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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화면에 대사도 배경음악도 없는 영화, 감독의 의도는

[인터뷰]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작 <종달리> 감독 한동혁 "주인공이 '종달리'다"

17.12.19 18:16최종업데이트17.12.19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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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스토리


나지막이 들리는 바닷소리가 제주도의 동쪽 해안가 작은 마을 종달리를 감싼다. 자전거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소리, 스위치를 딸깍거리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종달리에는 소년과 소녀가 있고 카메라는 흑백으로 그들을 담아낸다. 소년과 소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오직 종달리의 소리만이 영화를 가득 채운다.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가 한창 진행 중이었던 지난 3일 서울 홍익대학교 근처 카페에서 영화 <종달리>의 한동혁 감독을 만났다.

"제주도의 '종달리'라는 공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상영된 <종달리>는 그곳이 고향인 한동혁 감독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을 제외하면 대사와 배경음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관객들이 영화에서 인물의 목소리가 아닌 바람 소리, 발걸음 소리, 자전거 소리 같이 종달리 그 자체의 소리에 집중해주길 바랐던 한 감독의 의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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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종달리>라는 영화가 관객보다 스스로에게 의미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공간과 인간관 그리고 감정을 영화 안에서 마음껏 드러내 보자고 시작한 영화가 <종달리>다. 이 영화가 내게 계속 영화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종달리>가 세상에 공개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한 감독은 "2014년 2월 <종달리>를 촬영했을 때, 너무 못 만든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이 영화는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때는 넓은 눈을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행스럽게 3년 사이에 영화를 보는 안목이 좀 더 성장했고 <종달리>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한 감독의 눈은 정확했다. '2017 인디포럼' 개막작으로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종달리>는 대구단편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올해 7개의 영화제에서 상영됐으며 한 감독의 대표작이 됐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지금의 영화 감독 한동혁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감독에게 극장은 어머니와의 추억이 깃든 곳이다.

"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어요. 일하시느라 항상 바쁘셨지만, 어머니는 쉬는 날마다 저를 데리고 극장에 갔어요.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기에 저에게 극장은 소중한 공간이었죠."

극장이라는 공간에 대한 애정은 스크린으로 번져갔다. 그는 "스크린 속의 몽환적이고 재미있는 이야기에 관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야기에 가장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방법이 연출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키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거짓말 하지 않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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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감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는 "모르는 이야기를 아는 척하면서 만들게 되면 결국 영화는 무너진다"고 덧붙였다. 좋은 영화에 대해 묻자 한 감독은 "감독 스스로,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특히 영화라는 것은 그 상영시간 동안 극장에 관객을 앉혀놓고 자기가 구축하는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그 세상을 모방하거나 누군가의 멋들어진 말에서 시작해서 남의 말로 채우면 유치해지고 불안해진다고 생각해요."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한 감독의 다짐은 그의 꿈과도 연결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참여한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영화가 끝나더라도 서로 아름다운 사이로 남을 수 있기를 꿈꾼다.

"내 작품을 통과하면서 이 작품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삶이 좀 더 행복해지거나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나 역시 그 마음들이 묻어나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한동혁 감독은 내년 10월 개봉을 목표로 그의 마지막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 한동혁


한동혁 감독은 내년 10월 개봉을 목표로 그의 마지막 단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현재 준비하고 있는 영화 <월동>은 처음으로 시작하기 전 누군가에게 응원을 받으며 시작하는 영화다. 그래서 좀 더 책임감을 느끼며 만들려고 한다"고 귀띔했다. 아시아나 국제 단편 영화제의 제작 지원을 받은 <월동>은 한동혁 감독의 영화 인생에서 한 페이지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페이지의 시작이다. 영화 <월동>을 끝으로 한 감독은 장편 영화 제작의 첫 발걸음을 내디딜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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