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무라카미 하루키와 낮술

[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제주 열일곱째 날

등록 2018.06.12 10:44수정 2018.06.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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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비다. 비가 오면 왠지 '오늘은 놀아' 하고 허락 받는 느낌. 그렇지 않아도 계속 놀고 있는데 말이다. 즐겁게 읽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에 이런 글이 있다.

'아무리 멀리까지 갔더라도 아니 멀리 가면 갈수록 우리가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단지 우리 자신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매우 공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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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 이명주


여행 환경에 적응하자 일상의 생활 습관이 되살아났다. 그 중 하나가 음주인데 혼자 또 같이 술을 마시는 빈도가 잦아져 금주를 결심한 지 사흘째. 하지만 하루키의 책에서 이런 구절과 마주하고 말았다.

'유타 주에 있는 동안은 술을 마실 수 없어 난처했다. ... 이따금 2,3일쯤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겠지' 하고도 생각했지만, 마시지 못하게 하면 더욱 마시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 그 후에 자동차 안을 샅샅이 뒤져 ... 미지근한 버드와이저 캔 하나를 발견... 그것을 호텔로 들고 와 차게 해서 두 사람이 절반씩 나누어 마셨다. ... 최고의 맛이었다.'


숨이 꼴딱 넘어가게끔 하는 생생한 묘사 덕에 나 역시 그 '최고의 맛'을 기대하며(딱 첫 잔만 그렇다는 걸 알면서도!) 차가운 맥주병을 뚜껑을 열었다.


낮술과 함께 비오는 날 하면 좋은 것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본다.

1. 빗소리 녹음해서 듣기
2. 뜨겁고 달달한 차 마시기
3. 재밌는 책 읽기
4. 잠 오면 자기
5. 고양이랑 놀기(이건 언제나)
6. 술 마시기(이것도 거의 언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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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 이명주


다음 한달살기를 위한 팁(Tip).

1. 무게를 많이 차지하는 강호의 사료나 모래 등 5kg을 초과하는 짐은 목적지에 미리 택배로 붙인다. 돈도 체력도 상당 아낄 수 있다. (※ 항공사 규정 운임 초과시 kg당 2천 원 부과)
2. 장화 챙기기. 오늘처럼 비 오는 날 신발 젖을 것 걱정하지 않고 과감하게 놀기 위해.
3. 일회용 아닌 숟가락과 젓가락 챙기기. 쓰레기도 줄이고 특히 예기치 못한 환경에서 식사를 하게 되는 경우를 대비.
4. 집게와 옷걸이. 숙소에서 제공하는 것이 있지만 더 필요할 때가 있다. 역시 오늘처럼 비가 와서 세탁한 옷들을 안에서 널어야 할 때 포함.

강호는 빗소리에 취한 듯 잠이 들었고 나는 낮술에 취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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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고양이 강호와 낯선 곳에서 한달살기 ⓒ 이명주


이전 글 : '골라 오르는 재미' 제주 오름에 반하다
덧붙이는 글 우리의 실시간 여행이 궁금하다면?
https://www.facebook.com/pg/travelforall.Myoungju
http://blog.daum.net/lifeis_ajourney

뺑소니 사고로 두 다리를 잃은 강호에게 휠체어를 선물하고 싶습니다. 여행 중에 만나는, 도움이 필요한 동물들도 할 수 있는 만큼 돕고자 합니다. 이 여행이 끝나면 사람과 동물이 함께 쉬고 놀 수 있는 여행자 공간(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열고자 합니다. 저희의 여행을, 동물들의 보다 행복한 삶을, 다시 열 게스트하우스에 초대 받고 싶은 분은 '원고료'로 응원해주세요!
#제주 한달살기 #한달 여행 #고양이와 여행 #비오는 날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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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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