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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집에서 노는 여자'가 아닙니다

[엄마의 이름을 찾아서] '일'의 개념이 확장된 사회를 상상하다

등록 2019.11.06 18:12수정 2019.11.06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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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된 여성들은 자신의 이름보다 아이의 이름으로 불리는 데 더 익숙해집니다. 엄마는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없는 걸까요? '나다운' 엄마, 이름을 지키는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봅니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집-회사-회식... 내가 싸워야 할 건 남편이 아니었다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떠나 있었어도 역시 집은 달랐다. 우리 가족은 며칠 간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국에서의 일상에 스며들었다. 남편은 다시금 치열하게 일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새로운 파트타임 상담사 자리에 금세 적응했다. 캐나다에서 시작한 각종 글쓰기 작업도 계속 해 나갔다. 아이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한국의 학교 시스템에 동화되어 갔다.

벚꽃이 지기 시작하던 지난 봄. 나는 늘 곁에서 지지가 되어줬던 지인들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었다.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귀국 후 두 달이 넘도록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다 어렵사리 시간을 맞춘 자리였다.

부부동반으로도 종종 만나왔고 남편도 잘 알고 있는 여성들이기에, 나는 그날 아침식사 도중 남편에게 이들과 만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모처럼 낮에 커피 한 잔 들고, 집 근처 수성못에서 벚꽃을 즐길 예정이라고 말이다.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반응했다.

"공통점이 있네. 다 집에서 노는 여자들이구만!"

허걱! 지난 2년간 그토록 가사와 돌봄의 중요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바로 그 남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니.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일=직장'이라는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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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거나, 시간제로 소속없이 이곳 저곳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을 묻는 말 속엔 '직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 unsplash


그날의 멤버들의 이력은 이랬다. 한 명은 수험생 두 아이의 엄마인 전업주부로 모든 살림을 도맡아 했다. 아이들의 공부 뒷바라지는 물론, 장거리 통근하는 남편을 기차역까지 태워다 주고 마중 나가는 일도 했다.

또 다른 멤버는 교사자격증을 가진 여성이었지만, 아직 아이들이 어렸다. 방과 후 아이들을 직접 돌보고 싶어 완전한 복직은 하지 않았지만, 간간이 기간제 교사로 일하며 자신의 경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 역시 상담도 하고 글도 쓰며 나만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었다. 내 생각엔 우리 셋 중 아무도 '노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남편에게 즉각 반박했다.

"우리가 논다고? 집안일 해 봤으면서 그런 소리를 해? 특정한 직장에 소속돼 있지는 않지만 나름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되물었다.

"사실 그렇잖아. 대부분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는 걸 일한다고 하지. 집에서 하는 일을 일이라고 하지는 않잖아?"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프리랜서로 집에서 일을 하거나, 시간제로 소속없이 이곳 저곳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일을 묻는 말 속엔 '직장'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새로 작성한 각종 신상 관련 서류들에는 '일'을 물으면서 늘 '직장'을 함께 적으라 했다. 졸업한 대학에서 동창명부를 작성한다고 전화를 해왔을 때도, 내게 '직장'을 물었다. 나는 시간제 상담사로 일을 하며 글을 쓴다고 말을 했지만, 동창회 명부에 나의 직업은 적히지 않았다. 특별한 소속이 없이 일하는 사람, 즉 '직장'이 없는 사람의 일은 '직업'으로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사회적으로도 그렇다. 소속이 없는 파트타이머, 프리랜서, 그리고 가정에서 열심히 일하는 주부들은 직장의 노동자들이 받는 각종 사회보험의 혜택에서 제외된다. 요즘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생애주기별 검진을 해주기는 하지만, 직장인들이 2년마다 받는 종합건강검진 등은 '직장 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언감생심이다.

특히, 가정주부의 경우 국가검진에만 자신의 건강을 의존하는 게 현실이다. 중산층 이상이 아니고서야 무급으로 집안의 살림살이를 도맡고 있는 주부가 수십만 원을 투자해 건강검진을 받으러 다닐 수 있겠는가.  

그 공식은 어떻게 성립된 걸까

열심히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때로는 시간을 쪼개가며 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노는 사람' 취급을 받는 이 현실이 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학자들은, 농경사회에서는 집안일과 바깥일의 구분이 없었으나 산업혁명 이후 일터와 집이 분리됐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가족 구성원 중 일부(주로 여성)는 집 안의 일을 담당했고, 다른 구성원은 바깥에 나가서 재화를 벌어들이는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집안일도 분명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안에서 하는 일은 왜 '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의 저자 카트리네 마르살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을 만든 애덤 스미스가 재화의 생산과정에서 돌봄노동을 빼먹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찾아보았지만 '일=직장'이라는 공식이 성립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분명한 건, 이런 인식이 여성들의 삶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많은 여성들은 가정에서 전업 '돌봄노동자'로 일하거나, 돌봄을 병행하기 위해 재택근무 혹은 시간제 근무를 한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노는 사람' 취급을 받는다.

때문에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온 가족 구성원이 휴식을 취하는 저녁 이후에도 쉬지 못하고 계속해서 돌봄을 제공한다. 재택근무를 하거나 시간제로 일하는 여성들의 일은 다른 가족들의 일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다. 이들은 '노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모든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한 후에나 일에 집중하는 것이 허용된다.

나 역시 그랬다. 일주일에 몇 번은 상담소에 나갔고, 집에 있는 동안에도 상담사례 축어록(상담 내용이 담긴 음성 녹음이나 비디오 녹화를 문자로 풀어내는 것)을 풀고, 사례들을 분석하거나 각종 원고를 쓰며 바쁘게 지냈지만 집안의 모든 대소사 처리는 내가 맡았다.

남편은 '바쁘다는 이유'로 시가에 전화걸기 같은 사소한 일에서도 제외됐지만, 나는 집에서 '놀고 있으니' 집 안의 대소사를 모두 꿰고 있어야 했다. 나의 일은 남편의 스케줄(회식 포함), 아이의 스케줄보다 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가족여행 계획을 짜는 데 있어서도 나의 일은 '그냥 한 번쯤 빠져도 되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나는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꼈다.

'일=직장'이라는 편협함에서 벗어난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빌딩 안에 갇혀서, 소속된 '직장'에서 일하는 것만을 '일' 혹은 '직업'으로 인정해주곤 한다. ⓒ unsplash


사실, 직장이라는 공간에 모여 하는 일 외의 다른 일들이 직업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은 시대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집에서도 얼마든 회사의 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고, 회의도 할 수 있으며,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도 직장에 나가서 하는 일만 '일'로 여기는 건 시대착오적인 생각 아닐까.

여성과 일, 가정에 대한 미래지향적 대안을 담은 <슈퍼우먼은 없다>(앤 마리 슬로터 지음, 새잎, 2017)에서 한 여성은 이렇게 토로한다.
 
"일이 '사무실'에서 그리고 '8시부터 6시 사이'에 일어나는 일로만 한정되기 때문에 갈등이 자꾸 발생하는 거예요. 제 일이 왜 집에서 3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이 고정된 0.5평짜리 사무실에 앉아서 해야만 하는 일인지 그 누구로부터 한 번도 이해할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어요." (51쪽)

이 책의 저자 앤 마리 슬로터는 '일의 정의'를 확장해야 함과 동시에 경제적인 지원만을 '부양'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가정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돈'뿐만 아니라 '돌봄'이 함께 해야 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은 모두 부양자인 것이다. 우리는 사랑, 음식, 의복, 주거지, 양육, 교육, 위로, 지지, 간호, 자극, 그리고 다른 많은 것들을 타인을 위해 제공한다." (84쪽)

여성주의 상담의 대가 주디스 워렐과 파멜라 리머는 <여성주의 상담의 원리와 실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주장을 펼친다. '직업의 정의'에서 가정관리, 자원봉사, 여가활동을 배제하는 것은 여성들이 이 활동 등을 통해 발전시키게 되는 직업과 관련된 기술 역시 부정하는 것이 된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직업을 "개인의 일에 대한 몰두와 일로 얻어지는 만족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삶의 경험(교육, 임금노동, 여가, 가정관리, 자원봉사 등)의 발달적 연속체"로 정의했다.

나는 가만히 상상해 보았다. 직장에 나가지 않는, 그러니까 전업주부, 파트타이머, 재택근무자, 프리랜서의 일이 모두 '직업'으로 인정받는다면, '일의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까? 살림을 하는 주부도, 아이가 학교에 간 사이 집중적으로 일하는 엄마도, 세탁기를 돌려놓은 채 자판을 두들기는 재택근무자도 자신의 일을 더 존귀하게 여기며 신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근무형태가 유연해져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돌봄'에 관여하며 일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이들의 기여 덕분에 삶은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더불어 다양한 노동이 존중됨으로써 보다 평등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묵묵히 수행해내고 있는 우리들 중 '노는 사람'은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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