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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위해 목숨 희생한 세월호 속 선생님이 곧 부처"

[현장] 오멸 감독과 배우 이상희, 영화 <눈꺼풀> 관객과의 대화

18.04.21 15:23최종업데이트18.04.21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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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인으로서, 아픈 역사를 함께 바라본 사람으로서 아직도 말하기가 어렵고 버거워요.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죄스럽고 미안해요.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조금이나마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 것 같아요." (배우 이상희)

제주4.3사건을 다룬 영화 <지슬>의 오멸 감독의 새 영화 <눈꺼풀>이 12일 개봉했다. 감독은 세월호 참사를 접하고 3일간 무인도를 무대로 한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무인도를 미륵도로 칭했다. 섬에는 떡을 만들어주는 노인(배우 문석범)이 산다. 어느 날, 두 학생과 한 선생이 온다. 선생은 말한다.

"그나저나 떡은 먹고 갈 수 있을까." 그 목소리는 산 사람의 음성과는 다르다.

"이 섬의 노인은 상징적으로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가운데에 있는 분인데, 긴 여정을 잘 가라고 떡을 만들어 먹여주는 거라고 감독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그런데 이 떡조차도 못 얻어먹고 가면 어떡할까? 그런 마음으로 (대사를) 했어요." (이상희)

"감정의 폭 크기를 주문 안 했어요. 덤덤하게 자기 대사를 하잖아요? 그게 더 아팠거든요." (감독 오멸)

지난 11일 개봉 직전 종로 인디스페이스에서 <눈꺼풀> 관객과의 대화가 열렸다. 감독 오멸과 선생 역을 맡은 배우 이상희가 참여했다. 감독이 본 세월호 참사의 핵심은 물질에 대한 과도한 욕망에서 비롯된 현대사회 시스템 붕괴, 신의 외면 그리고 우리 모두의 무관심이다. 

우리가 모두 눈을 떠야한다

영화 <눈꺼풀> ⓒ 영화사진진


시나리오의 시작은 절구였다고 감독은 밝혔다. 토끼와 절구가 보름달 속에 있다고 본 한국인의 정서에 의문을 가졌다. 그가 얻은 답은 산업화 이전, 보름달이 뜬 늦은 시각까지 어머니들이 생계를 위해 일했기 때문이다.

"그게 한국사회를 지탱해온 힘이 아니었을까? 절구에서 빻은 쌀은 무엇에 쓰일까? 떡이 되어 잔치와 제사를 치르거나 먼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 주는 귀한 음식으로 바뀌는 거죠. 그렇게 지탱해온 사회라고 생각해요." (오멸)

그런데 그 사회가 붕괴한다. 노인이 쥐를 쫓기 위해 절구봉을 휘두르다 절구봉을 깨뜨린다. 

"최근 현대화되면서 대한민국을 지탱해 시스템이 붕괴하죠. 한강의 기적을 이룬 건설업에서부터 급변해온 이 시스템의 붕괴가 세월호라는 구조 안에 밀집되어서 나타난 현상이 아니겠는가. 세월호는 현재 붕괴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 절구가 시스템의 붕괴를 상징화시켰고요." (오멸)

영화 첫 장면에는 면벽수행 중 잠이 오자 눈꺼풀을 도려낸 달마대사가 등장한다. 눈꺼풀을 도려낸 달마대사를 통해 오멸 감독은 무엇을 보고자 했을까.

"절구를 우물로 던지잖아요? (제목이) <눈꺼풀>이잖아요? 미륵도 눈떠라. 나도 눈을 떠서 세상을 바라보겠지만 당신도 눈떠야 한다. 처음 시나리오가 돌 던져서 미륵을 깨우고 싶다, 이런 느낌? 절구를 던져서 미륵을 깨웠더니 미륵이 다시 제게 질문을 하고 있더라고요. 너 뭐하는데? 다시 질문이 돌아오는 느낌이었죠." (오멸)

각자의 부처를 찾다

배우 이상희 ⓒ 김광섭


"감독님이 디렉션은 거의 안 주셨어요. 항상 매 컷을 많이 고민하셨죠. 수시로 말씀하신 것은 '지금 찍는 것을 누군가가 도와주고 있다고 믿고 있다'고 하셨어요. 실마리를 풀을 실 때 섬 환경에 귀를 기울였어요. '우리 영화가 불교 영화는 아니지만 각자의 마음에 부처가 있을 것 같다고 각자의 부처를 한번 찾아보자' 모든 스태프들에게 2시간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부처 중에서 마음에 와닿는 것을 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각자의 부처를 찾으러 간 게 기억나요." (이상희)

"부처를 찾자는 게 워크숍 같은 거였어요. 부처를 찾자는 이야기가 마음의 부처이기도 하고, 또 하나가 부처의 형상을 찾으면 그것을 영화에 담아야지 했죠." (오멸)

감독은 아이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희생하고 반성하며 책임지는 선생의 모습에서 부처를 발견했다. 

"선생님의 어깨에 양쪽에 아이들에 서 있죠. 세월호에서는 선생님이 곧 부처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오멸)

미륵불은 석가모니에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다. 하지만 감독은 지금 이 순간을 구원할 부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에서 절구봉이 깨지자 불상으로 쌀을 찧는 장면은 참사 외면한 신에 대한 그의 심정을 표현한 듯 하다.

"고달픈 이 순간에 구원자, 구조가 필요해요. 구조에 대한 외면을 불상에 넣기도 했고요. 엔딩에 나오는 부처의 무릎에 배를 뉘었으면 좋겠다 했어요. 저희 같은 존재로 큰 그릇을, 큰 세계를 보지 못하면 저는 그 질문 하거든요. 신도 이에 대한 책임이 있다. 세월호를 신도 같이 짊어져야 한다 생각해요. 그 순간에 외면당하는 기분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들이 신에, 미륵의 품에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섞여 있는 거죠." (오멸)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오멸 감독 ⓒ 김광섭


그는 시나리오를 쓸 때 여백을 비워놓는다고 했다. 이번 영화의 여백은 배우 이상희가 들고 온 핑크색 트렁크가 준 직관으로 채워 넣었다. 

"노인이 트렁크 옆에 한참 앉아 있다가, 트렁크를 두고 가잖아요? 근데 집 안에 들어오니까 집 안에 트렁크가 있잖아요? 세월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 같아요. 노인의 대사가 그거에요. 트렁크를 가져오지 않았는데 트렁크가 들어왔다. 내가 직접 취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이 머물렀다면 이미 취한 것이라는 대사를 쓴 거예요. 철학적일 수 있지만 마음이 그곳에 머물렀다면 취한 거죠. 물질에 대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노인이 버리는데 트렁크의 형태만 버린 거지 돌아오니 다시 있잖아요. 시발이라는 단어를 하죠. 수행을 들어가죠. 트렁크를 어떻게 떠나보내느냐면 그 안에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계속 질문을 하죠. 물건이 물질, 욕망에 대한 싸움을 노인이 면벽참선을 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다, 트렁크를 열었더니 가득 고인 물이 있죠. 물 한 방울도 손에 잡히지 않는 물체를 본 거죠. 물질을 본 거죠." (오멸)

그는 세월호 참사 원인에는 물질 욕망이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질 욕망 부분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습니까? 수행자의 태도로 이 사건을 봤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를 봤으면 좋겠다. 저 역시 물질 없이 살 수는 없지만 우리가 너무 많이 가져가려고 하는 것이 세월호 문제와 밀접하지 않나 해요. 상희씨 트렁크가 영화를 완성하는 데 기여해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오멸)

마지막 장면에서 물속에 잠긴 부처가 관객을 바라보는 눈빛은 책임이 너희에게도 있다는 듯 서늘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5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기사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눈꺼풀 오멸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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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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