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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언론은 이미지를 어떻게 정치에 이용했나?

[TV 리뷰] <저널리즘 토크쇼J> '교묘 혹은 뻔뻔... 총선 기술자들' 편

20.04.20 17:21최종업데이트20.04.2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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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KBS 1TV <저널리즘 토크쇼J>는 보수 언론이 이미지를 이용해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는지 보여줬다. ⓒ KBS


정치는 이미지에 기대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이 같은 경향은 여론의 이목이 쏠리는 선거국면에서 더 강해진다. 지난 4.15 총선에선 어땠을까? 19일 오후 방송된 KBS1TV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J>는 이 같은 물음에 자신들이 찾은 답을 내놨다.

이날 방송이 다룬 주제는 ⓵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내놓은 4.15총선 결과 분석 ⓶ 총선 보도에서 이미지 활용 사례 ⓷ 광고를 방불케한 지역신문 선거보도 ⓸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 보도 행태 등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논조에 관심 있는 시청자라면 ⓵번에, 보도 사진에 관심 있는 시청자라면 ⓶번에 눈길이 쏠렸으리라 생각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4.15 총선에 가장 부정적인 해석을 내놓은 신문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선거 다음 날인 16일 다소 불쾌감 섞인 어조로 더불어민주당의 압승을 깎아 내리는 기사를 잇달아 실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라면 16일자 박정훈 논설실장이 쓴 "선거는 끝나고 '진실의 지옥문'이 열렸다" 칼럼일 것이다. 아래는 해당 칼럼 중 일부다. 

"경제를 망친 정권이라면 볼 것도 없이 참패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경제 실정(失政) 이슈는 선거판을 압도하지 못했고, 심판받아야 할 여당이 선거 기간 내내 압승을 자신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중략) 그러나 그들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다. 문 정권이 계산에 넣지 못한 것이 있다. 경제 환경이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문 정권 전반기는 글로벌 경제가 더할 나위 없는 호조였다. 덕분에 아무리 경제 운영을 엉망으로 해도 '폭망'까지 가진 않았다. 이제 코로나 위기가 닥쳐왔다. 그 좋은 여건에서도 부진에 시달렸는데 초유의 경제 위기가 펼쳐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능함이 입증된 이 정부가 미증유의 코로나 지옥을 이겨낼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패널인 강남대 강유정 교수는 "코로나 블랙홀 때문에 총선에서 이겼지만 이번에는 아마 세계 경제 악화가 눈앞에 펼쳐져 있기 때문에... (조선일보는) 여권이 180석을 가져갔으니 경제가 악화되면 여권 탓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고 있다. 그 프레임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1987년부터 이어온 '이미지 전략'
 

<조선일보>는 3월 30일자 기사에서 여야의 총선공약을 싸잡아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그런데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인물 사진이 배치됐다. 얼핏 여당이 '돈 선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 KBS


이제 보수언론의 이미지 전략을 본격 살펴볼 차례다. 방송은 3월 30일 "근거 없이 효과 안 따지고 역대 최대 '돈 선거'"란 제하의 <조선일보> 보도에 주목했다. 기사는 여야의 총선공약을 싸잡아 비판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낙연 민주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인물 사진이 기사에 실렸다. 얼핏 여당이 '돈 선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연구원은 이 보도를 '이미지의 배반'이라고 규정했다. 

"초현실주의 현대 미술가 마그리트라는 사람의 그림 중에서 '이미지의 배반'이라는 아주 유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파이프 담배를 정교하게 그려놓고서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 담배가 아니다'라는 글을 써놔서요. 과연 재현과 실재의 관계는 무엇인지 이런 어떤 물음을 던지는 아주 유명한 그림인데 저는 이 사진 보도 역시도 이미지의 배반 같아요. 그러니까 그 밑에 쿼테이션을 단다고 하면 '이것은 이낙연이 아니다. 이것은 역대 최대의 돈 선거'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동아일보> 보도 역시 이미지 연상효과로 보수 야당을 '띄우는' 데 가세했다. <동아일보> 4월 6일자 기사엔 종로구에 출마한 민주당 이낙연 후보와 미래통합당 황교안 후보의 사진이 나란히 실렸다. 사진 아래인 두 후보의 말이 큼지막하게 인용돼 있다. 

이낙연 "빨간색, 정치인이 입으면 안 예뻐"
황교안 "모든 국민에 50만 원 즉시 지급"


배치된 사진과 텍스트는 묘한 연상효과를 일으킨다. 이낙연 후보의 워딩은 마치 붉은 색 옷을 입고 유세에 나선 황 대표를 조롱하는 듯하다. 반면 황교안 후보는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런 사진과 텍스트 배치는 황 대표에게 보다 무게감을 싣는 고도의 편집기술이다. 패널 최욱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 보면 이낙연 후보가 활짝 웃고 있는 모습에 그의 발언을 인용해서 단 제목이 '빨간색, 정치인이 입으면 안 예뻐'. 그런데 이제 황교안 후보가 빨간색 옷을 입고 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뭔가 좀 조롱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좀 옹졸해 보이고, 사람이 좀 가벼워 보입니다. 반면에 황교안 후보의 발언은 '모든 국민에 50만 원 즉시 지급'을 발췌해서 달아놨거든요. 그러면 뭔가 국민을 위하는 것 같고 정책에 관심이 많은 후보자, 이런 이미지를 또 부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보수 언론의 '이미지 정치'는 새삼스럽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현 대통령이 맞붙었던 2012년 대선에서 KBS 1TV <뉴스9>는 박 후보 관련 화면은 군중이 운집한 이미지를 사용한 반면, 문 후보 관련 화면엔 소수에게 둘러싸여 있는 사진을 사용했다. 
 

1987년 대선 당시 KBS는 민정당 노태우 후보 유세장면엔 상당한 비중을 들였던 반면 평민당 김대중 후보에겐 인색했다. ⓒ KBS


더 거슬러 올라가보자. 1987년 대선에서도 KBS·MBC등 공중파 방송과 조선·동아 등은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의 유세열기를 강조한 반면 김대중 후보에겐 인색하게 굴었다. 

방송 분량을 비교해 보자 KBS-MBC 양 방송사는 노태우 후보 유세 방송에 7분을 할애한 데 비해 김대중 후보 방송은 절반도 되지 않는 2분 30초만 내보냈다. 노태우 후보 유세장면은 헬기로 풀샷을 잡았지만 김대중 후보 유세에선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신문의 경우도 노태우 후보의 이미지에 더 공을 들였다. <조선일보> 1987년 12월 13일자는 노태우 후보, 김영삼 후보, 김대중 후보의 유세장면을 담은 사진을 나란히 실었다. 노태우 후보 유세장면엔 유세장을 찾은 인파가 담겨져 있다. 반면 김대중 후보는 투명 플라스틱을 치고 유세하는 장면이 전부다.

<동아일보>는 더했다. <동아일보>는 김대중 후보의 보라매공원 유세 장면을 보도하면서 김 후보만 전면에 부각시켰다. 김대중 후보의 보라매공원 유세에 200만가량의 인파가 운집했는데, 그 규모는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하지만 <동아일보> 보도사진에서 그런 규모는 느껴지지 않는다. 
 

1987년 대선 당시 조선, 동아 등 보수 언론도 이미지로 민정당 노태우 후보에게 은연 중에 힘을 실어준다. ⓒ KBS


당시엔 인터넷도, 소셜 미디어도 없었다. 따라서 각 후보로선 현장유세로 세몰이에 나서야 했다. 결국 대선을 보도하는 공영방송과 보수언론은 이미지로 은연중에 김대중 후보의 세몰이는 축소하고 대신 노태우 후보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선거가 가진 역사적 의미를 감안해 볼 때, 이 같은 보도행태는 민주화운동 폄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패널인 임자운 변호사도 이 점을 지적했다.

"87년 대선이 우리 현대사에 갖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71년 박정희, 김대중. 그때도 이제 박정희, 김대중 두 후보가 대선을 했던 이후에 16년 만에 국민이 군부독재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선거였잖아요. 어쩌면 87년 대선은 우리 국민들로서는 첫 번째 민주적 선거를 경험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이제 막 첫발을 떼려 할 때 언론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됐던 현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KBS, 그리고 지상파 방송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영상기자협회는 보도 준칙을 마련했다. 하지만 한국사진기자협회는 선거보도시 촬영과 편집에 준칙이나 가이드라인은 없다고 한다. 즉, 신문사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미지로 특정 후보를 밀어줄 수 있다는 말이다. 

<저널리즘 토크쇼J>는 시즌1, 2를 거치면서 기성 언론의 텍스트 분석과 비평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 왔다. 19일 방송분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수 언론이 선거보도에서 사진과 영상을 어떻게 정치개입 도구로 활용해왔는지 시청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줬다. 앞으로도 방송이 이미지 비평에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대 저널리즘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TV 시청자, 혹은 신문 독자에게도 바라는 점이 있다. 사진 한 장은 100줄의 기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사진 한 장은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한다. 사진이 찍힌 전후맥락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곁들여져야 비로소 힘을 발휘한다. 언론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 독자들의 사고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그러니 텍스트뿐만 아니라 이미지에도 현혹되어선 안 될 일이다. 
저널리즘토크쇼J 1987년 선거보도준칙 김대중 후보 노태우 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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