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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듀' <무한도전>, 돌아보니 나의 인생이었다

[리뷰] 이명박-박근혜 수상했던 시절을 버티게 해줬던 유일한 프로

18.04.01 10:37최종업데이트18.04.01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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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23일, 당시 내 나이는 21세. 재수를 해서 학교에 들어간지라 대학 초년생이었다. 당시, 유재석과 여러 개그맨들이 소와 줄다리기를 하고 지하철과 달리기를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기는 했지만, 관심있게 지켜보진 않았다. 그렇게 MBC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 <무한도전>으로 이름을 바꾸며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갔지만, 내가 <무한도전>을 제대로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뉴질랜드 특집' 부터 였다.

최근에는 <무한도전>을 잘 챙겨보지 않았다. TV 자체를 잘 안 보기도 하지만, 그래도 <무한도전>은 '의리'로 보려고 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지난해 말 조세호가 <무한도전> 새 멤버로 합류하면서 방송의 재미가 살아났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조세호의 활약에 대한 글을 쓰지 못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무한도전> 원년팬이라고 자처하기는 어렵지만, <무한도전>은 내의 20대 그 자체 였다. 모든 방송을 챙겨봤다고 자신에게 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심적으로는 항상 <무한도전>과 같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무한도전>이 큰 상을 받거나 시청률로 대박을 터트리면 내 일처럼 기뻐했고, 반대로 <무한도전>이 곤경에 처하거나 시청자들의 질타를 받는 일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시무룩해졌다. 하지만 그 감정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져갔다.

이별 아닌 이별

그래서인지 난 <무한도전>에 대한 어느정도 식었다고 생각했다. <무한도전>이 3월 31일부로 종영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도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고, 홀가분하게 <무한도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한도전> 시즌 1이 종영한 31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본방을 보지 못하고, 좀 늦게 <무한도전>의 마지막을 보려고 했는데 순간 맨정신으로는 <무한도전>의 마지막을 지켜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있는 캔맥주를 홀짝 마시며 <무한도전>을 보았다. <무한도전> 마지막회는 비교적 평범했다.

지난 주 방영한 '보고싶다 친구야' 특집에 이어 이번에는 양세형, 하하, 박명수, 정준하가 바톤을 이어받아 그들의 절친한 친구들이 부탁한 미션을 수행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양세형은 그의 친구 박나래의 부탁으로 박나래 조부모 댁을 찾아가 일손을 거들어 들었고, 김종민 덕분에 건강검진을 받았던 하하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꿈'에 대한 강연을 펼쳤다. 역시 <무한도전> 마지막회에서는 박명수, 정준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하&수가 빠질 수 없다. 함께 설악산으로 등산을 떠난 박명수와 정준하는 <무한도전>을 13년을 함께한 지난날을 떠올리며 종영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함께해서 좋았다는 쑥스러운 고백도 스스럼없이 털어놓는다.

용감한 친구 <무한도전> 

준비했던 모든 방송 분량이 끝나고 이제 시청자들과 마지막 인사만을 멤버들은 "<무한도전>은 우리의 인생이었다" 면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무한도전>은 사실 멤버들 뿐만 아니라 애청자들의 인생이 담긴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대다수 애청자들에게 <무한도전>은 방송 프로그램 그 이상의 존재였다. "우리의 인생이었다"는 유재석의 멘트를 듣는 순간, 나는 왜 그동안 <무한도전>을 아끼고 사랑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무한도전>이 유독 좋았던 이유를 여러 개 꼽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이명박근혜'로 대표되는 암울한 시대를 견딜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크다.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초기 원하지 않는 시험을 준비해야 했던 난, 이명박 정부의 광폭 행보를 보면서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블로그에 <무한도전> 등 다양한 TV 프로그램 리뷰를 올리면서 당시 사회를 바라보는 나름의 생각들을 정리했었다. 이명박의 등장과 함께 방송 프로그램 풍자는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었고, <무한도전>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당시 사회 분위기를 읽고자 노력했다.

<무한도전>의 용감함은 박근혜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도무지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던 박근혜 시대에도 <무한도전>이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데서 많은 위안과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이제 이명박, 박근혜 시대도 가고, 그때를 버티게 해줬던 <무한도전>도 13년만에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과 오랜 세월 <무한도전>을 이끌어온 김태호PD가 강조한 것처럼, 이것이 <무한도전>의 영원한 마지막이 아니길 바란다. 그동안 쉴틈없이 열심히 달렸으니까 좀 쉬었다가 언제라도 마음이 내키면 다시 시청자들 곁에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무한도전>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믿는다.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라고 약속했지만, <무한도전>이 끝난다는 아쉬움을 쉬이 감출 수 없다. 나의 20대를 함께 한, 그리고 어쩌면 나의 지금의 정체성을 만드는데 일조한 <무한도전>이기에 더더욱 <무한도전>과의 이별이 아쉽다. 그래도 <무한도전>의 명예로운 퇴장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워지면 돌아올 것 같은 <무한도전>을 마음 속에 품는다. 아무래도 <무한도전>과 같이 나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프로그램은 다시는 없을 것 같다.

무한도전 무한도전 종영 유재석 무도 종영 김태호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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