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충격 청문회라니... '짜증유발주의'

[서평]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

등록 2017.12.29 15:46수정 2017.12.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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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고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는 내각에 새로운 인사를 임명하고 사법부의 수장을 지명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냈다. 이번 정부는 선거일 직후 바로 업무를 시작했기 때문에 인선을 준비할 기간이 길지 않았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야당은 칼을 벼렀다. 문무일 검찰총장, 김명수 대법원장은 임명에 성공했지만,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낙마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걸로 끝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앞으로도 많은 사법부 인사를 임명해야 한다. 당장 여야 합의로 지명된 강일원 헌법재판관, 민주통합당 추천이었던 김이수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내년에 종료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명했던 조용호, 서기석 헌법재판관의 임기도 2019년에 종료되기에 그 후임도 준비해야 한다. 감사원장 임명 동의안도 아직 처리되지 않았다.


지난 봄, 우리 국민들은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중요성을 느낄 기회를 가졌다. 정부의 위법을 살피는 감사원장의 중요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어떤 법조인이 임명되느냐에 따라 국가의 운명이 바뀐다. 그렇다면 앞으로 정부는 어떤 인사를 지명하고, 의원들은 어떻게 청문회를 진행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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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 ⓒ 이춘석, 도서출판 담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은 민주당 이춘석 의원이 법제사법위원회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사청문회에 참여하고 느낀 바를 정리한 책이다. 이춘석 의원은 변호사 출신으로 제18,19,2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지금은 더불어민주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그는 박지원, 박영선, 우윤근 의원과 함께 법사위 4인방으로 불리면서 정부의 부적격 인사들을 송곳 검증을 통해 떨어뜨렸다.

이 책이 나온 시기는 2013년으로, 이춘석 의원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초기의 인사들을 검증한 내용이 많다. 이 시기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청문회에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사라졌던 때다. 법을 다루는 사람이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화가 나고 짜증이 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짜증나는 내용이 많지만 그래도 책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이 책을 통해 청문회와 인사 검증의 경험을 되돌아보고 어떤 인사를 해야 할지에 대해 검토해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살펴보고 읽은 독자로서 느낀 바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정부는 밀봉 인사를 되도록 자제하고 미리 인사를 검증해야 한다. 정부 인사가 아무도 모르는 철통보안 속에서 지명되는 '밀봉인사'면 국민의 여론은 반영이 되기 어렵고 제대로 된 검증도 되지 않는다. 비밀이 새어나갈까 걱정해 인사검증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법적 안정성을 감안해야 하는 직위에 사람을 지명할 때는 이런 점이 다른 부서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선 의회와의 협조는커녕 정부 인사가 '깜짝쇼'에 버금간다. 이명박 대통령의 '불통인사'에 이어 박근혜 당선자의 철통보안 속 '밀봉인사'에선 국민의 여론은 물론 국민의 심장조차도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읽힌다. 박 당선인의 처 번째 인사로서 초대 총리 내정자로 지목됐던 후보자는 결국 청문회장에 서보지도 못하고 무수한 의혹들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다. -288P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후보자를 지명하는 과정에서만 수개월이 소요되고, 국세청, 공직자윤리국, 연방수사국이 협조하여 정밀하게 신원조사를 시도한다고 한다. 후보자는 검증 항목에 대해 자기진술서를 작성하고, 이 진술서는 국세청과 연방수사국의 검증을 거친다. 한국도 정부가 먼저 정밀한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그에 따라 후보자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둘째, 주류가 아닌, 다양성을 지닌 사람을 임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서울법대를 나온 특정 지역의 법조인만 고위직을 독점하면 그들만의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되고, 폐쇄된 조직 문화로 이어진다. 이런 문화는 구성원의 사기를 좀먹고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다보면 공정과는 멀어지게 된다. 이런 인사가 소수자나 약자를 배려하는 판결을 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좋은 집안에서 자라 우수한 성적으로 법관이 되기까지 부족함을 없었던 후보자가 서민과 사회적 소수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 부친의 임지를 따라 전학을 다니면서 소외감을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소외된 자들을 위해……"
이런 얘기는 제발 그만. -227P

셋째, 국회는 낙인을 씌우는 발언으로 후보를 물어뜯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진보적인 후보자나, 민주당에 의해 지명된 후보자에게는 '종북', '친북' 딱지를 붙이거나 기상천외한 질문으로 위험한 이미지를 씌우려고 한 사례가 있었다. '세계의 최장ㆍ최악의 독재정권은 어느 정권이라고 하는가?', '6ㆍ25가 북침인가 남침인가?', 심지어 '대한민국의 영토가 어떻게 되는가?'는 질문까지 있었다.

이외에 현행 제도로는 실질적인 후보자 조사를 위한 활동기간이 15일에 불과하니 인사청문회 기간을 좀 더 늘리고, 후보자와 기관이 자료협조에 원활하게 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후보자가 될 개개인이 평소에도 미리 준법의식 하에 성실하게 업무에 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책과 가치관을 검증할 수 있는 청문회가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후보자들의 편법증여, 부당소득공제, 탈세, 병역비리, 스폰서, 수사개입 의혹을 보면 그것을 바라는 것은 과욕으로 느껴진다.

이 책을 썼던 이춘석 의원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첫 활동을 하던 시기에는 초선 의원이었지만, 지금은 3선에 성공하고 더불어민주당의 사무총장이 되었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사람도 잘 알아봐야 하고 야당의 동의도 받아야 하는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이 책의 내용에 따라 좋은 선택을 하길 바란다.

정부와 여당의 협조와 철저한 검증을 통해, 공정한 법조인들이 검찰총장, 헌법재판관, 감사원장 자리에 임명되길 바라는 것이 많은 국민들의 바람이다. 부정과 편법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자리를 찾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인 '그들만의 대한민국'이 아닌, '우리들의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인사청문회와 그들만의 대한민국

이춘석 지음,
도서출판 담, 2013


#이춘석 #인사청문회 #청문회 #법사위 #법제사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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