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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297대1 경쟁률 뚫었던 14명, 그들의 현재

[TV 리뷰] < SBS 스페셜 > '297대1의 꿈, 그 후 10년'편

19.09.25 11:55최종업데이트19.09.25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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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스페셜-297대 1의 꿈, 그 후 10년 ⓒ sbs

 
SBS는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공채 탤런트를 선발했다. KBS나 MBC가 드라마를 자체 제작하던 시절 '공채 탤런트'는 마치 지금의 공사 취업 그 이상의, 배우로선 안정적인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드라마 규모와 제작 환경이 바뀌면서 '연예기획사' 등 다른 방식으로 데뷔한 스타들이 주연을 꿰차면서 공채 탤런트가 가진 장점 또한 퇴색했다. 그럼에도 1990년 개국한 SBS는 새로 만들어질 자사 드라마의 자원을 위해 공채 탤런트를 모집했고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성동일(1기), 김지수(2기), 김남주(4기), 김명민(6기) 등이 'SBS 공채 탤런트'란 관문을 통해 배우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하지만 공채에 합격했다고 해서 탄탄대로가 앞에 놓이는 것은 아니었다. 성동일이 1996년 방영된 <은실이> 속 단역에 가까운 역할인 '빨간 양말'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듯, SBS 공채의 길은 험란했다. 결국 2003년 10기를 끝으로 더 이상 공채 탤런트 선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8년 일부 스타급 연기자들의 고액 출연료 등으로 인한 제작비 증가가 문제가 됐다. 이에 더해 배우 수급과 관련 방송국과 연예기획사 사이에 마찰이 빚어지자, KBS에 이어 SBS도 다시 자사 방송국에 1,2년 동안 전속되어 활동하는 공채 탤런트를 모집했다.

이미 드라마 시장에서 연예 기획사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드라마를 통한 스타 탄생 역시 비일비재했기에, 2009년 진행된 SBS 공채 탤런트 모집에는 무려 4157명이 지원했다. 남자 397대1, 여자 222대1, 평균 29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총 14명이 SBS 공채 11기 탤런트가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고 그 중 김성오, 허준석, 김가은 등은 그래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공채 탤런트가 된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 SBS 스페셜 >이 그들을 찾아나섰다.

297대1, 그리고 10년   
 

sbs스페셜-297대 1의 꿈, 그 후 10년 ⓒ sbs

 
제작진이 처음 만난 건 김호창씨다. 이름은 낯설지만 포털 사이트에 그의 이름을 치면 40~50개의 작품이 나열될 만큼, 그는 여러 작품 속에서 감초같은 조연을 맡아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얼굴이다.

젊은 김호창은 드라마를 보느라 직장 나갈 시간인 것도 잊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그게(연기자) 바로 자신의 길이라 생각했다. 드라마에 나오면 더 이상 어머니가 고생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았다. SBS 공채 탤런트라는 명찰을 걸고 방송국에 들어설 때면 성공은 눈 앞에 있는 것 같았고, 곧 유명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다. 어렵게 공채가 된 동기들은 청소 아줌마보다 더 일찍 나와 탤런트실을 지켰다. 지나가는 행인 등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는 다작 배우가 되었고, 스스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은 낯설다. 그래도 김호창씨는 여전히 연극과 영화, 드라마를 오가며 꿈을 이루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당시 동기들 중 가장 먼저 주목받았던 이수진씨는 당시를 회상하며 "눈 앞에 계단이 보여 걸어가기만 하면 될 것 같았던 시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배역을 따기 위해 수시로 봤던 오디션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그녀를 찾는 목소리조차 많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보니, 그녀 앞에 놓인 계단은 점점 투명해져 갔다. 10년이 지난 지금, 이수진씨는 이름을 이가현으로 바꾼 뒤 다시 프로필 사진을 찍고 있다. 현재 생계를 위해 친구의 카페 일을 돕고 있는 이수진씨는 연기자의 꿈을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고 말한다. 물론 처음 시작했을 때와 지금은 다른 마음이란다. 그때는 무엇이 되고 싶어서였다면, 이젠 그저 연기자의 길을 걸어야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나 자신에게 참 열심히 살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sbs스페셜-297대 1의 꿈, 그 후 10년 ⓒ sbs


당대 이미 스타였던 김태희와 동명이인으로 주목받았던 김태희씨는 중국으로 향한다. 유명 백화점 모델로 발탁되어 중국에서 연예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선 더 이상 자신을 알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판단해 언어의 장벽을 감수하면서 선택한 길이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라고도 생각했다.

10년 전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린 태희씨는 주마등같이 눈 앞에 스치는 지난 시절을 회고하며 "나 자신에게 참 열심히 살았다고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항상 외줄타기와도 같은 배우의 삶을 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자만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란 신념으로 살았다는 그녀는 이제 중국에서의 도전을 시작한다.

동기들 중 가장 미모가 뛰어나서 주목받았던 김효주씨는 활동 도중 사라져 동기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던 인물이다. 가보지 않은 낯선 길을 택할 용기가 없었다던 그녀는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어 조용히 그 길에서 물러섰다고 한다. 그리고 미술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유연해져 자신의 길을 돌아보게 되었다고 한다. 10년 전 자신의 모습이 마치 전생같다던 효주씨는 이제 다시 용기를 내서 오디션을 보러 다닌다. 그리고 연기자로의 인생 2막을 준비 중이다. 
     
비록 10년이 흘렀지만, 김호창씨와 이수진씨, 김태희씨, 김효주씨는 여전히 그때 선택한 길 위에 있다. 아직 그들의 꿈은 진행 중이지만, 대번에 날아오를 것 같던 그때와 마음은 좀 다르다. 그들은 날아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연기'하는 자신의 삶이 좋아 연기자라는 길 위에 머물고 있다.

반면, 당시 21살 최연소로 발탁된 석진이씨 당시만 해도 연기에 더더욱 미치고 싶다며 포부를 당차게 밝혔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그 길 위에 있지 않다. 처음에는 하루하루 꿈꾸는 것 같았고 즐거웠지만 계속 계속 살아남아야 하는 배우라는 직업의 생리가 그녀의 성향과 맞지 않았던 것이다. 복학을 하고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며 불투명한 미래에 저당잡힌 자신을 견딜 수 없었던 석진이씨는 몇 달 동안 한두 시간만 자며 공부해 승무원이 되었다. 비록 일은 힘들지만 안정적인 생활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다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sbs스페셜-297대 1의 꿈, 그 후 10년 ⓒ sbs

 
29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날개를 달았던 14명의 10년 전 공채 탈렌트들, 다큐는 그렇게 10년 전 꿈을 꾸었던 젊은이들을 통해 다시 꿈을 묻는다. 십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혹은 왜 여전히 이곳에 있는지, 혹은 다른 길을 선택했는지를 짚어본다. 그것을 통해, 그저 배우가 되려고 했던 젊은이들이 아니라 여전히 갈림길에 선 동시대인들의 공감을 얻고자 한다. 
 
하지만, 10년 전을 회고한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그들은 공채라는 자부심을 채 느끼기도 전에 그 날개는 초라해 졌다. 당시 몇몇 드라마에 출연 기회는 얻었지만, 이미 대세가 되었던 외주 제작과 연예 기획사의 융성기에 방송국은 자사가 뽑아놓은 젊은 유망주들을 제대로 보살펴주었을까? 그랬다면 그들이 기억하는 10년 전이 그토록 애잔하지는 않았을 것같다.

물론 각자의 재능과 스타성이 무엇보다 우선시 되는 '배우'라는 직업의 특성도 있겠지만,  시스템 속에 그들을 묶어놓고 흘러보낸 시간, 10년 전과 지금의 꿈을 논하기 전에, 그 꿈을 저당잡았던 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꿈은 그저 막연한 개인의 의지만이 아니다. 시대와 사회가 움틔워주어야 할  새싹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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