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인생 막장에 몰린 사람들이 저지른 '비행'의 내막

[미리보는 영화] <비행>이 품은 탈북자와 전과자... 이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20.03.09 18:56최종업데이트20.03.09 18:56
원고료로 응원
 

영화 <비행> 관련 사진 ⓒ 써드아이비디오


한 사람은 이제 막 북한을 떠나온 사정이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중국음식점 배달일을 하며 식당에서 숙식을 해결한다. 조금 더 들여다보자. 이 새터민 근수(홍근택)에겐 정체를 알 수 없는 관리감독관이 따라 다니고, 배달원 지혁(차지현)은 남의 물건을 수시로 훔치며 호시탐탐 급전을 노린다. 

영화 <비행>은 우리 사회에서 자립하기 어려운 캐릭터들을 모아 놓고 그들의 이야기를 면밀하게 관찰한 결과물이다. 시작부터 속마음을 숨긴 채 상대를 어떻게 해서든 구워삶아 자신의 이득을 챙기려 하는 인물로 가득하다. 

이런 설정으로 자칫 영화 자체가 무겁고 어둡게 다가올 여지가 있으나 제법 이야기 전개 속도를 빠르게 하거나 편집의 묘미로 리듬감을 담보한다. 중간중간 작은 웃음이 나는 대사 또한 <비행>의 미덕 중 하나다. 

단편 <햄버거맨>에 이어 <비행>으로 첫 장편을 선보인 조성빈 감독은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에 힘을 실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주변에 존재하지만 깊은 관심을 두기 쉽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그의 시선이 이 영화에서 제법 돋보인다. 누가 전과자 배달원, 그리고 갓 탈북한 새터민과 깊은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이들을 중심으로 끌고 온 자체가 우리가 잊고 살거나 애써 무시했던 불편한 진실을 건드리는 셈이다.

막다른 골목에 다가서다
 

영화 <비행> 관련 사진 ⓒ 써드아이비디오

 
일반적인 기승전결이 아니다. <비행>은 결코 일반인이라면 쉽게 빠질 수 없는 타락과 몰락의 구덩이를 매우 천천히 '저공비행'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부각이 아니라 제법 눈높이가 비슷한 위치에서 마치 두 캐릭터 옆에 부유하듯 함께 떠돈다. 

근수와 지혁이 스치듯 서로를 만나다가 본격적으로 한 사건에 엮이며 운명의 배에 함께 타는 중반부부터가 <비행>의 주제 의식이 드러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사회 시스템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새터민을 활용한 범죄, 그리고 그런 새터민을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려 했던 전과자의 모습은 곧 자본주의와 약육강식에 길들여진 우리의 관념을 돌아보게 한다.

부지불식간에 범죄에 가담한 근수는 우리 사회 시스템이 미처 놓치고 있는 어떤 허점을 상징하기도 한다. 동시에 전과자 낙인이 찍힌 지혁은 한국을 떠나보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자신의 낙인만 분명하게 깨달을 뿐이다. 

두 사람이 공모한 또 다른 범죄가 미필적 고의든 우연에 의한 것이든 미화할 수는 없다. <비행>은 관객이 이들에게 단죄의 시선을 보내기 전에 살짝 방향을 비튼다. 둘 사이에서 미약하게나마 싹튼 어떤 공감의 가능성을 말미에 제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피를 나눈 형제도 아니고 심지어 서로 목적과 삶의 태도 또한 상반되다시피 한 이들이 서로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애써 서로를 챙기거나 걱정할 이유는 없었던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한 까닭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속된 말로 인생 막장에 몰린 두 사람이다. 각자도생하기도 벅찰 텐데 그리고 서로를 걱정한다 해도 이들 주변 시선은 변하지 않을 텐데 그들은 예상과 다른 선택을 했다. 여기에 <비행>을 향한 감독의 시선이 분명하게 담겨 있다. 

그 시선은 어쩌면 우리 대부분이 인정하기 쉽지 않은 어떤 희망, 혹은 이들이 우리보다 더 나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어떤 가능성을 품고 있어 보인다. 

한 줄 평: 투박한 소품극에 품은 특별한 진실
평점: ★★★☆(3.5/5)

 
영화 <비행> 관련 정보

감독: 조성빈
출연: 홍근택, 차지현, 장준현, 윤정욱, 종호 등
제작: 써드아이비디오
배급: 아이엠, kth
러닝타임: 89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상: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CGV 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
개봉: 2020년 3월 19일
 

 
비행 새터민 북한 중국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