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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바뀐 어느 봄날, KBS 사장이 간부들에게 한 말

[리뷰] 카메라로 써내려간 공범자들의 공소장,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

17.11.02 15:15최종업데이트17.11.02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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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자들> 포스터 ⓒ 뉴스타파


왜 '공범자들'이라 했을까, 궁금했다. 영화 <내부자들>(2015)의 아류쯤으로 보이기도 하거니와 '공범자들'로는 드러낼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보여서다.

이 영화에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로 지난 10여 년간 정치 권력이 시키는 대로 편집권·인사권을 휘둘러 한국 공영방송을 무너뜨린 '언론 권력자'들의 범죄 행위가 낱낱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영화는 그들의 죗값을 묻고자 카메라로 써내려 간 '공범자들의 공소장'인 셈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유재천 KBS 이사장,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김재철·안광한·김장겸 MBC 사장, 김인규·길환영·고대영 KBS 사장 등 그 시절 언론 권력의 꼭대기에 있던 자들이 이 영화가 가리키는 '공범자들'이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가 공영방송을 무너뜨릴 판을 짠 주범이라면 그들이 시키는 대로 멋대로 기사를 손보고 사람들을 쫓아낸 게 바로 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언론의 기능이나 기자의 사명이 어떠해야 하는지 굳이 묻거나 답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공범자들'이 어떤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를 가려내 카메라에 담을 뿐이다. 정치 권력의 속성이나 언론 안팎의 권력 구조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아마도 자칫 그것이 '공범자들'에게 변명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는 '공범자들'이 우리 사회의 낡은 권력 구조나 질서 뒤에 숨을 그 어떤 빌미도 줘선 안 된다고, 그들이 저지른 모든 범죄 행위는 온전히 그들 개개인이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가 막을 올리다

김용진 전 KBS 탐사보도팀장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저녁, KBS1 <뉴스9>이 새 정부 장관 후보자들의 비리 의혹을 들췄던 '사건'을 꺼내며 이렇게 말한다.

"그때는 그런 게 거리낌이 없었다. 어찌보면 그 당시가 KBS 저널리즘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한국 저널리즘의 황금기는 거기까지였다. 이명박 정부는 곧 언론에 채울 고삐를 꺼내들었다. 한 달 뒤 대통령의 멘토라 불리던 최시중을 방송통신위원회의 첫 위원장에 앉힌 것이다.

임시이사회가 열리던 날 KBS를 둘러싼 전경들. <공범자들>의 한 장면 ⓒ 뉴스타파


최 위원장은 곧바로 정연주 KBS 사장 자르기에 나섰다. KBS 이사회를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바꾸고 이사장도 유재천으로 바꿨다. 감사원은 KBS에 대한 특별감사 끝에 배임혐의가 있다며 이사회에 사장의 해임을 요구했고, 2008년 8월 8일 이른 아침부터 경찰 병력이 KBS 본사를 에워싼 가운데 유재천 이사장은 임시이사회를 열어 감사원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무너뜨리기'의 막이 올랐다.

<시사투나잇>, <미디어포커스>를 비롯해 할 말은 하던 KBS 시사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탐사보도팀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안녕하십니까, 대통령입니다>라는 볼썽사나운 정권 홍보 프로그램이 그 자리를 채웠다.

다음은 MBC 차례. 첫 과녁은 미국 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들춘 < PD수첩>이었다. 검찰은 협상을 했던 공무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MBC 본사 압수수색에 나서더니 기어이 이춘근·김보슬 PD에게 수갑을 채웠다(이들 둘을 비롯해 < PD수첩> 제작진 5명은 2011년 9월 2일 1,2심에 이어 대법원으로부터 무죄를 선고 받았다).

MBC <뉴스데스크>에서 정부를 향해 날 선 클로징 멘트를 날리던 신경민 앵커도 2009년 4월 물러나야 했다. 아침마다 한승수 총리에게 신 앵커의 클로징 멘트를 보고한다던 총리실 직원들이 '조심하라'고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MBC 사장을 바꿀 수 있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에 김우룡을 앉히고 엄기영 사장마저 물러나도록 한다. <100분 토론>을 진행하던 손석희 앵커가 물러난 것도 이 무렵이었다.

김재철과 김인규, MB정부 공영방송의 새로운 기준

MBC의 새로운 사장은 김재철이었다. 김우룡 이사장이, 인사를 잘못하는 바람에 '큰집'에 불려가 쪼인트를 까였다고 말한 바로 그 사람. 그는 눈엣가시 같던 여러 PD와 기자들에게 세트장 관리와 광고를 따오는 일을 맡겼지만, '큰집'은 그런 정도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김재철 전 MBC 사장을 찾아가 질문하는 최승호 PD ⓒ 뉴스타파


KBS엔 2009년 11월, 이명박 대통령 언론특보 출신인 김인규가 사장으로 왔다. 김경래 전 KBS 기자는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한다.

"정권에 불리한 방송, 예컨대 4대강 방송 불방 시키고, 인사 검증에서 중요한 특종 불방 시키고, 청와대에서 4대강 행사 열면 그거 중계하고, 청와대에서 기획한 국민과의 대화 이런 거 시키는 대로 다 중계하고, 짜여진 대로 큐시트 만들어서 갖다 바치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는 과정에서도 다른 언론들, 신문들과 똑같이 물어뜯고, 서거했을 때도 무성의하게 보도하고..."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던 KBS 구성원들이 뜻을 모았다.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던 노조에서 나와 새 노조를 만들고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공영방송이란 이름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가던 2012년 초, MBC 노조는 김재철 사장 물러나라며 먼저 파업에 들어가 있었고, YTN 노조도 뒤이어 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검찰은 구속영장을 흔들어대며 세 노조의 파업 지도부들을 잡아들였고, 회사는 동료들의 모가지를 가차 없이 잘랐다.

"(2심에서 법원이) 2명 박성제하고 최승호 얘는 증거불충분으로 해서 기각한다든가 (할 거야). 왜냐하면 그때 최승호하고 박성제 해고 시킬 때 그럴 것을 예측하고 알고 해고 시켰거든, 그 둘은. 왜냐면 증거가 없어. 이놈을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해고를 시킨 거예요."

2014년 4월, 해고 노조원들의 재판을 앞두고 백종문 MBC 미래전략본부장이 한 말(2016년 1월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 공개)로, 2년 전 징계와 해고가 얼마나 터무니없던가를 보여준다. 그러나 다섯 달 넘게 진행된 파업은 끝내 끝장을 보지 못했다.

공영방송이 무너진 자리에서 벌어진 참혹한 일들

다시 대통령이 박근혜로 바뀐 어느 봄날, 길환영 KBS 사장이 보도본부장과 국장들을 식당으로 불렀다. 김시곤 전 보도국장은 "길 사장이 그 자리에서 KBS 뉴스는 기계적 중립을 포기하고 이른바 경향성을 띠어라,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부 여당을 적극 옹호하고 홍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털어놨다.

MBC도 3월에 안광한이 새로운 사장으로 왔다. 부사장으로서 김재철과 함께 수백 명 직원을 징계하고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다. 그리고 1년 뒤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세월호 참사였다.

"그 상황을 막기 위해서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건데 결과적으로 우리가 패배하니까 완벽하게 아래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직접 취재한 보도들은 전부 다 무시하고 오로지 정부 발표만 받아쓰는 그런 식으로 전락했다. 그런데 이건 사람 생명과 관련된 건데 너무 심하지 않나."

이용마 전 MBC 기자의 뼈아픈 토로. 이성주 전 MBC 노조위원장의 말은 조금 더 구체적이다.

"(김장겸 MBC 보도국장이) '유족들이 깡패냐'... 보도국 부장들의 편집회의에서 그런 이야기들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거다. 결국은 그것이 당시 MBC의 보도가 그렇게 가게 하는 하나의 결정적 이유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고대영 KBS 사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 뉴스타파


KBS가 한두 번 해경을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보도국장에게 전화로 거세게 항의하는 일도 있었다. 얼마 뒤 KBS 사장은 고대영으로 바뀐다. 그리고 고대영의 KBS는 '최순실 게이트' 앞에서도 입을 닫는다.

2016년 9월 20일 <한겨레>는 1면 헤드라인에 '최순실' 이름 세 글자를 큼지막하게 박아 넣었다. 이영섭 전 KBS 기자협회장은 이날 아침 편집회의에서 정지환 보도국장이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란 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냐'며 취재 요구를 묵살했다고 말했다.

MBC 꼴도 말이 아니었다. 안광한 사장은 정윤회를 만난 뒤 장근수 드라마본부장에게 그의 아들 정아무개씨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라고 했고, 드라마 PD들은 영문도 모른 채 따랐다.

한국의 공영방송은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굵직한 죄들만 골라내도 이만큼이다. 이게 다가 아닐뿐더러 영상의 감동을 글로 온전히 옮길 수도 없으니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시간 내서 (제값 내고) 보기 바란다.

김연국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은 "안광한 사장은 자기 명줄 때문에 정윤회씨에게 줄 대려고 다니고 있었고, 김장겸 본부장이야 친박과 한 몸으로 운명공동체 같은 사람이었다"며 그들이 "뉴스를 자기 사적 도구로 이용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바람과 달리 안광한의 뒤를 이어 MBC 사장 자리에 앉은 건 김장겸이었다.

그래서다. KBS와 MBC 노조는 지난 9월 4일 다시 파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끝장을 볼 수 있을까. 다행히 5년 전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최근 김재철, 김우룡, 백종문 등이 검찰에 불려갔고, 검찰은 이들의 집과 방송문화진흥회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앞으로 김장겸 MBC 사장을 비롯해 더 많은 이들을 불러 조사하겠다고도 했다. 공영방송에 대한 희망을 저버릴 수 없다면 이번만큼은 검찰 수사를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기자는 영웅이 돼선 안 됩니다. 사람들은 영웅의 말을 믿고 싶어 하니까요. 전 그저 제가 틀렸다는 걸 말하겠다는 겁니다. 저도 틀리고 다른 기자 누구도 틀릴 수 있다는 걸 말하겠다는 겁니다. 제가 틀리는 바람에 세상에 해를 입혔다고, 그러니까 당신들은 뉴스를 믿는 게 아니라 판단해 달라고,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는 겁니다."

지난달 30일 우리 곁을 떠난 배우 고 김주혁(김백진 분)이 드라마 <아르곤>(2017)에서 한 말이다. 그의 말마따나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하다.

공범자들 공영방송 최승호 뉴스타파 방송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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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옆 앞 '기찻길옆골목책방' 책방지기.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수도권에서 살다가 2022년 2월 전라북도 익산으로 이사해 지방 소멸의 해법을 찾고 있다. <로컬꽃이 피었습니다>(2021), <슬기로운 뉴 로컬 생활>(2020), <줄리엣과 도시 광부는 어떻게 마을과 사회를 바꿀까>(2019), <나는 시민기자다>(2013)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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