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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컴백' 론다 로우지, 옥타곤 아닌 WWE링에 등장

[WWE] 29일 2018 로얄럼블 피날레 장식한 전 UFC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

18.01.30 15:23최종업데이트18.01.30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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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여성 밴텀급 챔피언 출신인 UFC 선수 론다 로우지가 미국 프로레슬링(WWE) 무대에 데뷔했다. 로우지의 WWE 진출 소식을 알리는 UFC.com 갈무리. ⓒ UFC.com


한국시간으로 지난 29일 미국 프로레슬링(아래 WWE)의 4대 대형 이벤트(로얄럼블, 레슬매니아, 섬머슬램, 서바이버 시리즈) 중 하나인 로얄럼블이 열렸다. 로얄럼블은 30명의 선수가 차례로 링에 올라 상대를 상단 로프 위에서 떨어트려 최후의 생존자 1인을 가리는 대회로 우승자에게는 4월 레슬매니아에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 특히 90초마다 새로운 인물이 무대에 투입되는데, 다음 차례에 누가 나올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은 로얄럼블의 가장 큰 볼거리다.

그런데 매년 대회의 마지막 경기로 배치되던 30인 제거매치는 올해 이례적으로 대회 중간에 열렸다. 그렇다고 브록 레스너와 브라운 스트로맨, 케인이 3자 대결로 벌인 WWE 유니버셜 타이틀전이 메인이벤트로 치러진 것도 아니었다. 올해 로얄럼블은 사상 처음으로 열린 여성 30인 제거매치가 메인 이벤트에 배치됐다. 이제 여성부에서도 30인 제거매치를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는 걸 과시하려는 WWE의 노림수였다.

여성 30인 제거매치에서는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는 디바들은 물론이고 리타, 몰리 홀리, 토리 윌슨, 켈리 켈리, 미쉘 맥쿨, 트리쉬 스트레터스 같은 레전드들이 대거 출전해 무대를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일본 출신 아스카의 우승으로 끝난 여성 30인 제거 매치에서 정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선수는 따로 있었다. 대회가 마무리될 때 등장해 모두를 놀라게 한 전 UFC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였다.

'암바 여제' 로우지의 불패 신화, 홀리 홈의 하이킥에 무너졌지만

로우지(오른쪽)는 데뷔 후 한 번도 홀리 홈 같은 완성형 타격가를 만난 적이 없었다. ⓒ UFC.com


로우지는 유도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출신의 어머니 밑에서 어린 시절부터 유도를 배우며 자랐다(어머니가 매일 아침 굿모닝 키스 대신 '굿모닝 암바'로 로우지의 잠을 깨웠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다). 덕분에 로우지는 2004년 주니아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 2007년 세계 선수권대회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걸며 엘리트 유도가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올림픽이 끝나고 현역에서 은퇴해 종합격투기 도장에서 착실하게 데뷔 준비를 한 로우지는 아마추어 무대에서 3경기를 치른 후 2011년 프로에 데뷔했다. 당시만 해도 종합격투기 여성부가 크게 활성화되던 시절이 아니라 월드 클래스 레벨의 격이 다른 유도 실력을 가진 로우지는 연전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했다. 프로 데뷔 후 5번째 경기 만에 미샤 테이트를 꺾고 스트라이크포스 여성 밴텀급 챔피언에 등극했을 정도로 로우지의 실력은 압도적이었다.

로우지가 가진 실력과 상품성은 "내가 대표로 있는 한 여성들이 옥타곤에 서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던 UFC 데이나 화이트 대표의 운영 철학(?)마저도 바꿔 버렸다. 2013년 UFC 여성 밴텀급의 초대 챔피언 자격으로 옥타곤에 입성한 로우지는 리즈 카무치, 테이트, 사라 맥맨, 알렉시스 데이비스, 캣 진가노, 베스 코레이아 등 도전자들을 차례로 꺾으며 밴텀급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특히 테이트와의 재대결(3라운드 암바 승)을 제외하면 모든 상대를 1라운드에 제압한 로우지의 강력함은 전성기 시절의 앤더슨 실바나 존 존스를 보는 듯했다. 그럼에도 로우지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악녀의 이미지를 이어가며 자신의 상품 가치를 끌어올렸고 이는 로우지를 더욱 대단한 스타로 만들었다. 실제로 로우지가 여성 밴텀급을 지배하던 시절 북미에서 로우지보다 높은 유로채널 구매율을 기록한 선수는 브록 레스너 정도밖에 없었다.

하지만 로우지의 무적 신화는 2015년11월 홀리 홈과의 7차 방어전을 통해 산산히 무너지고 말았다. 로우지는 복싱 3체급을 석권한 경력이 있는 홈을 상대로 장기인 유도기술을 걸지 못한 채 타격에서 열세를 보이다가 2라운드 강력한 왼발 하이킥을 맞고 KO를 당했다. 단 한 번도 패배를 모르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제압했던 로우지였기에 홈에게 당한 생애 첫 패배는 더욱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로디 파이퍼 유품 입고 링에 등장한 로우지

로우지(왼쪽)는 그저 링에 올라 팔을 한 번 뻗은 것만으로도 이날의 스포트라이트를 독차지했다. ⓒ WWE.com 갈무리


홀리 홈에게 패한 후 은퇴설까지 돌았던 로우지는 2016년 12월 밴텀급의 새 챔피언이 된 아만다 누네즈와의 타이틀전을 통해 복귀전을 치렀다. 하지만 여성 밴텀급 내에서 알아주는 타격가인 누네즈 앞에서 로우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로우지는 경기 시작과 함께 일방적인 구타에 가까운 타격을 허용한 끝에 48초 만에 KO로 무너졌다.

종합격투기에 여성부가 자리를 잡기 전에는 유도라는 특정 종목에서 압도적인 기량을 갖춘 로우지가 업계를 호령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여성부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체계가 잡히고 선수들의 수준도 상향 평준화됐다. 로우지처럼 특정 기술에 의존하는 단순한 유형의 파이터는 자연스럽게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로우지는 누네즈전 패배를 끝으로 복귀는커녕 훈련을 재개했다는 소식조차 들리지 않았다. 지난해 8월에는 UFC 헤비급 선수이자 남자친구인 트래비스 브라운과의 결혼 소식이 들렸는데, 최근 격투팬들에게 이게 유일한 로우지의 근황이었다. 그런 로우지가 지난 29일 미국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2018 로얄럼블 무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WWE는 로우지의 로얄럼블 깜짝 등장을 위해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첩보전을 펼쳤다고 한다.

사실 로우지는 UFC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도 상대와의 대립구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프로레슬링의 방식을 즐겨 사용했다. 이미 WWE의 그 어떤 여성 선수보다도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고 대립을 만드는 과정도 익숙한 로우지가 어느 정도의 경기력만 보여준다면 금방 최고 수준의 여성 선수로 떠오를 수 있다. 로우지는 이미 지난 여름 WWE와 계약해 프로 레슬링 훈련을 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로우지는 유도 선수로 활약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WWE의 열렬한 팬이었다. 로얄럼블에서도 2005년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고 로디 파이퍼의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로우디'는 로우지가 UFC 시절부터 사용했던 별명으로 이날 입었던 티셔츠는 실제 파이퍼가 생전에 입었던 유품이었다. 어쩌면 로우지는 처음부터 종합격투기보다 프로레슬링에 더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었을까. 프로레슬러로서 로우지의 실력은 늦어도 오는 4월 레슬매니아에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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