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학생 선수에 '이 XX야' 욕설, 숙소는 '러브호텔'

인권위 스포츠인권특조단 "전국소년체전에서 아동학대 수준 인권 침해”

등록 2019.05.29 12:05수정 2019.05.29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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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자문위원들이 지난 2월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스포츠인권 특별조사단 출범식에 참석해 사무실을 둘러보고 있다. ⓒ 유성호

 
"이 XX, 똑바로 안 뛰어!!"
"너 시합하기 싫어? 기권해 인마"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스포츠 축제가 돼야 할 전국소년체전에서 지나친 경쟁으로 고함, 욕설, 폭언 등 아동학대 수준의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었다. 또 경기장과 숙소 시설도 열악해 어린 학생들이 러브호텔 수준의 모텔 방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최영애)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아래 특조단)은 29일 제48회 전국소년체육대회(아래 전국소년체전) 인권상황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대한체육회에서 주최한 제48회 전국소년체전은 지난 5월 25일부터 28일까지 전북 지역에서 초·중학생 선수 1만2천여 명과 임원 5천여 명 등 약 1만7천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체육계 '미투'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2월 25일 출범한 특조단은 지난 25일, 26일 이틀간 전국소년체전이 열리고 있는 전북 익산, 전주, 완주, 고창, 정읍 등 15개 체육관에서 실시된 12개 종목(축구, 야구, 배구, 검도, 농구, 수영, 체조, 테니스, 유도, 핸드볼, 씨름 조정 등) 경기장 안팎과 선수 숙소 상황 등을 조사했다.

"이 XX, 똑바로 안 뛰어!"... "코치들 욕설, 폭언 등 아동학대 수준"

특조단은 "직접적인 구타나 폭행 상황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경기에 뒤처지거나 패배하였다는 이유로, 경기 중, 작전타임 혹은 경기종료 후 코치, 감독이 초·중학생 선수에게 가하는 고함, 욕설, 폭언, 인격 모욕 등 행위가 여러 경기장과 그 주변에서 목격되었다"면서 "이런 행위가 일반 관중, 학부모, 다른 선수와 지도자가 지켜보는 중에도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일상화된 '코칭'이나 '독려' 행위로 인식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조단에서 확인한 인권침해 행위는 ▲ 경기 중 "이 XX, 똑바로 안 뛰어!!" "너 시합하기 싫어? 기권해 인마", "뭐하는 거야" 등 지속적으로 화를 내며 학생 선수를 질책,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 ▲ 선수보다 코치가 승패에 더 좌절, 환호하고 감정 표출(울음, 분노, 고성, 욕설 등)하는 행위 ▲ 작전 타임, 하프타임 쉬는 시간 등에 선수들에 대한 작전 지시, 휴식보다는 선수들이 잔뜩 위축된 가운데 "지금 장난하냐? 왜 시킨 대로 안 해?"라는 등 고성을 지르고 혼내는 행위 등이다.

이밖에 ▲ 경기 중인 선수를 불러 야단을 치는 행위 ▲ 경기 중 여학생 선수가 코치에게 다리 부상 신호를 보냈으나 코치가 화를 내며 경기에 임할 것을 지시하는 행위 ▲ 경기 종료 후 코치가 패배한 선수를 데리고 나오면서 "그걸 경기라고 했냐!"라며 선수의 뒷목 부위를 손바닥으로 치며 화를 내는 행위 등도 있었다.

"남성 코치·심판, 여학생 선수에게 불필요한 신체 접촉"

남성 코치나 심판이 여학생 선수에게 불필요하게 신체 접촉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특조단은 "일부 남성 심판이나 코치가 여학생들의 목이나 어깨를 껴안고 이동하는 행위, 일부 경기 위원이 규정과 달리 중학생 선수의 허리를 잡는 행위 등 지도자 등에 의한 '불필요한' 신체 접촉 상황이 경기장 주변에서 여러 차례 목격됐다"면서, 인권위의 '스포츠 분야 성폭력 예방을 위한 인권 가이드라인'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특조단은 학생선수 숙소로 사용되는 모텔 3곳을 조사했는데 이 가운데는 남성 코치가 여성 선수들을 인솔하면서 여성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고 밝혔다.

한 초등학교 농구부 여자선수 10명이 지난 24일부터 27일까지 모텔 방에 단체로 머물렀는데 남자 교사 1명만 돌보고 있었고, 모텔 방은 욕실 문이 없어 욕조가 그대로 노출되는 전형적인 러브호텔 구조였다고 한다. 여성 총무 역할을 하는 학부모가 있긴 했지만 경기 첫날 이후 귀가했다고 한다.

'러브호텔'에서 학생 선수들 투숙... 탈의실 없어 '노상 환복'도

특조단은 "사전 훈련 포함 최대 일주일까지 모텔에 투숙하는 상황에서, 별도의 여성 보호자가 없는 경우 성폭력 사건의 예방이나 대처가 어려울 수 있다"면서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여성 선수 동반 시 여성 보호자 동반 필수' 등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모텔 실내가 이른바 '러브호텔' 용도의 인테리어가 많아 아동이 장기 숙박하기에는 부적절한 곳이 많았다"면서 "대규모 아동·청소년 행사 개최와 관련한 '아동 적합 숙소 표준' 등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특조단이 방문한 15개 체육관 가운데 탈의시설을 갖춘 곳은 5개 시설뿐이었고 이마저 수영장 1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사용되지 않거나 사용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선수들은 숙소나 자동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거나 심지어 경기장 화장실, 복도, 관중석 등 노출된 장소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특조단은 "전국소년체육대회는 스포츠 경기대회이기 이전에 초·중학생 등 1만 명 이상의 아동들이 참여하는 행사라는 점, 폭언을 중심으로 한 스포츠 폭력이 여전히 만연한 가운데, 대규모 스포츠 대회를 개최하면서 (성)폭력 예방을 위한 홍보, 상담, 신고 체계를 갖추지 않은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인권위는 "전국소년체전이 아동인권 사각지대가 되지 않고 아동청소년을 위한 스포츠 축제라는 교육적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종목별 전국대회 등의 인권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예정"이라면서 "이를 토대로 아동 참여 대규모 스포츠 행사를 위한 '인권 보호 가이드라인' 등 필요한 인권지침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국소년체전 #인권위 #스포츠인권특별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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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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