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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선배'와 '영미', 한국 컬링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이끌다

[평창 컬링] 두 번의 실패 없었던 안경 선배, 환상의 테이크 아웃과 영미까지... 결승의 주역들

18.02.24 10:17최종업데이트18.02.2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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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경 선배'의 눈물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연장 승부끝에 일본을 8-7로 꺾은 한국 김은정이 김영미를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안경 선배'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역사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영미'를 외치는 목소리가 컬링장을 가득 메웠다. '빙판 위의 체스'가 이렇게 짜릿한 경기라는 것을 대한민국 전 국민이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이 동계올림픽 사상 최초로 결승전에 진출하면서 사상 첫 은메달을 확보했다.

김은정 스킵(28·경북체육회)이 이끄는 여자 컬링 대표팀은 23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 컬링 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에서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8-7로 승리했다.

스포츠 한일전 가운데 가장 치열하고 짜릿했던 경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한국은 1엔드부터 3점을 획득하면서 쉽게 경기를 가져가는 듯 했다. 특히 7,8엔드에서 작전대로 블랭크 엔드(Black End)를 만들고 일본이 실수를 하면서 승리가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상대의 캡틴이었던 후지사와 사츠키(28)의 맹활약으로 승부는 연장으로 흘러갔고 경기는 더 어려워지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포기는 없었다. 여기까지 8승 1패의 신화를 쓰며 달려온 여자 컬링 대표들에게 마지막 투구는 그야말로 투혼이 담겨있었다. 스킵 김은정의 침착했던 투구, 김선영, 김경애, 김영미 세 명이 혼신의 힘을 다한 스위핑까지. 네 명이 합작해낸 단 하나의 스톤은 한국 컬링이 위대한 한 발짝을 내딛게 했다.

두 번 실패는 없었다, 안경 선배의 투구

앞서 김은정은 일본과 예선전에서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다. 당시 9엔드 마지막 투구에서 김은정은 실수를 범해 2점을 내줬고 결국 이것이 패배의 빌미가 되고 말았다. 그때의 아픔을 안경 선배는 잊고 있지 않았다.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경애 선수가 투구하고 있다. ⓒ 이희훈


이날 김은정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1엔드부터 마지막 투구 때마다 일본 스톤을 밀어내는 등 절정의 샷 감각을 보여주며 매 순간마다 한국의 득점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아쉬움도 있었다. 10엔드 마지막 스톤이 특히 애를 태웠다. 김은정은 일본의 스톤을 쳐내고 그 자리에 서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이것이 그만 밀려나 버리면서 오히려 일본 스톤보다 더 멀리 나가버리고 말았다. 또 한 번 안타까운 순간이 나오고 만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아쉬움은 한 번이면 됐다. 두 번은 없었다. 후지사와 스킵이 연장전 마지막 스톤까지 자신의 것을 1번 스톤으로 만들며 압박해 김은정의 부담감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김은정은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담담한 표정으로 마지막 스톤을 떠나 보냈다. 그러나 속도가 다소 약해보였다. 그러자 김선영과 김영미를 비롯해 김경애까지 세 명이 모두 스위핑을 시작하며 아이스를 닦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본의 스톤 바로 앞을 가로 막으며 섰다. 네 명의 선수는 모두 환호했다.

▲ 아쉬운 표정 짓는 김은정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은정 선수가 원하는대로 풀리지 않는지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 ⓒ 이희훈


▲ '안경 선배' 김은정 눈물 펑펑 23일 오후 강원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준결승전 대한민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연장접전 끝에 8대7로 승리 거둔 한국의 스킵 김은정이 눈물을 흘리며 관중들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매 시합 때마다 항상 일관된 표정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던 안경 선배는 그제서야 안경을 벗고 눈시울을 붉혔다. 넷이서 해낸 간절했던 1점은 지금까지 이들이 따낸 어떤 점수보다도 빛났다.

김선영, 김경애 '백발백중'... 영미는 최고의 전략

▲ '잘하자!' 격려하는 김선영-김경애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선영, 김경애 선수가 손을 맞잡으며 격려하고 있다. ⓒ 이희훈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이 치러지고 있다. ⓒ 이희훈


안경선배 김은정과 함께 이날 김선영과 김경애의 활약도 너무나 눈부셨다. 김선영은 세컨드로서 일본이 가드를 세울 때마다 모든 가드를 침착하게 하나씩 제거해 나갔다. 그가 적중에 실패한 것을 찾는 것이 오히려 훨씬 빠르다고 할 정도로 김선영의 정확도는 이날 백발백중이었다.

그런가 하면 김경애도 만만치 않았다. 김경애는 '더블 테이크 아웃(한 번에 두 개의 스톤을 제거해내는 것)'의 대명사였다. 김경애는 김선영이 먼저 테이크 아웃을 성공해 내면 곧이어 따라해 냈다. 오히려 김경애는 한국의 스톤을 맞춘 후 안쪽에 있던 또 다른 한국 스톤을 건드려 뒤에 숨어있던 일본 스톤을 제거하는 등 3연타까지 과감하게 해내며 큰 박수를 받았다.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스톤 2개를 놔두고 스톤이 하우스에 놓였있다 ⓒ 이희훈


또한 김경애는 자신이 비록 실수했지만 바로 다음 스톤 차례에서 테이크 아웃을 해내는 등 실수를 만회했다. 이 점은 이날 7-8엔드에서 연거푸 실수를 범하는 일본과 확연히 대조된 것이었다. 일본은 계속해서 같은 선수가 실수를 범한 데 반해 김경애는 곧바로 그것을 충분히 극복해내는 기지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전 국민이 알게 된 '영미'는 이번 준결승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스킵 김은정은 자신이 투구할 때마다 "기다려", "영미" 등을 외치며 정교한 스위핑을 주문했다. 이 스위핑 하나 하나가 곧 승리의 원동력이 됐다.

▲ 투구하는 김경애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경애 선수가 투구하고 있다. ⓒ 이희훈


▲ '이번 작전은' 머리 맞댄 팀킴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김선영, 김영미, 김경애, 김은정 선수가 작전을 구상하고 있다. ⓒ 이희훈


이들 네 명의 호흡은 결국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출전했던 9개 국가를 모두 이기는 '대이변'을 일으키고 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 일본을 만난 것은 어쩌면 이런 역사를 만들어 내기 위한 발판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들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한국 여자컬링의 올림픽 첫 메달리스트로 남게 됐다. 안경선배, 예술처럼 보였던 테이크 아웃, 그리고 영미를 외치는 목소리까지, 삼박자가 만들어낸 결승전 진출이었다.

▲ '이겼다!' 환호하는 '팀킴' 23일 오후 강원도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컬링 한국과 일본의 준결승에서 승리를 확정하고 기뻐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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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여자컬링 김은정 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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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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