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사박물관, 이회영이 걸어온 '민국의 길, 자유의 길' 기획 전시

등록 2017.09.18 17:48수정 2017.09.1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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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의 길 자유의 길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 우당 6형제 독립운동 과정 전시중 ⓒ 임영근 기자


107년 전인 1910년, 서울에서 살던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호영 6형제는 자유의 나라를 꿈꾸며 독립 운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하여 조국을 떠나 서간도로 망명한다. 그로부터 35년 후인 1945년, 6형제 중 다섯째인 이시영만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오게 되었다. 6형제가 꿈꾸던 독립된 조국 '자유의 나라'를 찾기 위해 독립운동했던 전 과정을 서울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 '민국의 길 자유의 길'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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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당 6형제 가계도 우당 이회영 6형제 사진으로 구분 ⓒ 임영근 기자


1부,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을 고민 전개'에서는 개항 이후 급격한 변화 속에서 6형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개항으로 유입된 신지식의 연구, 강제 체결 조약의 무효화 및 나라를 지키기 위한 6형제의 노력을 조명한다.


6형제는 임진왜란 당시의 명재상인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으로 명례방 저동(현 명동성당 앞 YWCA 자리)에 살며, 이상설, 여준 등과 함께 남산 쌍회정 등지에서 신구학문을 연구했다. 을사늑약 체결 이후 신민회를 조직하는데 참여하고, 헤이그특사 파견과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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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YWCA 6형제 거주했던 집 우당 이회영 6형제 현재 명동YWCA자리에서 거주. ⓒ 임영근 기자


주요 전시 유물로는 이상설이 저술·소장하였던 신지식 서적인 『수리』, 『백승호초』, 『법학만초』등과 신민회에서 애국계몽운동을 위해 운영한 조선광문회의 책갑과 일본이 대한제국을 침탈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을사늑약 문서, 한일강제병합조약 문서 등이다

2부, '서간도에 올린 무장독립운동의 깃발'은 한일강제병합 이후 전 가족이 재산을 팔아 서간도로 망명하였으며, 이곳에 신흥무관학교를 건설하여 무장독립운동의 씨앗을 뿌린 우당 6형제를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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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금 영수증 독립운동 하던 당시 모금운동 영수증 ⓒ 임영근 기자


6형제의 둘째 이석영은 당시 재상이자 부호였던 이유승에게 출계하여 재산을 물려받았다. 이석영과 다른 형제들은 강제병합 후 집안의 재산을 처분하여 당시 40만 원(현재 약 600억 원) 상당의 자금을 마련하여 서간도로 떠났다.

서간도에서 6형제는 동지들과 함께 자치조직인 경학사를 조직하고 독립군 양성을 위한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신흥강습소는 이후 신흥무관학교가 되었으며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약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이들은 봉오동·청산리전투 등에서 활약하였고, 1940년대 초 광복군의 중추도 이 학교 출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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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 가는길 우당 6형제 서간도를 떠나 독립운동 다른 장소로 이동 ⓒ 임영근 기자


3부, '이회영, 자유의 길을 찾아서'는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새롭게 등장한 아나키즘을 통하여 자유를 위한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한 이회영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3.1운동 이후 상하이로 간 이회영과 이시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베이징으로 온 이회영은 아나키즘을 수용하였으며 아나키스트 국제연대를 바탕으로 의열투쟁도 전개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망명가로서의 삶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난(蘭)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고, 부인은 고국으로 돌아가 삯바느질 등으로 생활비를 마련해 남편에게 부쳐주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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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교회 상동교회에서 독립운동 계획을 세웠던 장소 ⓒ 임영근 기자


4부, '자유의 나라에 살기 위하여,에서는 광복 이전까지 임시정부 재무총장을 지낸 이시영의 활동과 광복 이후 홀로 돌아온 조국에서 부통령으로서 6형제가 함께 꿈꾸던 자유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노력을 조명해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이시영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이후 법무총장과 재무총장을 거쳤다. 광복된 조국에서 종교, 교육에 매진하다가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에 당선된다. 그러나 국민방위군사건과 거창양민학살사건을 지켜보던 이시영은 정부에 대한 깊은 실망감으로 부통령직에서 사퇴한다.

주요 전시물로는 재무총장 당시 이시영의 이름으로 발행된 독립공채와 광복 후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기념 서명포, 광복된 조국에서 신흥무관학교의 정신을 잇기 위해 세운 신흥학교의 졸업장, 사퇴 당시 발표한 '국민에게 고하는 글' 등이 전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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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년 만주 1932년도에 독립운동을 만주에서 시도함. ⓒ 임영근 기자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역사강사 최태성의 전시설명 영상을 각 존별로 마련하여 방학을 맞은 학생들이 6형제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알 수 있도록 마련해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전시 관람료는 무료이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토·일·공휴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공휴일을 제외한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자세한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www.museum.seoul.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의 02-724-0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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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긍정적사고로 활동적인 소유성격으로서 사진과의 취미가 많아 앞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게되어 매우 반갑습니다. 움직이며 발로 뛰는 그러한 뉴스정보를 가지고 열심히 해볼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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