당하면서 (지난 1980년 일본 방문 때 재일동포) '안 아무개로부터 간첩 지령을 받았다고 자백하라'고 강요받았다. '단순한 친척 상봉에 불과하다'고 간첩 지령 자백을 완강히 거부 부인했더니 비눗물을 코에 붓는 등 고문을 당했다. 5월 초쯤 진술서 초안을 내놓고 베끼라고 해서 이를 베끼는 중 간첩 구절을 고쳐 쓰니 고문을 다시 가해 수사관의 작성 초안 그대로 작성했다. 간첩이 아니라고 극구 주장하고 수사관이 마음대로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에 날인을 거부했더니 수사관들이 삥 둘러싸고 위협하면서 전신을 묶고 '비눗물을 또 붓겠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날인을 했다.

구치소에서 검사가 신문을 할 때 (일본 출장 중에) 친척을 찾아간 것이지 간첩 활동이나 포섭 당한 사실이 없음을 털어놓고 공정하게 수사해 억울함을 없애달라고 탄원했다. 하지만 도리어 안기부 수사관이 구치소로 5~6차례 찾아와 '검사 조서대로 시인하지 않으면 다시 안기부로 가서 고문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처럼 처리할 것'이라며 위협했다.
 
옷을 모두 벗게 하고 벌 세워

지난 2007년 필자가 몸담았던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서 오주석은 1983년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연행 후에 안기부 수사관들이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자술서를 쓰라고 강요해서 외울 정도로 작성을 많이 했다. (잠을 못 잔 탓에) 졸려고 하면 옷을 모두 벗게 하고 벌을 서게 했다. 주 심문관이 '안아무개가 너를 포섭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대답하자 옷을 벗으라고 하더니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에 군용침대 각목으로 구타를 했다.

간첩을 했다는 진술이 사실이 아니어서 '진술을 바꾸겠다'고 하자 안기부 수사관이 손과 발에 몽둥이를 끼워 책상사이에 매다는 통닭구이 고문을 하고 얼굴에 수건을 덮고 물을 붓는 물고문을 했다. 멀쩡한 사람들 잡아다가 하루 이틀도 아니고 60일간 감금시켜놓고 면회도 안 시키고 전부 조작했다. 그런 나라가 어디 있나. 자기 국민을 간첩으로 만드는 나라가 어디 있나. 이해를 못 하겠다.
 
오주석의 친척 김성규는 지난 1983년 10월 18일 서울지방법원 5차 공판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1983년 3월 10일 회사에서 안기부로 연행되어 굵은 각목으로 구타당해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면 각목을 무릎에 끼어 꿇어앉게 한 뒤 위에서 힘껏 내리밟는 고문을 했다. 또 협박을 받아 수사관들이 작성한 조서를 베껴 쓸 수밖에 없었다.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김성규는 당시 안기부에서 고문 받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수사관들이 '안아무개를 조총련인지 알고 만나지 않았느냐'고 계속 물어봐 부인했다. 그러자 야전침대 각목으로 구타하고 그 각목을 무릎 뒤쪽에 끼우고 허벅지를 밟았다. 잠을 계속 안 재워서 너무 괴로워 수사관들이 원하는 대로 진술서를 수십 번 써주었다. '사형을 시켜버리겠다', '가족들도 조사하겠다'는 협박을 당해서 수사관이 불러주는 대로 진술서를 그대로 베껴 썼다. 또 검찰에서 조사받은 당시 안기부 수사관이 입회해 겁이 났었다.

네 아내도 옷 다 벗기고 수모 당하니 빨리 자백하라

오주석의 친척 송아무개도 진실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1983년 3월 9일 안기부로 연행되었다. 수사관들이 '네 아내도 끌려와 옆방에서 옷 다 벗기고 수모를 당하니 빨리 자백하라'고 협박하며 유서를 쓰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수건을 얼굴에 덮고 물을 붓기, 책상 사이에 올려놓고 뺑뺑 돌리기 등의 고문을 당했다. 무릎 사이에 각목을 넣고 비틀고 머리를 책상에 짓찧는 등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다.

물고문, 통닭구이 고문, 구타로 인해 하혈(항문에 피가 고이고 변을 볼 때 핏덩어리가 나옴)을 수차례 당했고 그로 인해 빈혈로 여러 차례 쓰러졌다.

검찰 조사 시 검사에게 억울하다고 했다. 그러자 서기가 안기부 서류만 보고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해서 서명, 무인을 하라고 했다. 그래서 거절했더니 검사와 서기는 나가고 안기부 수사관들이 들어와 말 못 할 고문을 당해 실신했는데, 깨어보니 손가락에 인주가 묻어 있었다. 그래서 너무나 억울해 법정에서 조서에 서명, 무인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글을 잘 못 쓰고 못 읽었던 오주석의 친척 재일교포 김아무개는 1983년 안기부에 연행된 후 상황을 진실위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물어봐서 답을 잘 못하니까 때렸다. 뭘 쓰라고 했는데 한글을 잘 몰라 쓰지 못하니까 수사관이 구두를 벗어서 때렸다. 그 이후로는 뭐 쓴 기억은 없다. 구두로 맞은 기억이 많은데 구둣발에 맞아 기절을 해서 깨어보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당시 오주석의 친척 송아무개와 함께 재소자였던 윤아무개는 1984년 2월 7일 서울고등법원 2차 공판에서 이렇게 당시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복역 중에 송아무개를 알게 되었는데 수사기관에서 맞아서 몸이 안 좋다고 송아무개가 말하는 것을 들었다. 처음 며칠 동안 그는 일어나지도 못하고 모든 거동을 할 수 없었으며 그가 대소변 보러 가는 것도 못 보았다.

오주석의 처조카인 이아무개는 진실위에서 당시 오주석을 교도소에서 면회할 때 그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수사관들이 잠도 못 자게하고 무지하게 때려서 괴로움에 벽에 머리를 부딪쳐 죽고 싶었다. 검찰 조사 때도 안기부 수사관이 찾아와 협박하고 괴롭혔다.
 
오주석의 친척 김아무개의 주치의였던 나아무개는 지난 2007년 진실위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안기부 수사관들이 간첩혐의가 있다는 김아무개를 응급실로 데려와 진찰 및 입원을 시켰는데 당시 김아무개는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의 전환장애 증상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김아무개가 간첩혐의로 조사받아 스트레스가 상당해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 판단했다. 그래서 나는 '치료상 김아무개와 심층인터뷰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위에서 '너무 깊숙이 인터뷰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소견서에는 '고혈압이나 다발성치핵이 있는 걸로 보아 다른 과 검진도 필요하다'라고 적었다.

진실위가 확인한 당시 공판기록에 첨부된 김아무개 주치의 소견서는 이렇게 기록되어있었다.
 
김아무개는 1983년 4월 5일, 4월 6일, 2회에 걸쳐 본원[중앙대학교 의과대학부속 성심병원] 응급실에 내원해 치료한 후 1983년 4월 6일 본원 신경정신과에 입원함. 입원 당시 불안, 불면증, 식욕부진, 흉부압박감, 심계항전, 두통, 현기증, 시력감퇴, 항문출혈 및 혀의 강직과 사지마비 증상으로 본태성 고혈압, 다발성치핵, 전환장애의 임상진단하에 치료한 후 1983년 5월 4일 퇴원함.
 
위와 같은 가혹한 고문조사를 받고 1983년 5월 16일 오주석 등은 서울지방검찰청에 송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이들은 국가보안법 제2조(간첩 또는 간첩방조), 형법98조제1항(간첩), 국가보안법 제4조제1항2호(간첩) 등 위반죄로 기소되었다.

이어서 1983년 11월 1일, 오주석은 서울지법에서 징역 10년, 자격정지 10년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이어서 1984년 3월 6일 서울고법에서 오주석은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을 선고받고 상고했다. 그러나 1984년 6월 26일 대법원에서 그의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그래서 결국 오주석은 5년 5개월을 복역한 후 지난 1989년 가석방되었다.
 

지난 2018년 <오마이뉴스> 변상철 시민기자와 인터뷰 하는 피해자 오주석씨 ⓒ 변상철

 
손해배상 청구 거부한 양승태 대법원
 

오주석 사건을 조사한 진실위는 지난 2008년 이렇게 진실규명을 내렸다.
 
안기부는 (오주석)피해자를 비롯한 피의자들을 영장 없이 불법연행한 후 수십 일에서 60일까지 장기간 불법구금한 상태에서 고문 및 가혹행위를 통해 피의자들의 허위자백을 받아내고, 보강증거를 날조하는 등 위법한 수사를 거듭했고, 검찰 수사과정에서도 안기부가 찾아가 협박을 계속해 간첩사건으로 조작해 처벌받도록 한 비인도적, 반인권적 사건이다.
 
위의 진실위 결정을 근거로 오주석 등은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신청했다. 지난 2010년 6월 26일 법원은 오주석 등 4명에게 사건 발생 27년 만에 누명을 벗겨주는 판결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당시 오씨 등의 자백은 수사기관의 불법연행과 장기간의 구금, 가혹행위 등에 의한 것으로 혐의를 입증할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오주석은 재심에서 무죄판결 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했다. 그리고 1, 2심에서 국가가 그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2013년 박근혜 정권의 양승태 대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양승태 대법원은 오주석 등의 손해배상 청구를 거부했다. 게다가 이미 가집행한 손해배상금을 고율의 법정이자와 함께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오주석은 현재 민사 재심을 신청한 상태다. 그는 요즘 하루하루 피가 마르게 사법부의 답변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 이 기사를 위해 도움을 준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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