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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슬기로운 심판 생활'의 조건

[주장] ‘존중과 신뢰’도 심판하기 나름이다

20.05.25 13:21최종업데이트20.05.25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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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kt wiz의 경기. 공에 맞은 주심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프로야구 KBO리그는 최근 심판들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스트라이크존 판정 문제로 심판조 전체가 강등당하는가 하면, 심판이 선수에게 문의를 하고 판정을 내렸다가 오심으로 드러나는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급기야 논란을 일으켰던 심판진이 얼마 되지 않아 또다시 오심을 저지르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거듭되는 악재 속에 심판에 대한 신뢰와 존중은 추락할 수밖에 없다. 

24일 LG와 KT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 4-4로 맞선 3회 LG 공격에서 유강남의 희생타 때 3루주자였던 정근우가 홈으로 쇄도했다. 주심의 첫 판정은 세이프였지만 3루심이 정근우가 kt 외야수 로하스가 공을 잡는 것보다 태그업이 빨랐다고 지적되며 아웃으로 판정이 번복됐다. 류중일 LG 감독이 강하게 항의했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TV 중계로 리플레이 결과 정근우는 타구가 로하스의 글러브에 정확히 들어간 이후 태그업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3루심 심판의 명백한 오심이었다. 하지만 태그업은 비디오판독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결국 정상적인 플레이를 펼치고도 정근우는 억울하게 아웃당했고 유강남은 타점을 손해봤으며 LG는 경기흐름상 중요한 승부처가 될 수 있었던 기회를 잃은 셈이다. 심지어 정근우는 6회에도 오심을 당할 뻔 했다. 오지환의 타석 때 1루에서 2루로 도루를 시도한 정근우는 최초 아웃 판정을 받았지만 비디오판독 결과 세이프로 번복됐다.

추가득점에 실패한 LG는 KT에 7회에만 3실점을 허용하며 패색이 짙어지는 듯했다. 다행히 9회 라모스의 끝내기 만루홈런이 터지며 극적인 대역전승으로 반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심만 아니었다면 그 이전에 LG가 먼저 리드를 잡으며 경기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개운치 않은 뒷맛은 남았다.

더구나 오심 논란이 더 커진 것은 이날 경기를 맡은 심판조(이기중·장준영·원현식·최수원·김준희)가 하필 SK와 한화의 개막 시리즈에서 스트라이크존 문제로 강등됐던 바로 그 구성원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이들은 시즌 초반 스트라이크존 판정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한화 주장인 이용규가 방송사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KBO는 이들을 잠시 퓨처스리그로 내려보내 재교육을 받도록 했다. 이 심판조는 조정기간을 거쳐 지난 19일 잠실 NC-두산전부터 1군 경기 심판으로 활동했으나 일주일도 되지 않아 또다시 판정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자연히 팬들의 비판 여론도 빗발치고 있다. KBO리그가 올시즌 들어 심판의 오심 논란에 대한 처벌이 상당히 엄격해진 만큼 이번에도 후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순철 SBS 해설위원은 '명백한 오심'이었음을 지적하면서도 심판들의 입장에 대하여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순철 위원은 "이런 경우는 공격자들(주자)에게 약간의 어드밴티지를 줘도 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너무 이상한 판정이 나왔다. 화면상으로는 공이 완전히 로하스의 글러브에 들어가고 태그업이 이루어졌는데 왜 이런 판정이 나왔는지 의아하다"라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이 위원은 "최근에 스트라이존 문제라든지 판정 논란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고 비판을 받으면서 심판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는 게 느껴진다. 그래서 더 정확하게 보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긴장하면서 실수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조심스럽지만 해당 심판이 오심에 트라우마가 있다면 차라리 다시 2군에 내려가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오는 것도 좋을 듯 하다. (오심 논란 때문에) 본인도 위축되고 심판 전체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는 문제"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순철 위원의 지적은 현장의 심판들도 따가운 여론에 상당히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심판이라고 해서 항상 욕만 먹는 것은 아니다.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심판의 빠른 판단과 조치 덕분에 한 선수의 귀중한 인명을 구하는 훈훈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23일 광주FC와 상주 상무의 경기가 열린 상주시민운동장. 광주가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37분 광주 공격수 김효기는 골을 넣기 위해 달려가다 상대 골키퍼 황병근과 부딪친 뒤 쓰러져 의식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조지음 주심은 충돌이 일어난 즉시 바로 경기를 중단시켰다. 가까이 달려가 선수의 상태를 확인하며 다급하게 의료진을 호출하는 동작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조지음 심판은 주변에 있던 동료 선수들과 함께 김효기에게 달려들어 혀가 말려들어 가지 않게 응급조치를 취하며 기도를 확보했다. 그라운드에 뛰어든 의료진이 김효기를 응급차에 태워 병원으로 후송하며 상황이 종료되까지는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장면은 경기장에서 벌어진 응급 상황 '골든타임'에 대처하는 훌륭한 모범사례로 평가받았다. 의료진이나 선수들의 역할도 컸지만, 1차적으로 신속하게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한 심판이 일등공신이었다. 특히 경기장에서 '심판의 역할'이란게 단지 룰을 따지는 차원을 넘어서 얼마나 중요할수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장면이다. 그리고 이는 잘 훈련된 학습효과와 시스템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기도 했다.

프로축구연맹은 2011년 경기중 심장마비를 일으켰던 신영록의 사고 이후 응급조치에 대한 규정을 강화했고 선수, 심판 등 리그 구성원에 대해서도 심폐소생술 등 응급조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평소 교육받은 대로 기민하게 움직여준 덕분에 비극이 될뻔한 사고가 미담으로 바뀐 것이다. 다만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라도 정작 이를 시행하는 사람이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현대의 프로스포츠 심판은 결코 쉽지 않은 직업이다. 선수처럼 잘한다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한번이라도 실수하거나 잘못된 선택을 내리면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려야 한다. 예전처럼 심판의 권위로 모든 것을 밀어붙이거나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변명이 통하는 시대도 아니다. 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경기중 인간의 눈으로 잡아내기 힘든 찰나의 순간까지 담아낼 수 있게 되면서, 심판의 판정과 경기운영능력에 대한 평가도 더 까다로워졌다. 경기장 안에서의 판정은 심판이 한다면, 경기장 밖에서는 대중과 미디어가 심판의 수준을 심판하는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스포츠의 세계에서 심판이 늘 완벽할 수는 없다. 선수나 감독과 마찬가지로 심판도 사람이기에 중요한 순간에 긴장하기도 하고 실수도 저지를 수 있다. 몇몇 심판들의 실수로 심판진 전체의 수준을 싸잡아 폄하하거나, 여론몰이 식으로 지나치게 '악마화'하는 것도 좋은 현상은 아니다. 여론의 비난에 위축된 심판들은 눈치를 보고 주저하게 되고 그러다가 오히려 또 실수를 하거나 소신있는 판정을 내리지 못할수도 있다.

다만 대중의 존중이나 신뢰를 다시 이끌어내는 것도 심판들 하기 나름이다. 자꾸 했던 실수를 반복하는 것, 비난에 위축되어 하지 않아야 할 실수가 나온다면 그게 곧 실력이다. 심판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서 첨단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이제는 하다 못해 로봇심판을 도입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제는 그만큼 심판도 경쟁과 혁신을 통하여 공개적인 평가까지 받아들여 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심판에 대한 존중은 곧 해당 스포츠에 대한 신뢰와 투명성과도 직결된다. 가끔은 비난과 징계가 약이 될 수 있지만 그것만이 근본적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어떻게 심판들의 질적 수준과 책임감을 끌어올릴 수 있을지 시스템 차원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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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정근우오심 김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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