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돼 있다"는 날짜, 남북은 왜 발표 안했나

[분석] 다섯번째 만남은 어떤 만남이 될 것인가... "9월에 떳떳하게 만나자"

등록 2018.08.13 22:29수정 2018.08.14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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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하는 리선권-조명균 조명균 통일부 장관(오른쪽)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13일 오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 악수를 나누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날짜를 명기하지 않은 채 5차 남북정상회담을 9월에 평양에서 열기로 했다는 합의가 나왔다. 하지만 명기하지 않은 '정상회담 날짜'를 두고 남과 북 고위급회담 당사자들이 조금 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

13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고위급회담 뒤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왜 공동보도문에 회담 개최 날짜가 명시되지 않았냐'는 남측 기자들의 질문에 "기자 선생들 궁금하게 하느라 날짜를 말 안했다"면서 "날짜 다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남측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별도 브리핑에서 "구체적인 날짜는 여러가지 좀 더 상황을 보면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자면, 정상회담 날짜를 양측이 정해놓고 발표만 안 한 것이라기 보다는, 실제 약속된 것은 '9월 안'이라는 기한일 뿐 정해진 날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날짜보다는 조건

주목할 부분은 "날짜 다 돼있다"고 말했던 북측 리선권 위원장의 그 다음 말이다. 리 위원장은 "북남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만약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그런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명균 (통일부장관) 선생도 돌아가서 필요한 조치를 취해서 북과 남, 남과 북의 모든 일정이 진척되게 제 할 바를 다하자는 걸 특별히 얘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북남 협력과 교류에 대한 성원과 열의가 대단하다. 이게 하나 된 민족의 모습이구나, 이 열망과 소망을 그대로 끌고 나가면 민족의 화해와 번영, 통일이 순식간에 이뤄진다는 생각이 있다"면서 다시 한번 "여기서 중요한 게 쌍방 당국이 책임과 역할을 다 하는 것이다. 9월에 예정된 평양 수뇌상봉과 회담 때 각자 책임을 다하고 떳떳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리 위원장의 전체 발언과 조 장관의 발언을 종합해 들여다보면, 리 위원장이 "날짜 다 돼 있다"고 말한 것은 북측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시기는 있지만, 또 그것도 "9월 안"이지만, 이를 제시할 조건이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북측 관영 매체들이 최근 남측을 향해 '대북제재 위반을 의식해 남북 교류 협력에 소극적으로 임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온 것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날짜가 명시되지 않은 이번 합의에 담긴 의미는, 정상회담이 9월 안에 열릴 가능성은 매우 높지만, 예정된 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또 하나의 역사적 만남'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남북관계 진전을 확인하는 자리'에 그칠 것인지 아직은 미지수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북미협상 돌파구 열어야 '9월 역사적 평양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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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고위급회담 발언하는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13일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9월 남북정상회담 변수'는 더 있다. 교착 상태인 북한과 미국의 비핵화협상이 돌파구를 찾느냐 여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 폼페이오 국무부장관이 북한을 방문해 관련 논의를 이어가자고 제안해놓은 상태다.

지난 7월 초 북미 고위급회담과 이어진 협상에서 미국 측은 초기 신뢰 구축 조치로 '핵탄두 60~70% 우선 반출'을 제안했지만, 북측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은 미군유해송환과 같은 북미 정상회담 합의사항은 그대로 진척시키면서도 미국의 제안은 '강도적'이라고 비판했다. 종전선언과 같은 체제보장 조치에 대한 논의 없이 핵무기부터 빼내는 것은 안된다는 입장이다.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방문 가능성이 남아 있는 등 북미 대화 상황이 아직 유동적인 것도 북측이 남북정상회담 일자를 확정하지 못한 하나의 이유로 보인다.

북미 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교환하는 협상이 진전을 이루면, 9월 정상회담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또 하나의 역사적 만남'이라는 커다란 기념행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북미대화가 잘 풀리지 않으면 '남북 정상이 자주 만나 관계 진전을 확인하는 자리' 정도에 그칠 수 있다.

이어질 실무회담 적극 활용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9월 안 평양 개최'까지만 합의한 것은 남북 공히 이어질 실무회담을 상황 진전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정상회담 날짜와 의제, 방문단 규모 등만 논의하는 게 아니라, 남북 간 의견 교환이 상시적으로 일어나면서 북미 대화를 진전시킬 '우회로'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가장 좋은 상황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에 돌파구가 마련돼 비핵화 조치와 종전선언 교환에 합의하고,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의 획기적인 진전을 선언하는 것"이라며 "이 같은 목표를 위해 남측과 북측이 실무회담을 활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또 "하지만 그런 목표가 실현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은 충분히 의미가 크다"며 "판문점 선언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뿐 아니라 남북 정상이 정례적으로 만나는 것만으로도 남북 간 평화 정착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평양 #실무회담 #돌파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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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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