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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에도 '스킨십 불편했는지' 묻는 영화, 인상적이다

[리뷰]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사랑의 아픔 응시하던 소년을 아름답게 담았다

18.04.12 19:57최종업데이트18.04.12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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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성춘향과 이몽룡, 에로스와 프시케. 우리가 익히 아는 유명한 연인들입니다. 문학작품이나 영화, 신화 속에는 무수한 연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아킬레우스를 아시는지요?

유명한 영웅 아킬레우스는 여신 티테스의 아들입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면 엄마에게 징징거려서 요즘 말로 하면 마마보이 같기도 한데요, 그가 트로이 전쟁에서 수장 아가멤논에게 삐치는 일이 생깁니다. 선물로 받은 미인 브리세이스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전투에 적극 나서게 되는 계기가 그의 친구이자 연인인 파트로클로스입니다.

"그는 두 손으로 검은 먼지를 움켜쥐더니
머리에 뿌려 고운 얼굴을 더럽혔고
그의 향기로운 옷에도 검은 재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신은 먼지 속에 큰 대자로 드러누워
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호메로스 <일리아스>에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 소식을 들은 아킬레우스)

전투에 나갔던 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의 손에 죽자, 아킬레우스는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헥토르를 만나기 위해' 분기탱천하여 나섭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면서 고대 그리스의 동성 연인들이 떠올랐습니다. <일리아스>와 같은 문학 작품 속에서도 그려지지만, 실제로 당시 동성애는 흔히 있었고, 특히 전투에서 전우들 간에 동성애는 권장되기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연정을 표시하는 남자 알키비아데스 이야기가 플라톤의 <향연>에 나오기도 합니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시작 장면은 고대 유물에서 남자 조각상들의 모습입니다. 많은 조각상들은 남자 신체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연인 사이에도 '스킨십이 불편했는지' 묻는 장면, 인상적이었다

▲ 영화 속 장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영화 속 한 장면 ⓒ 소니픽쳐스


이 영화는 안드레 애치먼의 2007년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소설도 람다 문학상 게이 소설 부문을 수상했는데, 이 영화는 지난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색상을 받는 등 큰 호응과 찬사를 받았습니다(저는 중국에서 이 영화를 영화제에 초대해놓고 상영 불가 결정을 했다는 뉴스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1980년대 이탈리아 남부의 풍광 좋은 마을을 배경으로 열일곱 살 소년이 그해 여름에 자기네 별장에 놀러 온 스물네 살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입니다. 피아노 치고 작곡하고 수영하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던 소년 엘리오(티모시 샬라메 분)가 지적이고 잘생겼으며 유쾌한 성격의 청년 올리버(아미 해머 분)를 만났을 때 이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화사한 햇살이 넘치는 아름다운 이탈리아 남부를 배경으로 자애롭고 지성미 넘치는 부모님, 다정한 이웃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 호감을 키워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습니다. 근간에 보았던 가장 아름다운 사랑 영화였습니다.

한 소년의 성장 영화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영화에서 몇 가지 깊은 울림을 주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엘리오와 올리버는 서로 고백을 하고 나서, 차차 친밀해지고 스킨십을 나누기 시작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나 말이 상대에게 혹시 불편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는지 수시로 물어보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 일단 연인이나 친밀한 사이가 되고 나면, 상대방이 무조건 나를 용인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함부로 할 때가 많은데 말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관계 속에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참 아름답다고 느껴졌습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감동적인 장면들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 영화 속 부모의 태도에서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엘리오가 올리버와 헤어지고 나서 울먹이며 엄마에게 전화했을 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고 조용히 와서 자식이 원하는 대로 픽업해주는 엄마의 모습. 그리고 아들과 마주 앉아서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아버지의 모습은 훌륭했습니다.

"너희들은 아름다운 우정을 가졌어. 우정 이상이었지. 나는 네가 부러워. 대부분의 부모들은 모든 일이 사라져버리기를 바랄 거야. 혹은 아들이 현실에 발을 내리기를 말이야. 그러나 나는 그런 부모가 아니야. 네 입장에서, 고통이 있으면, 그 고통을 지켜 봐. 불꽃이 있다면 꺼버리지 마… 우리가 자신을 함부로 마구 소진해버린다면, 나이 서른이 되면 남아 있는 게 없고 새로운 사람과 시작했을 때 줄 게 없을 거야. 일부러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게 바로 낭비야."

아들의 통과의례 같은 첫사랑을 지켜본 아버지. 부모로서 아들이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찌 없었을까요. 그러면서도, 그런 사랑의 고통이 한 사람을 성숙하게 하고 더 아름답게 한다는 것을 자신의 삶을 통해서 선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아들에게 그런 조언을 해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에서 시작도 중요하지만, 잘 끝내는 것도 중요할 것이고, 관계를 통하여 내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 살아가는 일이 아닐까요.

영화의 마지막 몇 분은 우리를 전율하게 합니다. 축일이 되고 왁자지껄한 만찬이 준비되는 저녁에 엘리오는 가만히 불꽃을 바라봅니다. 그의 뺨으로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립니다. 그는 오래 그렇게 앉아 있습니다. 가만히, 그의 아픔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의 고통도 응시할 줄 아는 이 소년의 인생은 앞으로도 아름답게 빛날 것입니다.

▲ 영화 포스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포스터 ⓒ 소니픽쳐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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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산책하는 삶을 삽니다. 2011년부터 북클럽 문학의 숲을 운영하고 있으며, 강과 사람, 자연과 문화를 연결하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공동대표이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강'에서 환대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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