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사람만 사랑할 것"을 맹세하지 않습니다

타인에 대한 소유와 독점에 반하는 사랑, 폴리아모리

등록 2018.01.25 09:28수정 2018.01.25 09:28
0
원고료로 응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한 사람만을 사랑할 것을 맹세합니까?"

언제부터인지 결혼식장에서 저 질문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질문이 없으니, 당연히 대답도 들을 수 없습니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듭니다. 결혼식의 단골 질문이 사라졌다는 건 사람들이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는 맹세에 저항(?)하는 건 아닐는지 말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오히려 지키기 힘든 약속에 덜컥 겁이 나 슬그머니 질문을 없애버린 걸까요?


사람들은 영원한 사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도, 경험으로도 압니다. 그러나 사회의 제도와 규범에 따라 불가능이 일정 부분 가능하도록 학습되었고 현대사회에서는 그게 '옳고 맞는' 행동으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결혼식장에서 당당하게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맹세를 지킬 수 없을까봐 불안합니다.

요즘 떠오르는 문제적 이슈 '폴리아모리(Polyamory)'는 다자간의 사랑을 뜻합니다. 사전 정의에 따르면 '두 사람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다자간 사랑.' 명백하게도 지금 사회가 옳다고 생각하는 행동에 반하는 게 바로 폴리아모리입니다. 사전 정의로 보자면 말이죠.

여기서부터 폴리아모리에 대한 오해가 생겨납니다. 물론 폴리아모리가 두 사람을 동시에 사랑 하는 데 찬성한다는 건 사실입니다. 한 사람과 결혼했지만 다른 사람과 또 결혼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폴리아모리를 두고 이게 전부라고 이야기하면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중요한 건 폴리아모리의 사랑은 타인에 대한 소유와 독점을 뜻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생각해보면 유독 우리의 사랑과 연애는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든 분노와 질투, 욕망은 오로지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는 잘못된 이름)으로 가닿아 있습니다. 마치 그 사람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부서질 것처럼, 파멸할 것처럼 말이죠. 바로 이 지점에서 폴리아모리는 재정의되어야 합니다. 

폴리아모리: '부서질 것 같은, 파멸할 것 같은 독점적 사랑에 대한 해방'

심기용, 정윤아 작가가 쓴 <우리는 폴리아모리 한다>는 폴리아모리가 가진 오해를 풀어주고 폴리아모리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줍니다. 우리의 사랑이 연애와 결혼에만 국한된 건 아닌지, 사랑을 왜 인류끼리 독점하면서 인류보편적인 가치로만 인식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합니다. 책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라는 규범 이전의 자연 상태(다자간 사랑)를 인정하며, 인류를 넘어 생명을 품는 사랑을 지향하는 게 바로 폴리아모리라고 말합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폴리아모리의 시각은 무척 넓습니다. 어디 사랑에 대한 시각뿐인가요. 타인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판단'에도 폴리아모리는 다른 시선을 제공합니다. 앞서 말한 한 사람과 결혼했지만 다른 사람과 또 결혼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 사이의 이해 관계에서 성립합니다.


실제로 SBS 다큐멘터리 <나를 향한 빅퀘스천>에서는 캐나다의 폴리아모리 가족이 등장했고 한국에서도 폴리아모리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그들의 사랑에 우리의 '잣대'가 과연 불가피한 건지 아니면 불필요한 건지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폴리아모리를 통해 고독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습니다. 고독에 대해 심도 깊은 글을 쓴 올리비아 랭은 <외로운 도시>(어크로스 2016)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고독은 가치 없는 체험이 결코 아니며,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의 심장에 그대로 가닿는다는 것을, 외로운 도시에서 경이적인 것이 수도 없이 탄생했다. 고독 속에서 만들어졌지만, 고독을 다시 구원하는 것들이." (p.22)

올리비아 랭에 따르면 고독을 구원하는 것들, 다시 말해 타인을 다시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고독입니다. 고독한 사람만이 사랑의 힘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가득 찬 도시에서 더 많은 외로움을 느끼는 현대인에겐 폴리아모리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이 사회가 고독한 건 비단 이성간의 사랑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랑에 대한 제한된 사고 때문은 아닐까요?

정리하자면, 폴리아모리는 결코 문란하고 방탕한 사랑이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하여 악용하는 사람은 있을 수 있습니다. 장정일 작가가 시사IN에 쓴 '문제적 이슈 폴리아모리' 칼럼에는 아래와 같은 인용문이 나옵니다.

"로푸호프가 그랬다. 폴리아모리는 자기 합리화로 위장된 문란한 엽색 행각이 아니라, 소유욕과 일체화된 사랑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곳곳에 놓인 사랑을 보지 못한 채 우리는 고독하고 병들어갑니다. 혼자인 사람을 불쌍해하고 외로운 사람이라며 은근히 손가락질합니다. 우리에겐 사랑에 대한 더 넓은 사고가 필요합니다. 폴리아모리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폴리아모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