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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후보' 박상미, 여자배구 대박 '언더독 스타' 탄생하나

6년 벤치-퇴장 위기에서 '1위 팀 주전' 우뚝... 밝고 활기찬 플레이 '팬 급증'

18.12.14 19:38최종업데이트18.12.1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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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 배구' 박상미 선수(IBK기업은행) ⓒ 한국배구연맹

 
'신인보다 더 신인 같은' 중고참 선수. 박상미(25세·165cm)가 여자배구 새로운 스타로 급부상하고 있다.

프로 데뷔 이후 6년 동안 존재감조차 미미했던 '만년 후보'의 인생 역전 드라마에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상미는 현재 2018~2019시즌 V리그 여자배구 1위 팀인 IBK기업은행의 주전 리베로로 우뚝 섰다.

14일자 올스타 투표에서도 V스타 리베로 부문에서 1만4천여 표를 얻어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인 김해란(3만여 표) 다음으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또 다른 국가대표 리베로인 나현정을 근소하게 앞서 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득표수다.

이정철 IBK기업은행 감독도 14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사실 올 시즌 리베로 포지션 때문에 걱정을 많이 했는데, 지금까지 박상미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 잘해주고 있다"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해주면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더 성장할 수 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박상미의 장점에 대해 "평소에도 워낙 수비 연습을 열심히 한다. 무엇보다 체력과 근력이 좋고, 발이 빠르고 잘 뛴다. 그래서 축구도 잘한다"며 "수비 자세와 폼도 괜찮고, 몸에 부상도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볼에 대한 리듬과 타이밍, 힘의 강약 조절 이런 것들만 더 다듬어지면,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인 김해란과 비슷한 유형이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실제로 두 선수의 스타일이 닮은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정철 감독 "더 다듬으면, 김해란과 비슷한 유형 될 것"

박상미는 인상과 행동만 보면, 영락없이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이다. 그러나 올해 프로배구 7년 차 선수다. 지난 2012년 10월 열린 2012~2013시즌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로 KGC인삼공사에게 지명됐다. 그리고 그 해 V리그에서 프로배구 선수로 처음 활약을 시작했다. 

당시 함께 신인 드래프트에 나온 선수가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이소영(GS칼텍스)을 비롯해, 신연경(흥국생명), 최수빈(IBK기업은행), 노란(KGC인삼공사), 한지현(IBK기업은행) 등이다. 박상미는 이소영과 전주 근영여고 동기생이다.

박상미는 올해 첫 FA 자격을 얻어 KGC인삼공사와 연봉 5천만 원에 재계약을 했다. 고교 동기인 이소영이 연봉 2억 원에 'FA 대박'을 터트리고 국가대표 선수로도 잘나가고 있었지만, 박상미는 부러움을 느낄 겨를조차 없었다. 프로 팀에서 살아남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FA 계약 기쁨도 잠시였다. 지난 6월 KGC인삼공사의 백목화·박상미·신인 드래프트 3라운드 지명권과 IBK기업은행의 노란·신인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을 맞바꾸는 3 대 2 트레이드가 단행됐다.

박상미는 6년 동안 정든 KGC인삼공사를 떠나, '호랑이 감독'으로 소문난 이정철 감독의 IBK기업은행으로 둥지를 옮겨야 했다. 이 트레이드는 결과적으로 박상미에게 1위 팀 주전 리베로와 함께 만년 후보 꼬리표를 떼게 해준 배구 인생 최대의 행운을 안겨다 줬다.

"감독님, 저는 원 포인트 서버로도 만족합니다"

박상미는 프로 데뷔 첫해인 2012~2013시즌부터 올 시즌 초반까지 무려 6년 동안 후보 신세였다. 그것도 자신의 전문 분야인 리베로가 아니라, 원 포인트 서버나 서베로로 잠깐씩 코트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다.

원 포인트 서버와 서베로는 수비가 약한 주전 선수가 서브 차례가 될 때, 대신 들어가 서브 넣고 후위에서 수비를 해주는 역할을 말한다. 그러나 전위로 올라가는 차례가 되면, 다시 주전 선수와 교체돼 코트 밖으로 나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2012~2013시즌부터 2014~2015시즌까지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는 임명옥(33세·175cm)이었다. 2015~2016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는 김해란(35세·168cm)이었다. 박상미에게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나 다름없는 국가대표 주전 리베로들이다. 지난 2017~2018시즌 KGC인삼공사의 주전 리베로는 오지영(31세·170cm)이었다.

박상미는 올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여전히 '만년 후보'의 모습 그대로였다. IBK기업은행의 주전 리베로는 한지현이었고, 백업 리베로는 신인 선수인 김해빈이 주로 출전했다. 박상미는 원 포인트 서버나 서베로로 잠깐씩 출전했다. 이러다 영영 자리를 못 잡고, 실업팀까지 고려해야 하는 위기 상황이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했던 기회가 찾아 왔다. 지난 11월 24일 현대건설과 경기를 앞두고 주전 리베로 한지현이 부상과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기 출전이 어렵게 됐다.

이정철 감독은 박상미를 선발 리베로로 투입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이날 오전 박상미를 따로 불렀다. 그는 "상미야, 오늘은 니가 선발 리베로다"며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아라. 편안하게 하고, 집중력을 가지고 볼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라"고 당부했다.

이어 "들어가서 잘 안되면 김해빈하고 바꾸고, 김해빈이 흔들리면 다시 들어가야 된다. 바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감독은 부담감을 덜어주고자 그렇게 말은 했지만, 감독 본인도 불안하긴 매한가지였다.

그 순간 박상미에게서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감독님, 저는 지금도 원 포인트 서버로도 만족합니다." 겸손하고 진지한 자세에 감명 받은 이 감독은 "그래 그런 마음으로 편하게 부딪쳐 봐라. 잘하면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격려를 했다.

6년 감춰둔 '실력·매력' 대방출... 그는 '준비된 스타'였다
 

박상미 선수(IBK기업은행) ⓒ 한국배구연맹

 
박상미는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날 경기에서 안정적인 서브 리시브와 투지 넘치는 디그(상대팀이 공격한 볼을 받아내는 것)로 팀 승리에 큰 기여를 했다. 팀에서 리시브 점유율 53.8%, 리시브 효율 57.1%라는 놀라운 활약을 펼쳤다.

감독과 팬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 찍은 박상미는 이후 경기에서도 계속 선발 주전 리베로로 투입됐다. 대부분의 경기에서 50%를 넘나드는 리시브 점유율과 리시브 효율을 기록하며, IBK기업은행이 1위로 치고 올라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박상미는 프로 데뷔 이후 서브 리시브를 가장 많이 받았던 경험이 2016~2017시즌의 102번이었다. 유일하게 100개를 넘어선 시즌이었다. 리시브 시도 기록이 '제로(0)'인 경우도 무려 3시즌이나 된다. 그러나 올 시즌은 고작 5경기에 선발 리베로로 출전했음에도 벌써 165번의 리시브를 받아냈다.

지난 12일 KGC인삼공사전에서는 난생 처음으로 중계 방송사의 수훈 선수 인터뷰까지 했다. 박상미는 신인 선수처럼 한껏 들뜬 표정과 환한 모습으로 또박또박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너무 긴장하고 들어갔다"며 "조금 더 릴렉스하게 풀어가려고 했고, 정말 집중해서 경기에 임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경기 출전에 대해) 정말 욕심은 났지만, 표출을 하지 않고 그냥 내 자리에서 열심히 하다가 이렇게 기회를 잡아서 더 잘되는 거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니운서의 요구에 막춤까지 선보였다.

이 모습을 본 배구팬들은 뜨거운 반응을 쏟아냈다. 관련 동영상에 4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배구도 잘하는데, 너무 귀엽고 밝고 순수하다", "착하고 야무지게 보인다", "뭔가 신선하고 색다른 매력이 넘치는 선수" 등 칭찬과 응원 글이 줄을 이었다.

배구팬, '언더독 하회탈' 박상미의 마력에 빠지다

박상미의 매력은 또 있다. '언더독'(Underdog·약자가 강자를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의 대표적 선수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언더독은 '마약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그들의 경기를 보면 왠지 짠하고 잘됐으면 하는 심리, 그것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박상미는 후배 선수와 배구팬들에게 선물 같은 존재다. 그를 잘 몰랐던 배구팬들은 신선하고 색다른 매력을 발산하는 선수의 등장에 환호했다. 그를 지켜봐 왔던 후배 선수와 배구팬들은 기나긴 설움을 묵묵히 참고 견디며 만들어낸 성공적 결말에 뭉클한 감동과 대리만족을 느낀다. 아울러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기운을 전달 받는다.

최근에는 이런 일화도 있었다. 박상미는 11월 24일 현대건설과 경기 직후 수훈 선수로 선정돼 언론사 인터뷰실에 가게 됐다. 그런데 인터뷰실에서 선수가 앉는 단상으로 바로 가지 않았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기자석에 앉아 버렸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기자가 호명할 줄 알았던 모양이다. 기자도 당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언론사 인터뷰가 난생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를 지켜 본 구단 관계자는 웃으면 안되는데, 참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면서도 박상미의 순수함과 귀여운 모습에 흐뭇했다. 이정철 감독도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 "프로 7년 차인데도 때가 묻지 않았다"며 "늘 밝은 에너지를 발산한다"고 칭찬에 가세했다.

"이런 친구들이 진짜 잘됐으면 좋겠다." 한 배구팬이 박상미의 인터뷰 영상을 보고 남긴 글이다. 이 짧은 문장에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다.

박상미는 한때 별명이 '하회탈'이었다.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고 환해서였다. 올 시즌 배구팬은 박상미의 유쾌한 마력에 빠질 준비도 해둬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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