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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모비스의 '포스트 양동근-함지훈 시대'

[프로농구] '왕조'로 군림했기에 세대교체가 늦어진 모비스의 현실

19.12.19 11:32최종업데이트19.12.1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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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는 올시즌 세대교체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디펜딩챔피언이자 올시즌도 개막 전까지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었지만 초반부터 롤러코스터 행보를 보이며 주춤하더니, 급기야 전주 KCC와 충격적인 2대 4 대형 트레이드를 통하여 라건아와 이대성을 내보내고 '새 판 짜기'에 나섰다.

트레이드의 여파인지 모비스는 12월 들어 5연패의 수렁에 빠지기도 했다. NBA 신인왕 출신 에메카 오카포의 영입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추스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나마 18일 최하위 고양 오리온을 제물로 겨우 연패를 탈출했지만 9승 14패로 여전히 공동 7위에 머물고 있다. 수년간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군림했던 모비스로서는 낯선 순위표다. 하지만 장기간 미뤄온 리빌딩을 위해서는 한 번쯤 피해갈 수 없는 시행착오이기도 하다.

모비스는 유재학 감독과 함께 양동근-함지훈을 앞세워 2000년대 중반부터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왕조'로 군림했다. 두 선수는 신인드래프트로 프로에 데뷔한 이래 줄곧 울산 현대모비스의 유니폼만을 입은 '원클럽맨'이기도 하다. 모비스는 양동근-함지훈 시대에 총 6회의 챔프전 우승을 경험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양동근-함지훈이 처음 프로에 데뷔할 때만해도 지금만큼 높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양동근은 당시 이상민, 김승현, 신기성 등 우수한 정통 포인트가드들이 넘쳐나던 시대에 보기드문 '듀얼가드'라는 이유로 저평가당했고, 함지훈은 빅맨치고는 애매한 신장과 운동능력 때문에 프로에서 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두 선수는 보란 듯이 각 포지션에서 KBL 역사에 손꼽힐 만한 선수 경력을 쌓았다. 현대농구에서 드물게 데뷔 이래 모비스에서만 선수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원클럽맨'들이기도 하다. 그만큼 강력한 수비와 높은 전술 이해도를 강조하는 '유재학식 농구'의 시스템에 가장 최적화된 선수들이었다는 점도 이들이 모비스에서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양동근-함지훈 성공 이후 신인 선수 수급 어려워져

물론 모비스 왕조의 전성기가 길어지면서 잃은 것도 있었다. 양동근-함지훈의 성공 이후로는 신인 선수 수급이 그만큼 어려워진데다, 기껏 모비스에서 공들여 키워놓고도 결국 팀의 프랜차이즈스타로 남겨두지 못하고 다른 팀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사례가 적지 않았다. 거물급만 놓고봐도 김효범(브라이언 킴), 김시래, 라건아, 이대성 등이 있으며, 김현중, 우승연, 김동량 등도 모비스 시절에는 나름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다른 팀에 가서는 그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한 사례들이다.

김효범은 농구팬들 사이에서 모비스를 떠난 이후 전성기를 잃은 가장 아까운 선수로도 꼽힌다. 캐나다 국적으로 2005년 신인드래프트 2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된 김효범은 초기에는 한국식 농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겪었으나 3년차인 2007-08시즌부터 주전으로 도약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KBL을 대표하는 정상급 슈팅가드로 성장했다. 2009-10시즌에는 통합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김효범은 2010년 FA자격을 얻어 5억이라는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서울 SK로 이적했다. 하지만 김효범은 이적후 첫 1~2년 제외하면 빠르게 전성기에서 내려오며 '그저그런 선수'로 전락했고, 선수생활 말년이던 2016-17시즌 7년만에 모비스로 돌아와 그 해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결과론이지만 전성기에 진입하던 FA때 모비스를 떠나지 않고 유감독과 계속 함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워하는 팬들이 많다.

2012년 드래프트 1순위 김시래(LG)는 '우승과 맞바꾼 미래'다. 정통 포인트가드로서 실제로 '양동근의 후계자'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이고, 김시래의 프로 데뷔 첫시즌에는 잠시 양동근을 슈팅가드로 밀어내고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모비스는 우승에 도전하던 2012-13 시즌 골밑을 보완하기 위해 리빌딩 중이던 창원 LG로부터 외국인 선수 로드 벤슨을 영입하면서 해당 시즌이 끝난 후 김시래를 LG로 트레이드하는 것에 합의했다. 김시래는 모비스의 챔프전 우승 직후 바로 LG로 이적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듬해에는 모비스와 김시래의 LG가 챔프전에서 맞붙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모비스는 이후 KBL 최초의 챔프전 3연패를 달성하며 최전성기를 구가했다. 김시래도 리그 정상급 가드로 착실하게 성장하며 모비스를 떠난 이후에도 성공을 거둔 드문 사례가 되며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윈윈이 됐다. 김시래는 모비스를 떠난 이후에도 리그 정상급 선수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케이스다.

최근 KCC와 대형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라건아와 이대성도 사실상 모비스가 키워낸 선수들이다. 라건아는 외국인 선수 리카르도 라틀리프로 모비스에서 데뷔할때만해도 다듬어지지않는 신인에 불과했으나, 모비스의 챔프전 3연패 주역을 거쳐 한국에 귀화하며 어느덧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이대성은 '제2의 김효범'에 비견될만큼 한국농구에서 보기힘든 장신가드이자 공격적인 플레이스타일로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이 두 선수도 모비스와 끝까지 함께할 운명은 되지 못했다. 이대성은 이번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다. 삼성에서 뛰다가 모비스로 돌아왔던 라건아도 다시 1년반 뒤인 2021년 5월이면 특별 드래프트에 나서야한다. 유재학 감독은 두 선수가 장기적으로 모비스에 잔류하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하여 고심끝에 트레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모비스, 양동근-함지훈 시대 이후에도 건재할까

모비스를 떠나지는 않았지만 '차세대 슈퍼스타'로 기대를 모았던 이종현의 부침도 아쉽다. 2016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모비스에 지명된 이종현은 역대 토종빅맨으로는 서장훈-김주성-오세근의 뒤를 이을 재목으로까지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였다. 그러나 정작 프로에 와서는 벌써 몇 차례 큰 부상과 재활의 악순환 속에 아직까지 별다른 족적을 남기지 못하며 이제는 '한국판 그렉 오든(전 포틀랜드)'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사고 있다.

앞으로 포스트 양동근-함지훈 시대의 모비스를 이끌 주역으로 유력한 선수로는 김국찬이나 전준범(현 상무) 정도가 꼽힌다. 하지만 리더십이나 해결사로서의 경험 면에서 양동근-함지훈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양동근과 함지훈은 30대 중후반의 나이에도 여전히 모비스의 주축으로서 건재하지만 세월은 속일 수 없는 것인지 기량이 서서히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다. 모비스로서는 두 선수가 은퇴하기 전에 어떻게든 팀을 재정비해야 한다. 

NBA(미 프로농구)에서 모비스와 유사한 팀으로 자주 비교 대상이 되는게 샌안토니오 스퍼스다. 간판스타 팀 던컨과 토니 파커, 마누 지노빌리 등이 차례로 은퇴하고 차세대로 기대를 모았던 카와이 레너드(LA 클리퍼스)가 구단과 불화 끝에 팀을 떠난 이후 세대교체에 어려움을 겪으며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모습이 모비스의 현재와도 겹친다. 과연 모비스는 저물어가고있는 양동근-함지훈 시대 이후에도 여전히 프로농구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건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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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근함지훈 유재학 에메카오카포 울산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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