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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군단장 시절 박정희 연금계획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15회] 김재규는 “애국심이 집권욕에 못 미치고” 있는 박정희에게 등을 돌렸다

등록 2020.05.08 17:13수정 2020.05.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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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사를 낭독하는 박정희 대장(1963. 8. 30.). ⓒ 자료사진

박정희가 속도형이라면, 김재규는 방향형이라고 한다면 가능할까.

박정희의 생애를 관찰하면, 교사→만군 혈서지원→일본육사→한국육사2기→피난수도 부산에서 쿠데타 모의→5ㆍ16 쿠데타→유신쿠데타→긴급조치 등 공명심과 출세지향의 과속형이다. 김재규는 교사→일본군징병→한국육사2기→보안사령관→중정부장→박정희 암살 등의 과정에서 상당히 방향을 중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박정희가 목표 지향형이라면 김재규는 방법지향형이다.

김재규는 유신쿠데타를 대한민국의 기본가치를 뒤엎는 역천(逆天)으로 인식하였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이 짓밟은 민주공화제를 4ㆍ19혁명으로 바로잡았는데, 박정희가 5ㆍ16에 이어, 이번에는 아예 주권재민과 삼권분립의 기본가치조차 형해화해버린 것이다.
  

김재규 장군 보안의 전문가인 전 보안사령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장군. 뒤의 '보안완벽' 휘호가 김 장군이 보안 전문가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다. ⓒ 남산의 부장, 김충식 저

 
그는 군인의 신분이라 대놓고 반대비판을 할 수 없었으나, 유신헌법을 몇 차례 숙독하면서 분노의 감정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3군단장 시절, 시찰나올 때 박정희를 부대에 연금하고 하야시켜 볼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0ㆍ26거사 후 신군부의 서릿발 같은 시기에 김재규 피고인의 변호인단을 구성했던 김제형ㆍ이돈명ㆍ강신옥ㆍ조준희ㆍ홍성우ㆍ황인철ㆍ안동일 변호사가 고등군법회의에 제출한 「항소이유서」중 관련 부분이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 및 마산 지역을 중심으로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한 시위사건을 뜻한다. ⓒ 진실위 자료사진

 
피고인 김재규가 유신헌법을 폐기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자 결행한 이번 거사의 결심은 유신헌법의 공포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2년 12월 27일 유신헌법이 공포되었을 때 피고인은 3군단장으로 있으면서 유신헌법을 두세 번 읽어보니 이 헌법은 대통령이 영구집권하려는 헌법이지 민주헌법이 아니구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이르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 피고인은 벌써 보안사령관을 역임한 관계로 정치적 감각이 예민할 때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여당 일각의 반대세력마저도 억누르고 3선개헌을 통과시킨 후 3선 때에 김대중 대통령 후보자와의 선거전에 대세가 여의치 않자 장충단공원에서 마지막으로 대통령에 출마하는 것이라고 국민에게 공약하고 당선된 후 다시는 선거로써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아래 앞서의 공약을 식언하고 종신집권을 하기 위해 소위 '10월유신'이라는 것을 단행하여 그 3선이 못마땅한 것이긴 하였어도 그래도 민주헌법의 모습은 갖고 있던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의 기본을 파괴한 유신헌법을 공포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피고인은 박 대통령의 애국심이 집권욕에 못 미치고 있다고 느끼기 시작하였고 박 대통령의 집권욕을 철저히 싫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피고인은 3군단 사령부의 울타리를 만들면서 박 대통령이 군단에 방문할 것을 예상하여 통상 울타리를 만드는데 밖에서 안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형태를 취하는 것인데도 일단 사령부로 들어온 사람은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례적인 형으로 울타리를 만들게 한 사실도 있었고, 이 울타리는 지금도 군단에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때 피고인 내심의 의사는 박 대통령이 3군단에 피고인을 방문하면 박 대통령을 연금해놓고 하야시켜 볼 생각을 가졌으나 막상 박 대통령이 군단을 방문하여 만나보면 전에 한 결심이 사그라졌다는 것입니다. (주석 1)

  

국회의원 선거법 개정 소식을 전하는 언론기사(매일경제, 1972. 12. 29)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고 국회의원 선거법을 개정하여 지역구별로 2명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하였다. 이로써 공화당은 전체 의석 2/3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 매일경제신문

 
김재규는 "애국심이 집권욕에 못 미치고" 있는 박정희에게 등을 돌렸다. 시정의 장삼이사라면 몰라도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집권욕이 애국심보다 앞선다면 국가의 비극이고 불행한 일이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그는 3군단장 시절에 유신을 감행한 박정희를 제거의 대상으로 삼고 기회를 노렸던 것이다.


주석
1> 안동일, 『나는 김재규의 변호인이었다』, 457쪽, 김영사, 1917.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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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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