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카드에나 열리는데... 안전하다는 건 어불성설"

노동자 사망사고 한 달, 재가동 시작한 남양주 쓰레기 집하시설... 여전히 불안한 시민들

등록 2018.06.01 17:48수정 2018.06.01 18:57
0
원고료로 응원
[기사 수정 : 1일 오후 6시 56분]

지난 4월 24일 경기도 남양주 별내신도시에서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 투입구를 점검하던 30대 노동자가 배관 안으로 빨려 들어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자 남양주시는 집하시설 가동을 중단하고 외부 용역을 맡겨 점검을 실시했다.

이후 남양주시는 보도자료를 내고 지난달 21일 집하시설 재가동을 시작했다. '안전하다'는 당국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걸까? 1일 오전 직접 현장을 돌며 확인해봤다.

a

남양주 별내신도시에 설치된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 ⓒ 채경민


신용카드 갖다 대자 투입구 '활짝'

별내신도시의 ㅇ아파트의 쓰레기 자동 집하 시설에 신용카드를 갖다 댔다. 삐 소리와 함께 투입구가 활짝 열렸다. 열린 투입구 사이로 보이는 검은색 구멍은 얼핏 봐도 오싹했다.

단지 내 다른 자동 집하 시설은 어떨까? 다른 종류의 신용카드를 가져다 댔는데도 투입구가 쉽게 열렸다. RF(Radio Frequency) 방식의 전용 카드만 인식해야 하는 시설이 엉뚱한 카드에도 반응했다.

a

전용 RF카드가 아닌 기자의 신용카드를 갖다 대자 투입구가 열렸다 ⓒ 채경민


투입구가 이처럼 쉽게 열린다면 장난이나 부주의로 큰 사고가 날 수 있는 상황.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문제점을 알렸다. 관리사무소의 한 직원은 놀라면서도 "빨리 조치를 해야 하는데 업체에서 수리를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걱정했다.


마침 RF카드를 분실해 관리사무소를 찾은 한 주민이 직접 기자의 점검 과정을 지켜봤다. 얼마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는 그는 "안전하다는 말을 믿었는데 아무 카드에나 열리는 걸 보니 불안하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a

아파트 관리소 직원이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을 점검하고 있다. 이 직원의 신용카드로도 투입구를 열 수 있었다. ⓒ 채경민


1일 남양주시 관계자는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문제점을 알고 있다. 수리를 위해 제작 업체와 지난 주에도 회의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언제쯤 수리가 끝나겠느냐는 질문에는 확답을 내놓지 않았다.

100L 투입구, 여전히 '불안'

별내신도시에는 상가와 공원 주위에도 쓰레기 자동 집하 시설이 있다. 기자가 무작위로 세 곳을 찾아 점검한 결과 다행히 RF 카드가 아닌 다른 카드에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투입구 용량이 100L로 큰 곳이 많아서 불안해 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주민 최아무개씨는 "100L 투입구는 너무 커서 무서움을 느낀다"며 "사고 이후 한 번도 이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별내신도시에 설치된 쓰레기 자동 집하 시설 중 투입구가 100L인 곳은 238곳이다.

a

남양주 별내신도시의 한 공원에 설치된 쓰레기 자동집하시설. 100L 투입구 규격이다. ⓒ 채경민


이에 대해 남양주시 관계자는 "6월 내에 100L 투입구를 절반인 50L로 줄일 계획으로 현재 견본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또 "투입구 안쪽의 굴곡진 부분에 반사경을 설치해 점검 과정에서 작업자가 안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일을 차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했다. 상가 건물에서 청소를 하는 한 노동자는 "투입구 크기보다는 흡입력이 문제"라며 "투입구 크기를 줄여도 여전히 위험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오작동까지 많아져 집하 시설을 옆에 쓰레기를 내려놓고 가 버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 투입구에 넣지 않고 바닥에 놓고 간 쓰레기봉투를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a

투입구 옆에 방치된 일반 쓰레기 ⓒ 채경민


a

자동 집하 시설 옆에 방치된 쓰레기 ⓒ 채경민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시민은 "남양주시는 안전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쓰레기 집하시설이 아무 카드에나 열리는 문제를 지금까지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며 "수리에 수개월씩 걸리는 장비를 안전하다고 홍보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복잡하고 위험한 시설인데도 법적 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며 "신도시에 유행처럼 설치하고 있지만 시설이 점점 노후될 수록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은 폐기물관리법 안에 처리 관련 시설로 분류되어 있지 않아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일각에서 시설로 인한 땅 꺼짐 위험 등 다양한 문제를 제기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법규에 명시해 안전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자동 집하 시설은 신도시를 중심으로 현재 전국 17개 택지 지구에서 사용 중이다.
#별내신도시 #쓰레기 자동 집하시설 #크린넷 #남양주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인터넷 신문, 케이블,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다양한 미디어에서 언론 노동자로 일했습니다. 사소한 것에 관심이 많고 기록하는 일을 즐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국인들만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소름 돋는 '어메이징 코리아'
  2. 2 그가 입을 열까 불안? 황당한 윤석열표 장성 인사
  3. 3 참전용사 선창에 후배해병들 화답 "윤석열 거부권? 사생결단낸다"
  4. 4 '이태원 특별법' 여야 합의했지만... 욕먹은 김진표에 달렸다
  5. 5 눈썹 문신한 사람들 보십시오... 이게 말이 됩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