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스스로 몸을 망가뜨렸을까

[병원생활기 3] 휴게실에서 과거를 돌아보다

등록 2017.12.28 16:22수정 2017.12.2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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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병동 2인실 내가 사용했던 침대 ⓒ 김준희


나는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고 나서 11층으로 돌아왔다. 내시경 검사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느껴졌다. 검사 담당직원은 나를 옆으로 눕게 하고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리고 내 몸에 무슨 조치를 취했는지 나는 잠이 들었다. 내 몸의 어떤 구멍을 통해서 무언가 들어온다는 느낌을 받았던가 말았던가. 잠에서 깨어보니 모두 끝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익숙해진 장소인 입원병동 휴게실에 앉아서 캔커피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젊은 시절에 왜 나는 그렇게 술을 퍼마셨을까'를 되돌아보며.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퇴근만 하면 직장동료들 또는 친구들과 술집으로 달려가던 날들이 허다했었다. 그러면서도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면 멀쩡하게 일어나서 출근하고 일에 몰두할 수 있었으니까.

학교에 다닐 때에는 좀더 심했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하던가. 내 친구들은 하나 같이 술을 좋아했다. 수업이 모두 끝나면 학교 잔디밭에 앉아서 새우깡 같은 과자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신 적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실 때면, 안주는 남기더라도 술은 남기는 적이 없었다. '어떻게 피 같은 술을 남기냐'라고 떠들어 대면서.

'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이면 머리가 아프다'라는 말들을 하는데 나에게는 그런 증상도 없었다. 그러니까 술 때문에 몸이 보내오는 이상신호가 나에게는 거의 없었던 것. 이상신호가 없었다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술이 나에게 주었던 여러가지 영향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당시에 술은 나에게 수면제이자 동시에 각성제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안좋은 기억을 일시적으로나마 잊게 만들어주는 약이기도 했다. 모든 약에는 부작용이 따르는 법. 내 경우에는 그 부작용이 차곡차곡 쌓여오다가 마침내 한꺼번에 터져버린 셈이다.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도 건강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쩌면 '건강에는 문제없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술잔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서는 술 마시지 않는다'라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도 조금씩 무너져 가고 있었다.

술독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주제에 지푸라기라도 잡을 생각을 못하고, 스스로 제 무덤을 파고 있었던 셈. '나는 비틀거려도 쓰러지지는 않는다'라고 또다른 최면을 걸면서. 어찌보면 차라리 그때 쓰러져 버리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그러면 지금쯤은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았을까. 나는 휴게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휴게실에 있지만 말고 밖에 나가서 기분 전환을 좀 해볼 생각으로.

익숙해지기 어려운 폴대 들고 다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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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로비에서 열리는 2017 '환우 돕기 바자회' ⓒ 김준희


"환자복 입고서는 건물 밖으로 못 나갑니다. 특히 수액 폴대를 가지고 밖에 나가면 안 되요. 건물 밖에 나가고 싶으면 담당 의사의 허가서를 받아와야 해요."

병원 1층에 있는 직원이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제지했다. 입원환자는 밖에 나가면 안 된다는 일종의 경고문을 보았었는데 그 사실을 깜박하고 있었다. '왜 안 되냐'라고 묻고 싶었지만, 사실 그런 질문은 해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병원 방침이 그렇게 정해져 있고, 직원은 그것을 따르고 있을 뿐이니까. 그리고 답변을 들어봤자 내 속만 터질 것 같았다. 한데 지금도 궁금하기는 하다. 왜 환자복을 입고 건물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걸까. 시원한 바깥공기를 들이키는 것도 건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텐데.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 길에 병원 한쪽에서 열리고 있는 '크리스마스 환우 돕기 바자회'를 보게 되었다. 소설책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장신구 등을 팔고 있다. 곧장 입원실로 가기가 심심했는지 나도 잠깐 서서 구경하다가 소설책을 몇 권 구입했다. 입원실이나 휴게실에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알고 보면 내가 '환우'인데 나를 돕기 위한 바자회에서 내가 책을 구입하다니. 하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고 하던가. 내가 나를 도왔으니, 시간이 지나면 하늘도 나를 도와주겠지. 입원실 침대에 앉아서 수액 폴대를 한쪽에 세워 두고 사온 책을 대충 훑어 보았다.

이 수액 폴대는 처음부터 나에게 걱정거리를 가져다 주었다. 화장실에 가는 일도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그보다는 식사 때가 더 문제였다. 식사 시간이 되면 음식이 놓여있는 식판을 직원이 직접 침대로 가져다 주었다. 대신에 다 먹고 식판을 반납할 때는 내가 직접 식기 수거대에 가져다 놓아야 한다.

폴대 없이 생활하는 다른 환자들은 두 손으로 식판을 들고 다니지만, 내 한쪽 팔은 폴대에 묶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한 손으로는 폴대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각종 그릇이 놓여있는 식판을 들고 반납하러 복도를 걸어가야 한다.

소심한 나는 '그렇게 걷다가 실수로 식판을 떨어뜨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식판을 포함해서 각종 식기는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떨어진다고 해서 박살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어쨋거나 그런 실수를 하면 망신살이 뻗치기는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누가 보기라도 하면 '저 양반이 완전히 맛이 갔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책을 한쪽에 정리해두고 침대에 누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병원에 있는 동안 책은 한 페이지도 읽지 못했다. 건강에 대한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인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어쩌되었건 원하던 책을 구입했으니, 당장 읽지는 못하더라도 나중을 위해서 일단 쟁여 놓는다는 것에 의미를 두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이 책들이 언젠가는 떠오를 테니까.
#입원생활 #대학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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