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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섬 배회하는 선생님과 아이들... 그날이 떠올라 먹먹

[리뷰] 제사 지내는 마음을 담은 오멸 감독의 <눈꺼풀>

18.03.31 18:21최종업데이트18.04.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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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눈꺼풀> 포스터 ⓒ 자파리필름


망망대해의 외딴섬 미륵도. 그 섬에 홀로 살고 있는 떡을 하는 노인. 먼 길 가는 사람들이 간간이 그 섬을 찾아와 노인이 주는 떡을 먹고는 조용히 사라진다. 어느 날 바다에서 섬으로 올라온 쥐 한 마리가 분탕질을 치면서 적막하기만 했던 공간의 평화는 깨진다. 외부의 소식을 전해주던 라디오도, 노인의 떡을 짓는 절구도 다 망가지고, 결국 식수마저 오염된다. 절망에 빠진 노인은 깊은 슬픔에 잠겨 절구를 끌고 바다로 나간다.

영화 <눈꺼풀>은 미륵도에 사는 한 노인과 그 섬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바다와 생물을 응시하는 영화다. 극영화지만 대사도 드물고 섬과 노인이 거주하는 집이 공간의 전부인 탓에 실험 영화 같은 구성으로 비쳐진다. 바다에서 떠밀려 오는 부유물 중에서 쓸 만한 것들을 건져서 사용하는 노인이 언제부터 섬에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가 하는 떡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은 이야기의 전개 과정에 드러난다. 섬을 찾은 사람들에게 "먼 길 가기 전에 떡이라도 먹고 가라"며 정성껏 만든 떡을 올린다. 섬을 배회하던 이들은 그 떡을 먹고는 조용히 사라진다. 영화에서는 낚시꾼이나 선생님, 아이들이 섬을 찾아오는데 떡을 전해줄 때 사용하는 것이 접시가 아닌 제사에 쓰는 제기인 것을 보면, 떡은 먼 길 가는 사람들에 대한 노인의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이면서, 예를 갖춘 위로의 행위로 비쳐진다.  

영화 <눈꺼풀>의 한 장면 ⓒ 자파리필름


<눈꺼풀>은 시간이 흐를 수록 그 의미가 또렷하게 보이는 영화다. 망자들에 대한 애처로움과 함께 절절한 마음을 담은 진혼곡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색깔이 선명해진다. 그 망자들은 선생님과 아이들로 표현된 세월호 희생자들이지만, 한편으로 바다에서 떠돌고 있는 또 다른 영혼들이기도 하다.

70년 전 제주에서 당시 군경에 의해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 중에는 땅으로 돌아기지 못하고 바다로 떠밀려 나간 경우도 많다. 감독이 노인을 통해 떡이라는 음식으로 위로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희생자뿐만이 아닌 그 모든 희생자들이기도 한 것이다.   

<눈꺼풀>은 2014년 신작 준비를 하던 오멸 감독이 세월호 참사 이후 잠 못 이루며 3일 만에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되기 전까지 어떤 작품인지 베일에 가려졌던 영화기도 했다. 후반부에 가서 세월호에 대한 위로가 확연해지는 순간에는 바닷속에 잠겼던 배가 물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화제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제야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 들면서 앞서의 장면들에 표현됐던 섬과 바다와 사람과 자연이 주는 상징성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도 했다.

스크린을 통한 제사와 씻김굿

<눈꺼풀>은 제주 4.3 항쟁 과정에서 학살된 주민들 묘사한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오멸 감독은 앞서 스크린을 통해 희생자들에 대한 제사와 씻김굿을 구현했다. 망자들에 대한 위로와 아픔을 해소시키려는 마음을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속에 오롯이 담은 것이다. <눈꺼풀>도 영화라는 도구을 통해 감독이 차디찬 바다 속에 가라앉은 영혼들을 위해 제를 올리는 의식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몫을 찾고자 했던 감독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망자들에 대한 제사와 위로는 <지슬>과 <눈꺼풀> 등 오멸 감독의 작품에서 주로 엿보이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비교적 가볍고 경쾌하게 찍은, 밴드와 함께한 로드무비 <하늘의 황금마차>도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형에 대한 형제들의 위로를 담고 있다. 각자의 목적은 다르지만 형을 위해 마지막 여정을 함께 보내는 형제들의 에피소드를 통해 먼 길 떠나는 사람이 갖고 있을 마음의 짐을 덜어 준다. 화해라는 형식으로 편안함과 위로를 주고 싶은 감독의 마음이 느껴진다.

JTBC <전체관람가> 방송 때 찍은 단편영화 <파미르>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여행 가는 날, 자전거를 타고 학교로 향하던 세준과 성철은 등교시간이 늦어지자 골목어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급하게 학교로 향한다. 하지만 여객선 사고로 두 친구는 이별하게 된다. 친구를 잃은 성철은 세준이 남겨둔 자전거를 끌고 세준이 그토록 가고 싶어 했던 파미르 고원으로 여행을 떠난다. 살아남은 자로서 먼 길 떠난 친구가 원했던 일을 대신 해 주는 것으로 망자를 위로하고 있다.

오멸 감독 ⓒ 영화사 진진


<눈꺼풀>은 세월호를 주제로 했다는 점에서 단편 <파미르>와 연결되는 지점들이 있으나, 극적 구성은 차이가 클 만큼 다양한 상징성이 눈에 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은 사고의 긴박감과 희생자들의 절규를 전하려는 것 같고, 분탕질하는 쥐는 이명박 정권에 대한 은유지만 직접적인 비유기도 하다. 감독은 화면 속 작은 곤충 하나에도 아픔과 안타까움, 울음을 담았다. 해원의 마음을 담은 장면들은 감독이 희생자들에게 올리는 비나리다.

오멸 감독은 과거 <지슬> 개봉 당시 인터뷰에서 "촬영 장소를 찾아다닐 때 희생자들이 여기서 찍어라 저기서 찍어라 말해 줘서 그대로 찍었다"면서 촬영 과정의 뒷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눈꺼풀>도 희생자들이 감독을 무인도로 이끌어 영화를 찍게 한 것이 아닐까 싶은 만큼, 위로의 상징과 의미가 매우 깊게 전달된다. "제사 지내는 마음으로 영화를 찍었다"는 감독의 연출 의도는 영화 곳곳에 녹아 있다.

<눈꺼풀>은 2015년 부산영화제 직후 개봉이 예상됐으나, 3년이나 지난 올해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와 문화예술계 탄압 여파로 개봉 환경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비록 개봉은 늦었지만 세월호 희생자들을 향한 감독의 절절한 마음을 영화로 표현해 냈다는 점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영화로서 우리 기억에 묵직하게 남을 듯하다. 또 미학적인 영화로서의 여운도 길게 이어진다.

눈꺼풀 오멸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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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독립영화, 다큐멘터리, 주요 영화제, 정책 등등)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각종 제보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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