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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폭력 방관자이자 피해자"...이제야 고백하는 이유

OtvN <어쩌다 어른> 손경이 편을 보고 눈물... #위드유에 동참합니다

18.04.04 18:47최종업데이트18.04.04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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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8일 방송된 OtvN <어쩌다 어른> 손경이 편은 많은 화제를 모았다. ⓒ O tvN


지난 3월 28일 방송된 OtvN 예능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 손경이 편을 뒤늦게 시청했다. SNS를 통해 클립영상만 접하다가 직접 제대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났다. 성폭력 강사로 활동하는 그녀가 이야기 해주는 많은 사연들이 마음을 울렸다. 특히 남자 초등학생의 사연에서 '사과는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방송에 나온 통계에 따르면, 성폭력 가해자의 비율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가 92%에 달했고 그 다음으로 높은 비율이 남성-남성의 성폭력이었다. 맞다. 주로 가해자였던 남성도 피해자일 수 있었다. 성폭력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성별이 아닌 권력관계였다. 그게 핵심이었다. 방송을 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미투' 만큼 '위드유'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뒤늦게 작은 고백을 해보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 '장난'이라 볼 수 없었던 성추행

초등학교 시절, 우리 반에는 싸움을 잘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키가 월등하게 크다 보니 그 친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 친구의 장난은 도가 지나칠 때가 많았다. 예를 들어 다른 친구를 시켜서 부모님 돈을 빼오도록 시키기도 했다.

어느 날 친구는 위험한 폭력을 시작했다. 바로 여자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일이었다. 반에서 가장 잘 나가는 친구가 당당하게 여자 아이들의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자 다른 아이들도 따라하기 시작했다. 몇 명의 여자 아이들은 질 수 없다고 성추행을 따라하기도 했다.

그 친구의 주도 하에 성추행이 공공연하게 이뤄졌고 아무도 크게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마치 유행하는 일인 것처럼 그렇게 여자 아이들을 계속 괴롭혔다. 가해자는 힘이 센 아이들이었고 피해자는 주로 소극적인 아이들이었다. 누군가가 정해 놓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힘에 차이에 따라 생겨난 권력관계가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눠 놓았다.

나는 어땠을까. 어린 시절 소극적이었던 나는 막지 못했다. 그저 가해의 대상이 아니기를 바랐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상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 당시의 장난이라고 불리던 추행에 분명 끔찍하게 괴로웠을 아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아니 방관이라는 이름으로 같이 가해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시절, '남자'답기 위해 참아야 했던 추행

내가 직접 피해자가 된 경험도 있었다. 가해자는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남중을 다녔는데 당시 또래들은 '남자다움'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남자끼리니까 괜찮아"라고 말하며 모든 것을 무마하려 했다. 체구가 왜소하고 흔히 말하는 남자답지(욕을 잘하고, 거친 것을 말한다면) 못했던 나는 성추행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수업시간에 내 옆자리에 앉았던 아이는 덩치가 크고 힘 센 아이였는데 수업시간이 되면 나를 만지곤 했다. 나는 수치스럽고 불쾌함을 느꼈으나 선생님에게 말하지 못했다. '남자답지 못한 행위'를 하기가 싫어서 였다.

수련회 같은 곳에 가서는 더욱 심한 일이 발생했다. 여러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 다른 친구가 성폭력을 당했다. 다들 마치 신기한 광경을 보는 것처럼, 재미난 풍경처럼 아이들은 웃었고 나는 웃지 못했다. 저 장난이 나에게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뒤늦게 글로 고백이라도 해보는 이유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 ⓒ 윤성효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그때의 아픈 기억은 여전하다. 특히 최근 활발한 'Me Too 운동'을 보면서 더욱 되살아났다. 왜 나는 그때 말하지 못했을까. 지금 말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실제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방관했던 피해자도, 나를 괴롭혔던 가해자들도 지금은 어디에서 어떻게 사는지조차 모르고 있으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가해자들에게 사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것은 다른 남성 피해자들을 위해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아픔을 조금 덜어내기 위해서다. 군대에서 나를 성추행했던 선임이나 '연애감정'이라 말하며 나를 추행했던 여자에게도 말하고 싶다. 나는 아직 살아있고 당신들이 준 상처가 여전히 남아있다고. 부끄러운 줄 알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방송을 통해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준 손경이 강사님에게 정말로 감사하다. 덕분에 말하지 못했던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당장 어떤 것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던 내가 '미투' 운동과 '위드유'를 통해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깨닫게 됐다. 누구든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더욱 피해자를 지지하고 적극 대처해야한다는 것. 부끄러운 고백을 하며 되새겨 보는 깨달음이다.

미투 위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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