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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나이 먹은, 다시 없을 프로그램 '아듀 무한도전'

시대를 관통한 MBC 예능 <무한도전>, 지난 12년간 행복했다

18.03.08 15:46최종업데이트18.03.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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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최근 종영을 발표한 MBC <무한도전>은 어떤 예능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도는 대한민국 예능판에 '유느님'을 등장시키고 유재석을 유일무이한 '호감형 연예인'으로 성장시켰다. 누군가에게는 스타가 되어야 출연할 수 있는 예능(배우 진선규, 컬링 국가대표팀 등), 혹은 출연을 통해 스타가 될 수 있는 예능(10cm, 밴드 혁오 등)이었다.

올림픽처럼 2년에 한 번 돌아오는 '무한도전 가요제'는 수개월 동안 음원 차트를 휩쓸었고, 새 멤버를 한 번 뽑는답시고 '식스맨' 같은 호들갑을 부려도 시청자는 환호했다. 우리의 즐거움에 더 나은 멤버를 뽑기 위해 적극적으로 훈수를 두고, 참여했다. 이처럼 <무한도전>은 방식이나 영향을 예측하기 힘들 만큼 무궁무진하게 확장하는 예능이었다.

예능 <무한도전>의 의미, 지난 12년을 관통하는 예능

또한 <무한도전>은 '정치적인' 예능이기도 했다. 무도는 역사, 환경, 민주주의와 선거의 문제를 예능의 언어로 능숙하게 다뤄왔다. 역사 문제는 직설적으로, 시청자들의 눈물 콧물을 빼는 방식으로 이뤄졌지만-어떤 회차들은 그 한 편 자체가 자신들의 정치적 주장에 대한 세련된 은유이기도 했다. 물론 무도 멤버들 개인의 정치적 성향이나 신념이 어떤지는 알 길이 없지만, 총괄 프로듀서인 김태호 PD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는 시청자라면 대략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무모한 도전'이라는 포맷 이후 2006년부터 정식으로 방송된 <무한도전>은 지금까지 두 번의 보수정권과 같은 세월을 보냈다. 보수정권의 공영방송 탄압에 맞서는 수차례의 파업에 김태호 PD는 항상 참여했다. <무한도전>이 보수정권 10년과 같은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길게는 수개월 이어지는 몇 번의 결방을 견뎌내야 했지만, 항상 MBC 파업과 맞물리는 무한도전의 결방은 어떻게 보면 그들의 정치성을 가장 명백하게 드러내고 쌓아가는 방식 중 하나였다. 또한 'MBC 파업' 자체보다 시청자들에게 더 알려진 건 '<무한도전> 결방'이었고, '<무한도전> 결방'을 통해 'MBC 파업'이 더 대중적으로 알려지는 '웃픈' 시절도 있었다.

최근 더 다양한 감수성들이 사회에 대중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하면서, (아마 그것은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유느님'은 더 이상 '유느' 레벨의 존재가 아니게 됐고, 무한도전이 정치성을 띠는 와중에도 또 어떤 정치적 올바름들은 뒷전이었다는 비판 역시 유효하게 됐다. 일각에서는 남성 고정 멤버들을 중심으로 극단적으로 진행되는 형제애(가족주의 혹은 브로맨스) 코드를 버라이어티 예능의 기본값으로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여성 예능인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그램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개그코드가 '외모비하'나 '위계관계'를 중심으로만 척박하게 흘러간다는 점, <무한도전>이 예능 생태계에서 그 자체로 '권력화되었다'는 비판, 멤버들 하나하나의 개인적인 논란들까지. "지금 보려면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그냥 나오는 건 아닐 테다.

그럼에도, 나는 <무한도전>이 지난 12년을 관통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었다고 생각한다. 10년 이상의 기간 동안 존속하는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드물고, 예능 프로그램이 정치적 주제를 다루는 경우도 전무하기 때문이다. KBS < 1박2일 >이나 SBS <런닝맨>이 '10년 이상 존속한 예능'의 조건을 곧 충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두 프로그램 다 '정치적 주제를 다룬 예능'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영석과 tvN이 설계한 '예능 시즌제'가 향후 예능 제작 방식의 기본값이 될 것으로 보이는 지금, <무한도전>처럼 10년 이상을 '지속'하는 프로그램의 탄생을 앞으로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MBC <무한도전> 중 한 장면 ⓒ MBC


<무한도전>과 더 오래 나이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21세기를 '청년 세대'의 시기로 보내고 있는 이들(더 정확히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태어난 세대)에게 폭발적인 영향을 주었던 대중문화 현상의 예를 들자면 1988년 서울올림픽, 서태지와아이들이나 H.O.T. 프로야구 등이 있을 것이다. 더 이후의 예로는 2002 한일월드컵, 동방신기, 빅뱅, 슈퍼스타K나 프로듀스101까지. 이것들은 가히 폭발적인 영향력을 보여줬지만 오랜 기간 지속되진 못했다. 문학이나 여타 영상매체 중에서도 메가톤급 영향력을 오랜 시간 지속한 예시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기어코 12년을 끌어온 <무한도전>은 아이돌도 아니고, 국가 차원의 행사는 더욱 아니고, 일개 공중파 주말예능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이 지난 12년간 은은하게 퍼트려온 영향력은 그 어떤 이슈보다 컸다. 그 영향력은 <무한도전> 시청률이 30%를 넘나들던 전성기 때도, 혹은 지금처럼 새 멤버로 양세형이 들어오는지 조세호가 들어오는지 사람들이 별 관심이 없을 때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한도전>이 그저 하나의 장수예능이고, 정치적 언설을 능숙하게 해내온 예능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우리 세대를 대표한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무한도전> 팬들에게 이 프로는 '장수한 정치적인' 예능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지치고 우울할 때 집에 들어와서 떡볶이 하나 시켜놓고 노트북으로 <무한도전> 재방송을 보는 게 소소하지만 진득한 행복 중 하나였던' 그런 예능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무한도전>과 더 오래 같이 나이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이별이 빨리 왔다. 결국 12년의 역사 끝에 <무한도전>이 오는 3월 31일 종영한다고 한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고마웠어요. 아듀, 무한도전!"

▲ 그래도 '무한도전' 지난 2017년 12월 29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열린 <2017 MBC 방송연예대상> 포토월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무한도전 무도 종영 아듀무한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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