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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착한 드라마라니... '슬의생'이 그립다

20.06.11 15:38최종업데이트20.06.11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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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 살인, 불륜, 대기업의 횡포. 최근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들이다. 다양한 채널과 미디어 매체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은 한 층 더 치열해졌다. 더 자극적이고, 더 극단적인 갈등을 내세워서 시청자의 관심을 잡아두려 한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강한 자극을 주는 드라마가 오히려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게 되었다. 이런 나를 사로잡은 드라마가 나타났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심지어 일주일에 한번 밖에 방송을 하지 않으니 손꼽아 다음 방송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자극적인 요소 하나 없이, 일주일에 한번만 방송하는데도 나는 12주간 이 드라마에 푹 빠지고 말았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은 5명의 의과대학 동기들의 이야기를 중심에 두고, 개성이 강한 조연들과 환자들의 에피소드가 매회 추가되는 형식이다. 12회가 진행되는 동안 보기에 불편한 장면이나 갈등이 전혀 등장하지 않았다. 보고 있노라면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거나, 조용한 숲길을 걷는 느낌이 들었다. 엔딩자막이 올라갈 때 쯤, "아...아쉽다"라는 느낌을 매번 던져주었다. 다음화를 위한 강력한 떡밥은 없었지만, 등장인물들이 자꾸 보고 싶어졌다. 

'슬의생'에는 악역이 등장하지 않는다. 극 초반 정원(유연석 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재단 이사장 자리를 둘러싼 갈등이 발생하는 듯했지만, 웬걸 정원과 주전무(김갑수 분)는 모두 자리에 마음이 없었다. 그나마 악역으로 끝까지 남았던 석형(김대명 분)의 바람 난 아버지도, 유서를 통해 부인과 자식에게 미안한 감정을 남겼다. 악역이나 소위 '빌런'이라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도 멋진 드라마가 될 수 있음을 '슬의생'은 보여주었다. 

이만큼 등장인물에 애착이 갔던 드라마가 없었다. 다섯 명의 주인공은 모두 수재급으로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다. 극중 서울대 의대 99학번 동기로 그려진다. 그런데 이 친구들 능력도 뛰어난데 마음도 따듯하다. 그나마 극중 까칠남으로 그려진 준환(정경호 분)도 아이의 죽음을 맞이한 가족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레지던트 도제학(정문성 분)을 위해 모두가 귀찮아 하는 외과과장을 맡는다.

매력적인 등장인물 만큼 드라마에 중요한 요소가 있을까? '슬의생'은 주인공 다섯명을 비롯해 각 과의 레지던트로 등장하는 장겨울(신현빈 분), 추민하(안은진 분), 도제학(정문성 분) 등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들이 가득했다. 심지어 의대 실습생으로 등장한 윤복(조이현 분)이와 홍도(배현성 분)마저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그들을 지켜 보는 것만으로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 

러브라인은 시청률을 견인하는 드라마의 핵심요소이다. '슬의생'에서 드라마 전체를 통해서 이어지는 유일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슬의생'에는 4 가지의 러브라인이 등장한다. 준환(정경호 분)과 익순(곽선영 분), 정원(유연석 분)과 겨울(신현빈 분), 송화(전미도 분)를 둘러싼 두 남자 익준(조정석 분)과 치홍(김준한 분) 그리고 석형(김대명 분)과 민하(안은진 분). 이들의 이야기가 보는이를 설레게 했다. 네 가지의 사랑이야기가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과하지 않으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심쿵'을 선사해 주었다. 

사람들이 드라마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명장면에는 항상 좋은 음악이 등장하곤 한다. '슬의생'이 음악을 사용하는 방법은 독특했다. 주인공 다섯명의 실제 연주를 통해서 드라마의 음악이 연주되었다. '미도와 파라솔', 추억이 담긴 밴드 모임을 통해 멋진 음악을 들려주었다. 이를 위해 실제 등장인물들은 오랜시간 연습을 거듭했고, 멋진 연주 장면을 남길 수 있었다. 매회 등장하는 밴드 연주 장면은 드라마에 활력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보는 이들의 마음에 더 깊이 '슬의생'을 각인 시켜 놓았다. 

병원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환자들의 이야기이다. 의학드라마에서 환자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을 수 없지만 잘못하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슬의생'에 등장하는 환자와 가족들은 평범하다. 하지만 그들이 다섯 명의 주인공을 만나면서 특별해졌다. 더 따뜻하고 더 가까운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보여주었다. 환자의 죽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에서도 그들은 따스했다. 건강하게 퇴원한 젊은 아빠가 아들과 짜장면을 먹기로한 어린이날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장기 기증이 결정되고 장기 적출을 담당한 익준(조정석 분)은 수술실에서 밤 12시가 넘기를 기다리자고 제안한다. 매년 어린이 날을 아버지의 제사날로 보내야 할 어린 아들을 생각해서였다.

마지막 회에서는 윤복(조이현 분)과 송화의 얽힌 과거가 밝혀지며 눈물 짓게했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야 했던 윤복은 어머니를 끝까지 돌보던 젊은 의사 선생님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어머니를 살리고자 끝까지 노력했던 그 의사의 모습을 기억하며 의사의 꿈을 키워 왔다. 그 때 어머니를 살리고자 끝까지 매달렸던 의사가 송화(전미도 분)임을 알게 된 순간 윤복은 "어머니가 너무 보고싶어요"라고 말하며 송화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슬의생'에 등장하는 모든 에피소드는 아름답다. 때론 슬픔으로 마무리 되었지만 그마저도 따뜻했다. 

드라마가 끝나고 2주가 넘게 흘렀지만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극적인 이야기 중심이 아니라 등장인물이 기억에 남는 드라마여서 그런 것 같다. 자꾸만 그 사람들이 보고싶어 진다. 현실이 '슬의생'과 너무 달라서 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시즌2가 내년 초에 방영된다고 하니 끝은 아니다. 그때까지 '미도와 파라솔'의 노래를 들으며 그리움을 달래 보련다. 
슬기로운의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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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분야에서 오랫 동안 일해오고 있습니다. 역사, 인문 등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요즘은 기술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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