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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여한 없다"던 장동건에게 찾아온 난관

[인터뷰] 한계에 도전한 장동건, 원작 너머 인장을 찍다

18.03.27 10:45최종업데이트18.03.27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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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7년의 밤>의 개봉을 앞두고 배우 장동건은 여러 차례 "여한이 없다"고 말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지닌 무게감에 자칫 짓눌릴 수 있었지만 그는 오영제라는 캐릭터를 온몸으로 안았고, 훌륭하게 구현해냈다.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이 갈릴지라도 그의 연기에 대해선 일관된 호평이 나오는 이유다.

딸을 학대하던 아빠가 사고로 딸을 잃은 후 복수를 한다. 원작 소설과 영화는 공통적으로 '피해자가 된 악인과 가해자가 된 소시민'이라는 아이러니 한 설정을 동력 삼아 이야기를 진행한다. 차이가 있다면 원작에서 오영제는 동정의 여지가 적은 사이코 패스였던 반면, 영화에선 나름 사연이 있는 입체적 인물로 그려졌다는 것.

오영제 vs. 오영제

<우는 남자>(2014) 이후 영화 작품에선 다소의 공백기를 갖던 차에 그가 접한 소설이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이었다. "보자마자 이거 영화화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판권을 알아봤으나 이미 팔렸더라"며 장동건이 당시를 회상했다. 첫 인연이 그렇게 어긋나게 됐다.

"책을 단숨에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 덮자마자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영제 캐릭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영화화 된다는 소식과 함께 류승룡씨가 현수 역으로 캐스팅됐다는 이야길 들었다. 그리고 영제 역할로 제게 제안이 왔는데 기분이 묘하더라. 그 기대와 설렘은 감독님을 만난 이후 우려와 걱정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원작에서 영제는 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사이코 패스였다. 섹시하고 유머러스한 부분도 있었고. 

근데 추창민 감독님은 살을 10kg 찌워보면 어떨지, 기름진 모습에 옷도 털옷을 입으면 어떨지 얘기하시더라. 원작 캐릭터에 매몰되지 말자 좀 더 영제가 공감이 가는 인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동의했다. 그래서 원작과 다른 영제를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영화 <7년의 밤>의 한 장면. ⓒ CJ엔터테인먼트


딸을 잃은 것에 대한 분노, 지역 유지로서 갖고 있던 자존심, 한 번 지목한 대상은 철저하게 파괴하려는 성격 등 영제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심리의 인물이다. 의상과 각종 소품을 바꿔가며 영제를 준비하던 그에게 감독이 제안한 게 바로 M자 탈모가 있는 곱슬머리였다. "자칫 변신을 위한 변신으로 과하게 보일까 걱정했는데 거울 앞에 섰을 때 한 낯선 남자를 보게 됐다"며 장동건은 그 선택이 맞다는 걸 직감했다. 그렇게 장동건의 영제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진짜 난관은 그때부터였다.

"원작을 넘어 제가 표현할 영제의 빈 공간을 찾는 게 어려웠다. 소설에선 심리묘사가 탄탄하게 돼 있는데 화면으로 구현하기 위해선 배우의 감정 표현과 대사가 중요하잖나. 영제가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그만큼 영화적 상징과 이미지가 중요했다. 첫 등장 때부터 대사는 없지만 '영제는 이런 사람이다'를 보여야 했다. 무표정에서 드러나는 영제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기 위해 엄청 여러 번 테이크를 갔다. 그만큼 영제 안으로 들어가려 애썼다."

연기적 갈등

현수와 격투하는 일부 액션 장면에서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40바늘을 꿰매야 했지만 장동건에겐 그런 물리적 대결보단 심리적 대결이 중요했다. 즉, 영화에서 영제는 그 마을 유지로 돈과 명예, 신체적 조건까지 현수보다 우위에 있지만 사건이 진행될수록 현수에게 심리적으로 위축된다. 공권력에 사건 수사를 맡기지 않고 자신이 직접 괴롭히고 복수해야 하는데 그게 뜻대로 잘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을 언급하며 장동건은 "스스로 그땐 감독님 이하 배우들이 작품 얘기만 하는 등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며 "아무래도 감정들이 부딪히는 영화라 감정의 격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감기몸살에 잘 안 걸리는 체질인데 그때 2년 만에 걸려서 유독 힘들었다"고 전했다.

ⓒ CJ엔터테인먼트


이쯤해서 그의 전작 <브이아이피>를 짚어 볼 수 있다. <7년의 밤>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액션의 강도가 강한 작품을 택해왔다. "스스로는 새롭게 뭔가 선보일 모습이 있을지, 그간 자기복제를 한 건 아닌지 고민하던 차에 만난 작품들"이라며 그가 운을 뗐다.

"(그 두 작품으로) 현장에서 연기하는 게 다시 즐거워졌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7년의 밤> 때도 감독님,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영화 얘기만 하다가 10개월 간 기분 좋은 긴장감을 안고 지냈는데 그런 경험이 되게 좋았다. 이런 과정을 지나며 어느 정도 갈증이 해소됐다. 여한이 없다는 말을 그래서 한 건데, 영화적으로 다 이뤘다는 뜻이 아니라 제가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시도했다는 뜻이다. 

현수와 달리 영제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인물이잖나. 그 인물을 하나씩 만들고 찾아나가면서 연기적 갈증이 해소된 게 있다. 슬럼프가 있었냐고? 연기가 재미없어지던 때가 있었다. 제게서 어떤 신선함이나 새로움을 발견하지 못하니까 그랬던 것 같다.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해서일까. 하지만 이런 작품들을 거치며 뭔가 에너지들이 생긴 것 같다. <7년의 밤>은 진짜 제가 실제로 딸이 있기도 하고, 하기 싫은 상상도 많이 했어야 했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이런 역할들을 최근 맡아서. 장인, 장모님께서 보실까봐 걱정이다(웃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같던 오영제와 달리 장동건은 '성선설'을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의 차기작 역시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드라마다. <7년의 밤>에 이어 그는 한창 바쁜 올해를 보낼 예정이다. 잘생긴 스타가 아닌 내면이 깊은 배우로 어느새 그는 대중의 마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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