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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기 어려웠던 시절의 소중함... 우리는 왜 잃어버렸을까

[리뷰}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지켜내고 싶은 단 한 가지

19.09.03 14:37최종업데이트19.09.03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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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포스터 ⓒ CGV 아트하우스

 
공간은 추억을 담는 그릇이다. 그 가게, 그 집은 아직도 있을까? 어릴 때 살던 동네를 다시 간 적이 있다. 그 집은 재개발을 용케 이겨내고 세월을 견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 집 앞에서 찍었던 사진을 떠올리며 추억의 장소를 더듬어 갔다. 기분 좋은 장소에서 기분 좋은 기억을 꺼내 보았다. 모든 기억을 담을 수 없어 슬픈 인간은 손때 잡힌 벽지처럼 바랜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그땐 그랬지 하고 말이다.

감성을 자극하는 정지우 감독의 신작 <유열의 음악앨범>은 타임머신을 타고 1994년부터 1997년, 2000년 초중반을 여행한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사연이 라디오 DJ의 목소리를 타고 나올 때의 탄성, 내가 고른 노래를 담은 믹싱 테이프, PC 통신, 스카이 휴대폰, 네이트온 등.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음악과 소중한 추억을 소환한다. 포근하고 따뜻했지만 무서우리만큼 서늘했던 이별 감정까지. 레트로 감성과 정지우표 멜로가 반가운 이유다.

엇갈림과 첫사랑, 그때 그 시절 우리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1994년 10월 1일 유열이 '유열의 음악앨범' 라디오 DJ를 시작하던 날, 미수(김고은)와 현우(정해인)는 처음 만난다. 약간 쌀쌀하던 아침 빵집에 들어와 두부를 찾던 현우, 설레는 감정을 뒤로 한 채 무뚝뚝했던 그날부터 영화는 시작한다. 출발할 때 에너지가 가장 많이 드는 세 가지는 무엇일까. 방송, 사랑, 비행기라는 멘트가 흘러나오며 둘 사이를 예고한다.

1997년, 다시 만난 둘은 이 밤의 끝을 잡고 싶다. 미수는 내일 첫 출근을 하고 현우는 군대에 간다.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은 아득한 밤도 이기지 못한다. 그렇게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미수는 군대 가서 이메일 보내라며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아뿔싸,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아 둘은 또 만나지 못한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2000년, 또 우연히 만날 기회가 온다. 여전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유열의 음악앨범' 때문이다. 두부와 도넛이란 별칭, 비밀번호는 학번이라는 미스터리한 사연을 듣고, 비밀번호를 푼다. 현우는 소년원을 다녀온 아이다. 한 번 찍힌 낙인을 사회는 쉽게 지워주지 않는다. 바르게 살고 싶어도 꼬이고 꼬이는 인연과 삶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발목 잡혀 있다. 미수는 대학을 졸업해 선택한 첫 직장이 기대와 달라 낙심한 상태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뿐 꿈을 이룬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2005년, 둘은 드디어 온전히 만난다. 그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겹겹이 그리움을 쌓았다. 다시는 어떤 위기가 닥쳐도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사랑했지만, 또 다른 이유로 삐걱거린다.

변화하는 세상 속 지켜내고 싶은 단 한 가지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세상은 변한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훨씬 편리해졌지만 감성은 메말라갔다. 썼다 지웠다는 반복하며 편지 한 통을 써서 우체통에 보내고 답장을 받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손글씨는 그 사람이 써 내려갈 때 감정과 섞이며 읽을수록 함께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의 마음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 온기가 느껴지는 마법이었다.

삐삐를 치고, 공중전화로 확인하던 시절에는 약속과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지금이야 해외에 있는 사람과 언제든지 영상통화도 즐길 수 있고, SNS로 속속들이 그 사람의 일상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다. 기술로 시간을 절약한 만큼 마음의 거리도 좁혀졌을까?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점점 시간을 들여 오래 만나고 이야기 나누며 관계 맺는 진정성을 사라져 버렸다. 가벼운 말로 넓고 얕게 사귀다 헤어짐을 반복한다.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는 앞머리만 있고 뒷머리는 없다. 때문에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우물쭈물하다 보면 금세 달아나 버린다. 간직할 수도 다시 불러올 수도 없어 내내 후회만이 남는다. 때문에 현우는 따뜻하고, 행복했던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사진을 찍어 둔다.

세상도 변하고 감정도 변하겠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첫사랑처럼 맛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맛은 추억과 공유된다. 어릴 적 먹었던 음식이 성인이 되어서도 잊히지 않고 되살아나는 마법처럼, 은자 언니(김국희)가 해준 도넛과 수제비가 오래도록 그리울 것 같다. 자꾸만 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래서 과연 미수와 현우는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했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유열의음악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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