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천만관객 <신과 함께>에는 없지만, <코코>에는 있는 것

[리뷰] 영화 <코코>, 천만 관객 모은 <신과 함께>와는 또 다른 저승세계의 매력

18.01.12 18:36최종업데이트18.01.18 17:25
원고료로 응원

영화 <코코>의 포스터. 주인공인 미구엘과 헥터 그리고 단테가 저승과 이승 사이에 놓여진 금잔화 꽃길을 건너는 모습을 담고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올 겨울 저승이 대세다.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로 시작한 '저승 열풍'은 이제 멕시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 영화 <코코>로 이어졌다. 외형만 달라졌을 뿐 뭉클한 가족애라는 감동 코드는 동일하다.

한국인의 '밥'과 같은 멕시코 전통음식 토르티야는 밀가루나 옥수수가루 등을 반죽해 아주 얄팍하게 구운 다소 밋밋한 맛의 부침개다. 하지만 여기에 고기나 야채, 카레, 치즈 등 취향대로 재료를 넣으면 다양한 맛과 모습으로 변신하는 매력적인 아이템이다. 

흔한 '가족애'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기타를 훔친 미구엘. 구두장이 리베라 가문에서 태어난 소년 미구엘은 가문의 금기인 음악을 좋아한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가족애'는 수많은 영화에서 다뤄졌다. 토르티야를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서 음식 맛이 달라지듯, '가족애' 역시 영화 < 7번 방의 선물>처럼 천만 관객을 울릴 수도 있고 너무 익숙한 전개로 대참패를 겪기도 한다. 11일 개봉한 <코코>는 아주 독특한 조합에 음악 소스를 골고루 뿌려 환상적인 맛을 이뤄냈다. 

현재 벌써 1200만을 돌파한 한국의 <신과 함께>는 지극히 한국적인 가족애의 교본 스타일이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행복도 희생하는 효심과 모정, 형제애가 중심이다. 이를 저승의 재판이라는 이색적인 상황에 버무리고 중간에 인물들을 둘러싼 반전들이 불쑥 튀어나오면서 쫄깃한 긴장감과 극적 재미를 유발한다.

반면 <코코>는 가족의 반대에도 가수라는 꿈을 이루고자 하는, 개인의 반항에서 비롯된 가족 갈등이 가족애로 해결됨과 동시에 시너지 효과까지 발산하는 변종 스타일을 선보인다.

또한 저승을 무대로 하지만, 한국과 멕시코의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배경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신과 함께>에서 표현된 한국형 저승은 죄를 지은 죽은 자가 재판을 받고 그 경중에 따라 벌을 받는, 회피하고 싶은 공포의 공간이다. 그래서 가능한 무죄 판결을 받아 환생을 하는 것만이 유일한 저승 탈출법이다.

하지만 <코코> 속의 멕시코 저승은 화려한 조명과 흥겨운 음악이 어우러진 일종의 클럽 분위기이다. 그리고 천상병의 시인의 <귀천>처럼 잠시 이승으로 '소풍'을 나왔다가 돌아가는 듯, 친숙한 곳이다. 어디 그뿐인가. 1년에 한 번씩 조건이 되면 이승으로 여행도 다녀올 수 있다. 

그래서 이 아름답고 유쾌한 죽음의 땅에는 슬픔과 갈등이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반전이 숨어있다. 죽음 너머에 또 다른 소멸이 존재한다. 지상에서 자신을 기억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는 사람은, 잊혀진 존재가 되어 먼지로 변해 사라진다. 이 모습은 마리 로랑생의 시 <잊힌 여인>에서 나오는, 죽은 여자보다 더욱 불쌍해 결국 가장 불쌍한 여인이 된 '잊힌 여인'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에 전설적인 가수 에르네스토와 같은 스타는 사후에도 살아있는 자들이 보여주는 지대한 관심으로 여전히 화려하다. 그저 헥터처럼 별 볼 일 없는 인생을 산 사람은 이승에서 기억해주는 이가 거의 없기에 쓸쓸한 사후를 보내다 결국 소멸도 맞이할 뿐. 그래서 이 외로운 자들은 그들끼리 삼촌, 이모, 조카 등으로 관계를 부여해 위안 삼는다.

<신과 함께>에는 없지만 <코코>에는 있는 것

미구엘의 옆에 있는 할머니는 그의 증조할머니로 이름이 코코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한편, 죽은 자들은 이승에 살아있는 자들이 제단에 사진을 올리며 기억해줘야 '죽은 자들의 날'에 이승으로 여행을 갈 수 있다. 프리다 칼로로 분장한 헥터 모습으로 알 수 있듯, 위장 출입을 하려는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에 출국 심사는 필수다. 

즉, 사후세계에도 엄연하게 계급이 존재한다. 그래서 초대장을 받은 이들만이 참석할 수 있는, 에르네스토가 주최한 해돋이 파티에는 이 삼류인생들은 결코 갈 수 없다. 단 광장 공연에서 1등을 한 음악인은 부상으로 입장을 허락받는다. 이처럼 인기와 그에 따른 대우가 사후에도 다르기에 인기를 위해서 비열한 짓을 저지르는 악당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신과 함께>에서는 이 잊혀진 존재의 슬픔 자체가 아예 없다. 죽은 자는 그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서기 때문에 죄와 원한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 한을 풀어주고 반성과 용서하는 마음이 존재한다. 이 저승에서 가장 행복한 결말은 '환생'이라는 다른 존재로 이승에서 태어나는 것이지만 대신 전생을 기억할 수 없다. 그래서 생전에 그를 알았던, 살아있는 이들은 환생했다는 정보 입수가 불가능하므로 환생하면 철저하게 남이 될 뿐이다. 대신에 환생 직전에 꿈의 형태로 죽은 자가 살아있는 자와 만날 수 있는 단 한 번의 만남이 특별 서비스로 제공된다.      

<신과 함께>는 불교에 등장하는 49재와 환생에서 소재를 따왔다. 죽은 자는 49일 간 저승에서 7개의 지옥 재판을 받고, 최종 무죄로 판결이 나면 환생한다. 즉, 과거의 삶을 잘 살아야 새로운 삶을 다시 이승에서 보장받는다.  

<코코>는 매년 10월 마지막 날에 열리는 멕시코의 전통 기념일인 '죽은 자들의 날(Day of the Dead)'에서 시작한다. 이날은 1년에 한 번씩 죽은 자들이 그들을 기억하는 가족과 벗을 만나러 이승으로 찾아온다는 믿음에서 생겨났다. 죽은 자를 추모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제사와 같지만 개인별 기일이 아닌 정해진 특정 날짜에 집단 추모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한국에서 보이는 '이별의 슬픔'이 아닌, '재회의 기쁨'이기에 떠들썩한 축제로 인식된다. 

이승과 저승은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 두 세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특별한 안내인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신과 함께>에서는 인간 외모를 지닌 저승차사가 등장한다. 이 점은 KBS 2TV 인기 드라마였던 <전설의 고향>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저승사자와 별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시대와 문화가 바뀌다 보니 검은 도포에 검은 갓을 쓴 창백한 허연 피부의 남성이라는 고정적 설정에서 탈피했다.

<신과 함께>에서는 이 친숙한 저승에 극적 재미를 유도하기 위한 묘수로 '재판'이라는 차별성을 뒀다. 이에 따라 저승차사는 일반적인 '안내자'역할뿐만 아니라 '변호사'와 '보디가드'라는 특별한 직무를 주로 수행한다. 그리고 전문직 종사자이다 보니 일종의 업무 성과에 따른 보상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원하는 대로 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다.

<코코>에도 안내자가 등장하지만, 단순히 보조하는 도우미 역할을 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아닌, 날개 달린 개 혹은 용과 사자의 결합 같은 상상의 동물이며 현란한 색상을 가졌다. 이들을 부르는 이름은 '알레브리헤'다. 알레브리헤는 본래 예술가인 페드로 리나레스가 꿈 속에서 본 화려한 색감을 지닌 생명체를 조각상으로 표현한, 멕시코 특유의 예술품을 지칭한다. 소년 미구엘은 죽은 자들의 땅에 가서 이 알레브리헤를 보더니 상상이 아닌 진짜로 존재한다며 놀라워 한다.

저승세계의 모습. 미구엘과 헥터가 에르네스토를 찾아가는 모습을 담은 장면으로, 이 화려한 한 배경이 바로 저승이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미구엘이 '단테'라 부르며 귀여워하는 떠돌이 개는 미구엘처럼 살아있으면서도 저승으로 건너간다. 인간 소년 미구엘은 에르네스토의 기념관에서 그의 기타를 훔친 '벌'로 저승에 가게 되었다. 즉, 죽은 자들의 날에 죽은 자를 위해 선물을 바치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죽은 자의 물건을 도둑질한 범죄를 저질러 저승에 '타의'로 소환된 것이다.

하지만 단테는 '자의'로 동참한다. 그 이유는 '해피' '검둥이' '쫑' 등의 흔한 개이름이 아니라, 굳이 사후세계를 그린 고전 <신곡>의 저자 단테의 이름을 차용한 것에서 알 수 있다. 털 하나 없이 매끈한 소시지 몸에 쥐꼬리 마냥 가느다란 꼬리를 지닌, 기다란 혀를 항상 입에서 빼고 있는 모습의 볼썽사나운 개에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이 개가 바로 안내자 '알레브리헤'다.

이처럼 <코코>는 <신과 함께>와는 매우 다른 모습의 저승세계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신과 함께>에서 음악은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주인공이 가수를 꿈꾸는 <코코>에서는 음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특히 주제곡인 '리멤버 미'는 스토리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여기에 빠른 박자의 노래는 저승을 물 좋은 '클럽'으로 돋보이게 한다.

그래서 역시 토르티야는 기존 레시피를 따르기 보다는 <코코>처럼 변칙적인 조합이 더 매력적이고 맛있다. <신과 함께>가 대박을 터뜨린 것도 이색 조합의 재미에 감동까지 주었기 때문이기에 <코코> 역시 흥행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영화 리뷰 코코 디즈니 픽사 애니 사후세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자어로 '좋아할, 호', '낭만, 랑',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이'를 써서 호랑이. 호랑이띠이기도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