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우근, 조용하지만 울림 큰 목소리

[신간 리뷰]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등록 2018.04.30 15:06수정 2018.04.3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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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근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 선


오래 고민한 시어(詩語)들이 주는 무게감 때문일 것이다. 시인 이우근의 노래는 눈 밝은 철학자의 메시지 혹은, 한소식한 노스님의 법어(法語) 같은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한 줄, 한 줄이 예사롭지 않다.

이우근의 20대를 기억하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그는 열심의 문학청년이었다"고. 시인 스스로도 말했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서 글과 사람을 배우고 튼튼하게 인생의 바닥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법. 이우근에게도 그랬다. 이제 그는 지천명을 훌쩍 넘긴 중년이 됐고, 최근에 상재한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선)을 통해 이런 목소리를 들려준다.

'풀숲이나 기타 경계 모호한 곳에 꽁초처럼 톡, 던져졌지만
한때 뜨거운 꿈도 있었지
절대 바람을 탓하진 않지, 비겁하니까
그러나 땅의 거름도 못 되고
바람의 생채기만 되어...'
- 위의 시집 중 '들꽃' 일부.


지난 세월의 힘겨움과 고통을 세상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이우근의 노래는 결연하다. 그렇기에 '꽁초처럼' 지상에 던져졌지만 '절대 바람을 탓하지 않'고, '땅의 거름'이 되지 못한 스스로를 책할 뿐이다.

'지표'가 되기 위해선 자존심과 심지 있어야

시인이나 화가, 작곡가 등 우리가 '예술가'라고 부르는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달리 쉽게 세상과 융합하거나 화해하지 못한다. 바로 그 '불화의 힘'이 시가 되고, 그림이 되고, 음악이 되는 게 아닐까? 이우근의 시 '천일염'은 이런 명제를 은유하고 있다. 아래 문장을 읽어보자.


'긁어온 소금은/양념된 소금과 달리/쉽게 융화되지 않는다/풍장의 거부, 혹은 박제된 소멸/그러한 나름의 자존심/.../심지가 굵기 때문에/허망해도 강행을 하며/수평의 지평을 위한/하나의 지표가 되어...'


'양념된 소금'이길 당당히 거부하며, 자존심과 심지를 바탕으로 '하나의 지표'가 되고자 꿈을 꾸는 것. 이것이야말로 범인(凡人)과 시인을 구별하는 잣대가 아닐까? 위의 시에서 엿볼 수 있는 이우근의 '시인다움'과 예술가로서의 자긍심은 다음과 같이 진화한다. 짧지만 많은 걸 담고 있는 노래다.

'저 불타는 묵언
뿌리 깊은 정진
지상과 하늘 순간이동의 기능성
혹은, 가능성
멀리 보는 마음
시들지 않는 무욕
바람의 악기, 그 농현
하늘에 맞댄 그 높이를
사람으로선 결코 감당하지 못한다.'
- 위의 시집 중 '나무 1' 전문.


시집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을 접한 시인 홍신선은 "이즈음 우리 시 동네의 시류에 어설피 휩쓸리거나 좌고우면하지 않는 미덕이 있다"며 "거침없고 활달하다"는 것을 이우근의 특장이라 설명한다. 시인 고두현 또한 "오래 가는 꽃은 천천히 핀다"는 말로 꾸준한 시 작업을 격려하며 "천천히 늦게 핀 이우근의 꽃이 오히려 싱싱하다"는 상찬을 내놓았다.

기자가 보기에 이우근은 '조용한 목소리 안에 큰 울림을 담아낼 줄 아는 작가'다. 그래서다. 그가 앞으로 보여줄 세계와 인간에 대한 해석이 어떤 방식일지 아래 인용하는 시를 통해 짐작해보는 일은 즐겁고 유쾌하다.

'먼 바다 물결 소리 채집하여/소금꽃 피우듯/사람 사는 거/한 글자 한 글자 깨치며/먼 길 가듯/책이 묻는다/어찌 살 것인가.'
- 위의 시집 중 '멀고 긴 밤' 일부.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이우근 지음,
선, 2018


#이우근 #개떡 같아도 찰떡처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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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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