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도 영어 정복이 가능하다

등록 2018.04.25 15:25수정 2018.04.2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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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에 걸친 연재를 통해 영어를 둘러싼 구조적 문제와 개인 학습자의 잘못된 방식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번 시간에는 마지막으로 "국내에서 공부한 학생도 영어 정복이 가능하다"로 시작하겠습니다.

#근거 1. 영어는 과목이 아니고 언어다

아주 쉽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말을 한 번이라도 암기한 경험이 있는지요. 단어를 매일 암기하고 문장을 빨간 줄을 그어가며 문법적으로 분석한 적이 있던가요.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온갖 종류의 강의가 자극적인 문구를 통해 영상을 홍보합니다. 단어 완전 정복, 독해 완성 등. 우리가 우리말을 자연스레 배우는 과정과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은 결국 언어 습득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단어를 암기하면 할수록 문장을 분석하면 할수록 우리는 영어라는 언어를 하나의 암기 과목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수학의 공식이나 화학 원소주기율표는 여러 차례 기계적으로 반복하여 암기해야 합니다. 공식을 이해하거나 주기율표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공식이나 위치 명칭을 머릿속에 온전한 형태로 담아두지 않는 한 실제 필요한 경우에 즉각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형태의 암기 방식을 기계적 암기 방식 즉 rote memory라고 합니다. 어릴 때 구구단 암송이나 국민교육헌장 애국가 가사 등을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암기하였고 지금도 정확히 기억해낼 수 있습니다.

영어라는 언어를 수학의 공식이나 화학의 원소주기율표와 같이 간단히 암기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이 문장의 5형식입니다. 중학교 문법책에서는 문장의 5형식을 대부분 제일 먼저 가르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다들 문장 5형식 정도는 머릿속에 잘 보관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영어를 공부한, 수능 1등급을 맞을 수 있는 학생들은 머릿속에 5개의 문장 구조만이 존재합니다. 구구단을 외우듯 영어 표현을 5개로만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언어가 그렇게 간단할까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 a. My friend returned next day.
  b. My friend returned my book.
  c. Agassi usually returns (serve) very well.

동일 어휘 return이 자동사와 타동사로 쓰이면서 의미변화가 일어납니다. 특히 (1c)에서는 의미변화 없이 자동사, 타동사로 쓰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문장의 5형식을 암기한 우리로서는 (1c)와 같은 표현은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만 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 a. They sell children's books here.
  b. Children's books sell well here.
  c. Children's books sell.

sell이라는 동사는 타동사(2a)와 자동사(2b)(2c)로 쓰이는데 (2b)의 경우 well이라는 양태 부사류를 반드시 수반하는 특성을 5형식만 암기한 우리는 활용할 수가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우리가 학습하는 영어는 모두 5형식 범위 내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동사 유형 분류에 관한 소고(이경남, 2011)는 5형식이라는 고정 관념의 틀 깨기를 논합니다. 실제 우리가 흔히 들어 알고 있는 언어학자 Hornby(1975)는 영어문장의 주요유형을 25가지로 제시하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에게 한국말 문형을 5형식으로 만들어주고 암기하여 사용하도록 하면 어떤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매일 단어를 암기하여 그 문형에 맞추어 말도 하고 쓰기도 하도록 한다면 과연 우리말 실력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될까요. 단 우리처럼 영어 환경에 노출될 수 없는 환경에 있다는 것을 전제로.

5형식 문장을 기본 옷걸이로 하여 그 위에 단어를 입혀가는 방식입니다. 학년이 올라가며 관계대명사도 배우고 연결사 분사 등을 학습한 학생들은 곧잘 문장을 복문이나 중문으로 확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장이 분절되고 어딘가 어색한 구석이 보이는 까닭이 바로 문장의 형식에 단어를 입히는 우리의 암기 방식 때문입니다.

#근거 2. 언어는 총체적이다

전체는 항상 부분의 합 이상이다(Goodman, 1986). 언어습득은 부분으로부터 전체로의 습득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인 목적에 따라 의사소통하는 과정에서 먼저 전체로 습득되고 부분은 나중에 완성된다는 총체적 언어 교수법 이론입니다.

구어 습득을 위해 어린이들이 부모, 형제, 친구, 시청각 매체 등과 같은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환경에 노출될 필요가 있듯이 문해 습득도 자연스러운 문해 환경에 많이 노출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읽고 쓰기가 지금보다 더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문자 패턴과 소리 패턴 사이에는 규칙이 존재하므로 어린이들이 글을 읽고 쓰면서 이러한 규칙성을 표준화된 영어의 철자법에 대비해 봄으로써 습득할 수 있다고 합니다(김경한, 2013).

상황이 주는 맥락과 전체적 의미로부터 분리하여 언어를 학습하는 방식은 일상의 자연스러운 언어 사용이 아닌 인위적인 언어학습에 불과하므로 문해 습득에 문학 텍스트가 가장 적합한 학습 자료로 권장하고 있습니다.

교원대학교 김경한 교수는 사범대학교 1학년 영어교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총체적 문학 교수학습 모형을 개발하였습니다. 연구의 결론에서 제시된 제언 가운데 하나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수업 모형 개발의 필요성을 지적합니다. 사범대학교 학생들의 수업 태도와 영어 실력은 일반 고등학교 평균성적을 상회할 것입니다. 게다가 대학교는 학점을 이수해야 하므로 수업의 질이 그만큼 높습니다. 그리고 입학시험의 불편함도 없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대학 입학시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입학시험에 영어가 필수과목으로 들어가고 지금과 같은 방식의 지필고사를 보는 한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의 변화를 바라는 것은 신기루에 불과합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교육정책이 바뀌고 언젠가 입학시험 대신 고등학교 졸업 자격시험으로 제도가 바뀌는 날이 오더라도 교육현장에서는 여전히 문법·번역 방식 수업에 대한 향수가 존재할 듯싶습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 1. 단어 암기 금지

오늘부터 당장 단어 암기를 하지 말도록 합시다. 문맥 속에서만 추론해 보는 방식으로 단어를 반복해 익혀 나가도록 합시다. 물론 제가 말씀드리는 대상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를 대상으로 영어 독서를 매일 30분 이상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결국, 영어 독서로 중심이 옮겨 왔습니다.

#할 수 있는 일 2. 우리말 독서 습관을 길러주자

초등학교 3학년 영어교육이 학교에서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말 독서습관을 길러주는 것이 자녀의 교육에 가장 중요합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부족한 내용을 모조리 책을 통해 빨아드리도록 해야 합니다. 넉넉한 읽을거리가 가까운 곳에 있어야 하고 부모님의 독서습관이 자녀에게로 자연스레 전이됩니다. 책 읽기가 서투른 부모라면 최소한 자녀를 도서관까지는 정기적으로 데리고 가야 합니다.

우리말 독서습관이 형성된 어린이들은 영어 독서의 문턱을 쉽게 넘습니다.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의 책을 골라주고 함께 읽는 방식 등을 통해 일단 우리말과 외국어 사이의 문지방을 넘고 나면 우리말 독서의 습관이 그대로 영어 독서에 전이됩니다.

#할 수 있는 일 3. 문제 풀이 방식은 지양해야 합니다

언어는 풀이의 대상이 아니고 소통의 대상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소통, 활자와 개인의 상호작용 대상입니다. 우리가 언어를 입시 과목으로 정하고 문제를 통해 풀이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언어를 언어로 보지 않습니다. 암기하고 난 다음 그 문제를 풀어야 할 과목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게 됩니다. 우리말의 경우는 문제 풀이가 오히려 더 풍부한 언어학습의 계기로 발전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어는 경우가 다릅니다. 부족한 입력에 기초한 문제 풀이 방식은 외국어 습득을 왜곡시키는 것이 정설입니다.

이제는 마쳐야 할 시간입니다. 영어 독서의 필요성을 알리고자 지난 3회에 걸쳐 많은 이야기를 올렸습니다. 가능한 범위 내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해를 도모하고자 사례도 들고 또 비전문적인 용어들로 글을 구성하였는데 어떻게 느끼셨는지는 모두 다 독자들 몫이겠지요.

다음 글에서는 중학교 영어 독서 성공·실패 사례를 모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해볼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실시한 독서 사례가 수백 건이 넘습니다. 고3이 되어 1등급을 맞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3등급으로 내려간 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조만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영어독서 #단어암기 #문제풀이 #영어교육 #총체적 언어 학습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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