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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대화 단절, SNS만 하는 딸... 서늘한 '충격'

[리뷰] 미카엘 하네케가 그린 21세기 가족의 초상 <해피 엔드>

19.06.28 10:45최종업데이트19.06.2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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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피 엔드> 포스터 ⓒ 그린나래미디어(주)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2017년 영화 <해피 엔드>가 지난 20일 뒤늦게 한국에서 개봉했다. <해피 엔드>는 감독의 전작 <아무르>(2012)에서 병든 아내를 간호하던 80대 노인의 그 다음 이야기이자 소통이 단절된 오늘날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다. 

프랑스 북부, 도버 해협에 위치한 칼레 지역에 사는 로랑 가족은 성공한 사업가 집안으로 거대한 저택에 3대가 함께 모여 산다. 집안의 가장 어른인 조르주(장 루이 트린티냥)의 일상은 감옥이 된 지 오래다. 그는 노쇠한 육체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고,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장녀 안느(이자벨 위페르)는 아들 파스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현하지만 아들이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고민인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안느의 동생이자 성공한 외과의 토마(마티유 카소비츠)는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얼마 전 아들을 낳았음에도 내연녀와의 밀회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이들 가족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주고받지만 대화는 하나의 주제로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흩어져 어색하고 산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서 서로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도 없다. 서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 

SNS로 실체를 모르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에브

토마의 전처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입원을 하게 되고, 토마는 전처와 함께 살던 자신의 딸 에브를 데리고 칼레에 있는 집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제 열세 살이 된 에브를 대하는 가족들의 태도는 마치 잠시 머물렀다 떠날 손님을 대하는 것처럼 썰렁하기 그지없다. 오랜만에 함께해서 어색한 것일 뿐 마음은 무척 아끼고 있다고, 그러니 너무 서운해 하지 말라고 딸에게 양해를 구하는 토마의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어쩌면 엄마를 잃을지도 모르는 딸에 대한 걱정과 연민, 그리고 그동안 떨어져 살며 그가 모를 수밖에 없었던 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읽히지 않는다. 하지만 에브는 이들의 건조한 반응이 익숙해 보인다. 

영화의 첫 번째 시퀀스는 핸드폰 세로 화면에 담긴, 에브의 SNS에 게재된 영상들의 연속이다(이 영상들이 에브의 것임을 우리는 '나중에야' 알 수 있다). 이 영상들과 채팅 창에서 설명된 내용은 에브와 그녀의 엄마 사이에 그 가족 간에는 다정한 접촉이 없으며 소통과 이해의 부재 속에서 에브가 엄마에 대한 미움(이 미움 또한 차갑다)을 키워가고 있다는 것을, 에브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온라인에서 타인들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소통의 방법을 상실한 가족들
 

영화 <해피 엔드>의 한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주)

 
<해피 엔드>는 불친절한 영화다. 감독이 로랑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은 마치 이들의 관계처럼 딱딱하고 끊어져 있다. "아빠는 너무 멀리 있어요." 에브의 말처럼 로랑가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또한 관객들로부터도 멀리 떨어져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마땅히 해야 할 교양 있는 말들을 하지만 그들의 말은 파티장에서 오고가는, 돌아서면 잊혀 질 수십 개의 피상적인 대화들처럼 아무런 위로도 힘도 주지 못한다. 

<해피 엔드>의 가족들은 서로를 위해 울지 않는다. 병든 아내의 얼굴을 베개로 짓눌렀던 조르주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기에 이들은 너무도 차갑고, 각자의 세계에 고립되어 있다.

조르주의 선택이 아내를 위한 선택이었다면, 안느와 토마가 느끼는 책임은 부모와 자식들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위한 책임에 불과하다. 또한 가식 속에서 방황하는 피에르는 소통의 방법을 완전히 상실하고, 에바는 자신만의 방식, 즉 온라인으로 소통이 아닌 공유를 한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사건들의 연관성을 찾느라 영화를 보는 초반에는 조금 답답함을 느낄 수도 있으며 주인공들의 관계가 가족이라는 것을 파악하는데도 조금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는 순간, 관객들은 로랑가 사람들의 민낯에 서늘한 충격을 느끼고 오늘날 가족의 모습을 고민, 그 대안을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강지원 시민기자의 브런치 계정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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