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인으로서, 아픈 역사를 함께 바라본 사람으로서 아직도 말하기가 어렵고 버거워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죄스럽고 미안해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조금이나마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 것 같아요." (배우 이상희)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오멸 감독의 새 영화 <눈꺼풀>이 12일 개봉했다.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3일간 무인도를 무대로 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무인도를 미륵도로 칭했다. 섬에는 떡을 만들어주는 노인(배우 문석범)이 산다. 어느 날, 두 학생과 한 선생이 온다. 선생은 말한다.
"그나저나 떡은 먹고 갈 수 있을까." 그 목소리는 산 사람의 음성과는 다르다.
"이 섬의 노인은 상징적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가운데에 있는 분인데, 긴 여정을 잘 가라고 떡을 만들어 먹여주는 거라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이 떡조차도 못 얻어먹고 가면 어떡할까? 그런 마음으로 (대사를) 했어요." (이상희)
"감정의 폭 크기를 주문 안 했어요. 덤덤하게 자기 대사를 하잖아요? 그게 더 아팠거든요." (감독 오멸)
지난 11일 개봉 직전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눈꺼풀>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감독 오멸과 선생 역을 맡은 배우 이상희가 참여했다. 감독이 본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현대사회 시스템 붕괴, 신의 외면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다.
우리가 모두 눈을 떠야한다
시나리오의 시작은 절구였다고 감독은 밝혔다. 토끼와 절구가 보름달 속에 있다고 본 한국인의 정서에 의문을 가졌다. 그가 얻은 답은 산업화 이전, 보름달이 뜬 늦은 시각까지 어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그게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힘이 아니었을까? 절구에서 빻은 쌀은 무엇에 쓰일까? 떡이 되어 잔치와 제사를 치르거나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는 귀한 음식으로 바뀌는 거죠. 그렇게 지탱해온 사회라고 생각해요." (오멸)
그런데 그 사회가 붕괴한다. 노인이 쥐를 쫓기 위해 절구봉을 휘두르다 절구봉을 깨뜨린다.
"최근 현대화되면서 대한민국을 지탱해 시스템이 붕괴하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건설업에서부터 급변해온 이 시스템의 붕괴가 세월호라는 구조 안에 밀집되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겠는가. 세월호는 현재 붕괴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 절구가 시스템의 붕괴를 상징화시켰고요." (오멸)
영화 첫 장면에는 면벽수행 중 잠이 오자 눈꺼풀을 도려낸 달마대사가 등장한다. 눈꺼풀을 도려낸 달마대사를 통해 오멸 감독은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절구를 우물로 던지잖아요? (제목이) <눈꺼풀>이잖아요? 미륵도 눈떠라. 나도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보겠지만 당신도 눈떠야 한다. 처음 시나리오가 돌 던져서 미륵을 깨우고 싶다, 이런 느낌? 절구를 던져서 미륵을 깨웠더니 미륵이 다시 제게 질문을 하고 있더라고요. 너 뭐하는데? 다시 질문이 돌아오는 느낌이었죠." (오멸)
각자의 부처를 찾다
"감독님이 디렉션은 거의 안 주셨어요. 항상 매 컷을 많이 고민하셨죠. 수시로 말씀하신 것은 '지금 찍는 것을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셨어요. 실마리를 풀을 실 때 섬 환경에 귀를 기울였어요. '우리 영화가 불교 영화는 아니지만 각자의 마음에 부처가 있을 것 같다고 각자의 부처를 한번 찾아보자' 모든 스태프들에게 2시간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부처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것을 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각자의 부처를 찾으러 간 게 기억나요." (이상희)
"부처를 찾자는 게 워크숍 같은 거였어요. 부처를 찾자는 이야기가 마음의 부처이기도 하고, 또 하나가 부처의 형상을 찾으면 그것을 영화에 담아야지 했죠." (오멸)
감독은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고 반성하며 책임지는 선생의 모습에서 부처를 발견했다.
"선생님의 어깨에 양쪽에 아이들에 서 있죠. 세월호에서는 선생님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오멸)
미륵불은 석가모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다. 하지만 감독은 지금 이 순간을 구원할 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절구봉이 깨지자 불상으로 쌀을 찧는 장면은 참사 외면한 신에 대한 그의 심정을 표현한 듯 하다.
"고달픈 이 순간에 구원자, 구조가 필요해요. 구조에 대한 외면을 불상에 넣기도 했고요. 엔딩에 나오는 부처의 무릎에 배를 뉘었으면 좋겠다 했어요. 저희 같은 존재로 큰 그릇을, 큰 세계를 보지 못하면 저는 그 질문 하거든요. 신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세월호를 신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 생각해요. 그 순간에 외면당하는 기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들이 신에, 미륵의 품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섞여 있는 거죠." (오멸)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 여백을 비워놓는다고 했다. 이번 영화의 여백은 배우 이상희가 들고 온 핑크색 트렁크가 준 직관으로 채워 넣었다.
"노인이 트렁크 옆에 한참 앉아 있다가, 트렁크를 두고 가잖아요? 근데 집 안에 들어오니까 집 안에 트렁크가 있잖아요? 세월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아요. 노인의 대사가 그거에요. 트렁크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트렁크가 들어왔다. 내가 직접 취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머물렀다면 이미 취한 것이라는 대사를 쓴 거예요. 철학적일 수 있지만 마음이 그곳에 머물렀다면 취한 거죠. 물질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노인이 버리는데 트렁크의 형태만 버린 거지 돌아오니 다시 있잖아요. 시발이라는 단어를 하죠. 수행을 들어가죠. 트렁크를 어떻게 떠나보내느냐면 그 안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하죠. 물건이 물질, 욕망에 대한 싸움을 노인이 면벽참선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다, 트렁크를 열었더니 가득 고인 물이 있죠. 물 한 방울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물체를 본 거죠. 물질을 본 거죠." (오멸)
그는 세월호 참사 원인에는 물질 욕망이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 욕망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수행자의 태도로 이 사건을 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를 봤으면 좋겠다. 저 역시 물질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 세월호 문제와 밀접하지 않나 해요. 상희씨 트렁크가 영화를 완성하는 데 기여해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오멸)
마지막 장면에서 물속에 잠긴 부처가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은 책임이 너희에게도 있다는 듯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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