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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앞에서 속내 밝힌 이세돌 9단... 이게 가능했던 이유

[TV 리뷰] 이세돌의 솔직담백한 이야기 들을 수 있었던 시간... 흥미로운 정통 토크쇼의 재림

19.12.19 11:10최종업데이트19.12.19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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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 방영된 <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이세돌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 4일부터 방영을 시작한 SBS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오랜만에 TV에 등장한 미국식 정통 토크쇼이다. 과거 KBS <자니윤쇼>를 비롯해서 김혜수, 이홍렬, 이승연, 주병진 등 1인 MC가 초대손님 한명과 이야기를 주고 받던 토크쇼는 1990년대~2000년대 초반 방송사의 인기 예능 분야 중 하나였다. 특히 그 무렵 SBS의 주력 프로그램으로 많이 활용되었기에 예전 시청자들에겐 친숙한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런 형식의 토크쇼는 국내 TV 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최근 몇년 사이 김승우, 박중훈 등 배우를 앞세운 프로가 없진 않았지만 오래 지속되지 못했고 상당수 토크 예능은 <라디오스타>, <해피투게더> 등 집단 MC+초대손님 체제로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는 형식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그런데 SBS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배우 이동욱을 전면에 내세운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관찰카메라, 유튜브 등을 적극 활용하던 요즘 예능 흐름과는 거의 무관한 구성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과거 <강심장>을 비롯해 최근 <프로듀스X101 >에서도 수려한 진행 솜씨를 뽐낸 이동욱이라지만, 정통 1인 토크쇼 MC는 방송사 뿐만 아니라 그에게도 도전과 마찬가지였다.

"은퇴선언" 이세돌 9단과의 흥미진진한 대담
 

지난 18일 방영된 <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이세돌 편의 한 장면 ⓒ SBS

 
지난 18일 출연한 초대손님은 최근 한국형 AI 한돌과의 대국을 끝으로 은퇴하는 바둑기사 이세돌 9단이었다. 지난 1~2회가 MC 이동욱의 절친 배우 공유로 눈길을 모았다면 이번 3회는 화제의 인물을 택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아직 30대 한창 현역으로 활동하던 그였기에 갑작스런 은퇴 선언은 바둑팬 뿐만 아니라 2016년 구글 AI 알파고와의 대국을 통해 뒤늦게 이세돌을 알게 된 일반 시민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몇몇 매체와의 인터뷰가 이뤄지긴 했지만 한정된 지면 속 글자만으론 그의 속내를 제대로 알기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는 가장 시의적절한 초대손님을 모신 셈이었다. 호선바둑처럼 동등한 조건에서의 1대1 대결에선 절대로 인간이 AI를 이길 수 없다는 그의 말은 막연히 바둑을 알고 있는 시청자 입장에선 꽤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방송 당일 진행된 한돌과의 대국에서 이세돌 9단은 92수만에 불계승을 거둬 자존심을 세웠지만 알파고로 대표되는 AI의 등장은 은퇴 결정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명인의 인생을 뒤바꿔놓은 일이기도 했다.

이밖에 아내와 가족, 아이돌그룹 팬이 된 사연 등 당사자 본인의 입을 통해 듣는 시간을 가지면서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바둑 천재'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 일반적인 집단 토크 예능이나 딱딱한 분위기의 교양 대담 프로그램이었다면 밖으로 꺼내기 쉽지 않은 당사자의 속내를 큰 어려움 없이 시청자들에게 전달해 준 것이다. 

안착 쉽지 않은 토크쇼... 그래도 필요한 이유
 

지난 18일 방영된 <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이세돌 편의 한 장면 ⓒ SBS

 
여전히 관찰 카메라가 TV 예능의 큰 축을 담당하고 이에 싫증을 느낀 시청자들은 유튜브, 넷플릭스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는 공간으로 하나둘씩 옮겨가는 추세를 감안하면,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는  어찌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등장이 아닐 수 없다. 비슷한 형식을 취했던 타방송사의 토크쇼를 비롯해서 SBS 역시 김희선, 고현정 등 당대 톱스타를 앞세운 프로를 선보였지만 제법 이른 종영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를 감안하면 이동욱을 앞세운 토크쇼는 제법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다. 시대 흐름과 반대되는 프로의 등장은 역설적으론 남들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부여한다. 다수 출연진 중심 토크 예능에선 나오기 쉽지 않은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환경을 조성하면서 그 인물에 대한 선입견 혹은 오해 등을 자연스럽게 해소시킨다.  

이번 3회분만 하더라도, 대국 장면만 봤던 시청자들에게 냉철할 것만 같던 이세돌 9단의 유머와 인간미 넘치는 말솜씨는 "그간 이세돌을 잘못 알고 있었다"라는 편견 타파의 계기가 되며 방송에 대한 호평으로 이어졌다. 

물론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의 시청률이 3~4%대에 머물만큼 아직 나아갈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 톱스타 공유의 출연 같은 화제성 만으로는 기존 드라마가 방영되던 밤 10시 시간대의 시청자를 흡수하는게 쉽지 않다는 것도 몸소 체험했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이세돌편은 결과적으로 이 프로의 존재 이유 뿐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지에 대한 힌트를 제작진에게 던져준 셈이다. 화제성, 의외성이 결합된 초대손님 선택 외에 그 사람이 부담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 마련 등이 적절히 어우러진다면 1인 토크쇼는 결코 시대착오적인 재등장이 아닌, 오히려 시대를 앞서가는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필자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jazzkid 에도 수록되는 글 입니다.
이동욱은토크가하고싶어서 이동욱 토크쇼 이세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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