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화선지에 생명을 불어넣는 예술

[수묵누드의 개척자 소원 문은희 화백의 그림 인생 17] 지공예

등록 2017.09.11 09:48수정 2017.09.11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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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예 작업을 하는 문은희 화백 ⓒ 문은희


문은희 화백의 지공예는 화선지를 사용하는 예술가의 숙명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수묵 누드 작업을 하며 버린 그림들을 누드 콜라주로 부활시켜 왔다. 그러한 활동을 하면서 화선지를 활용해 지공예로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공예는 종이를 조각내서 물에 푼 다음 풀을 먹여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공력이 더 드는 작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점토공예로 자신의 공예능력을 시험해 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화백은 누드 그리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왔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물을 입체로 만드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대상을 조각으로 표현할 때는 구성과 표정 등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그리고 주제의식을 담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누드를 그릴 때처럼 집중을 하지 않아도 되고 잘못을 고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편안하고 즐겁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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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부처 ⓒ 이상기


점토공예를 처음 시도한 것은 1993년 불교 강의를 들을 때다. 당시 부처님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하는데, 이상하게 부처님이 자꾸 쓰러지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그 쓰러진 부처님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자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고 한다. 그것이 누드를 벗어나는 또 다른 장르의 시도였다. 그리고 서울에 살면서 겪게 된 고뇌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표현한 작품들이 몇 점 더 만들어지게 되었다.       

부처님처럼 앉은 자세로 고뇌하는 자신을 표현한 작품이 두 점 있다. 벌거벗은 채 엎드려 오열하는 모습의 작품도 있다. 이들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주여, 나를 삼켜라'다. 이빨을 드러낸 상어의 딱 벌린 입속으로 자신을 상징하는 세 여인이 들어가 있다. 평생 예술을 위해 몸 바쳤지만, 늘 따라다니는 정신적 불안과 경제적 고통이 자신을 괴롭혔다. 그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그때의 불안과 공포가 이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화암화실에서 종이공예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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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암화실의 지공예 작품 ⓒ 이상기


종이공예의 시작은 충주 화암화실에서다. 그동안 수묵 누드를 하며 버린 화선지를활용하면 돈도 적게 들고, 수묵과 누드의 연속성도 살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장르가 누드 콜라주와 지공예다. 누드 콜라주는 현재까지도 계속 작업하는 장르고, 지공예는 1994년부터 10년 이상 시도한 장르다. 그동안 만들어진 지공예 작품이 30점쯤 된다.

지공예는 종이를 잘게 찢어야 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찢은 종이를 물에 풀면 정말 적은 양이 된다. 그러므로 지공예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수묵 누드 화선지 수백 장을 찢어야 한다. 이 작업은 동네 아주머니들의 도움을 받곤 했다. 다음에는 물먹은 종이를 짜서 풀을 먹이는 작업을 한다. 그래야만 끈기가 생겨 공예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구상하고 손작업을 통해 지공예를 완성하는데 적게는 하루 길게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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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행하는 부처 ⓒ 이상기


공예작업을 통해 가장 먼저 완성한 작품이 '고행하는 부처'다. 불교공부를 좋아하는 문은희 화백에게 고뇌와 고행은 영원한 화두인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시도를 할 때는 늘 부처를 찾는 모양이다. 고행으로 몸이 쇠약해진 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염주를 굴리며 명상에 잠겨 있다. 부처 뒤로는 광배가 있어, 깨달음에 이르도록 도와준다. 무명의 세계에서 빛을 찾아가는 구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것은 고난의 세계에서 예술혼을 구현하려는 문화백의 구도의 길과 닮아 있다.

"그림만 안 그렸으면 이 세상 사는데 고통스러울 게 하나도 없었을 거야. 그림을 그리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거 있지. 중국 화선지를 2분에 한 장씩 버렸으니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지. 종이값, 화실비, 모델비, 누구 하나 대주는 사람은 없고, 그걸 마련하려니 힘들고 어려웠어. 정신적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그것을 부처님의 번뇌와 고행으로 표현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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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부부 ⓒ 문은희


이와 같은 문 화백의 마음을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 '고뇌하는 부부'다. 고통과 고뇌를 이기지 못한 두 남녀가 머리를 땅에 대고 엎드려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이들 부부는 서로 다른 쪽을 향하고 있다. 고통과 고뇌는 영원히 풀릴 것 같지 않다. 부처님은 이들을 지켜볼 뿐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인간은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고, 삶에서 수많은 문제가 끝없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문 화백은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예술혼과 시대정신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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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 이상기


문화백이 시도한 지공예로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문제를 다룬 작품이 있다. 자신이 겪은 4․19혁명을 표현한 '4․19'다. 4․19혁명 당시 문은희는 나이 서른의 아이 어머니로 광화문에 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민중들이 중앙청으로 몰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래서 그들 무리를 따라 중앙청 돌담에 이르게 되었다. 아마 그들은 부패정권의 온상인 중앙청을 점거하려는 것 같았다.

이러한 민중항거를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대응을 한 때문인지, 피를 흘리고 트럭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는 학생들을 보게 되었다. 그 모습이 영원히 뇌리를 떠나지 않아 4․19 민주화운동 한 사람들에게 기도라도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향해 한 마음으로 절규하고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다. 가운데는 촛불꽂이를 만들고 초를 꽂아두었다. 문화백은 가끔 이곳에 불을 밝히고 그들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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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녀 ⓒ 이상기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임신'과 '세 자녀'가 있다. 여성으로서 임신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결과 자식을 가지게 되는 것은 운명이다. 문 화백도 아들 둘 딸 하나를 낳게 되었으니, 이것은 자신의 운명과 인연을 표현한 작품 같다. 그런데 이곳에서도 고통과 고뇌가 엿보인다. 예술과 인생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고뇌, 그것은 문화백의 숙명인가 보다.

실제 생활용품으로 쓰일 수 있는 지공예 작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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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 자화상 ⓒ 이상기


또 다른 지공예로는 인물을 표현한 작품이 몇 점 있다. 문 화백 자신을 표현한 자화상이 있고 가까운 사람을 표현한 작품이 두어 점 더 있다. 자화상은 얼굴과 목까지 표현한 두상이다. 네모 판에 얼굴을 양각으로 표현하고 얼굴에 둥근 테두리를 둘렀다. 턱을 비교적 뾰족하게 표현했고, 표정에는 우수가 서려 있다. 외로움과 고독이 표현되어 있다.

소반이나 바구니, 항아리, 표주박 형태로 만들어 실생활에 사용될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이런 작품에 표현된 내용은 상대적으로 덜 비관적이다. 춤추는 여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꽃과 식물, 나무 등이 들어가기도 하고 색채를 넣기도 한다. 색채가 들어간 것들은 더 화려한 느낌이다. 색채가 들어간 것으로 여인들이 손잡고 춤을 추는 모습도 보인다. 문 화백은 이 작품에 '환희'하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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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하는 여인 ⓒ 문은희


또 다른 작품에는 여인의 누드가 들어있기도 하다. 이것은 곡식을 넣을 수 있는 용기 형태로 사방에 다른 모티브의 조각이 표현되어 있다. 바탕은 붉은색이며, 조각은 흰색에 검은색이 약간 들어간 형태다. 사방에 세 여인의 모습이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기존의 지공예와는 조금 다른 모티브가 표현되어 있다. 첫째가 연꽃 위에 앉아 기도하는 여인이다. 여인 뒤로는 광배가 표현되어 있다. 둘째가 엎드려 고뇌하는 여인이다. 셋째가 그 여인이 일어나 하늘을 바라본다. 이들 여인들 사이로 나무가 있고 달이 있고, 위쪽으로 금줄이 서려 있다.

지공예 작품은 문은희 화백의 인생역정을 표현한 예술로 보인다. 한 여인으로 예술을 하며 고통 받은 순간순간의 모습을 지공예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래선지 이 작품들은 아틀리에 남쪽 볕 잘 드는 곳에 전시되고 있다. 문화백은 가끔 이 작품들을 보면서 인생의 위안을 삼는다고 한다. 삶은 고통(生即苦)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을 표현한 것이지만, 또 고비 고비마다 그 어려움이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미래를 비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지공예가 3D로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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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지는 부처 3D 작품(왼쪽 원본, 오른쪽 3D 복제품) ⓒ 이상기


'쓰러지는 부처'를 금속공예가인 황윤선이 최근 3D로 재현했다. 3D미술이란 가상의 조형 이미지를 3D프린터로 출력하여 실재 형태로 만들어내는 미술의 새로운 장르다. 그 가상의 조형 이미지가 예술가의 두뇌에서 나온 순수한 창작일 수도 있고, 기존의 예술작품일 수도 있다. 황윤선의 작품은 문은희 화백의 쓰러지는 부처를 3D프린터로 출력한 것이기 때문에, 창의성보다는 재현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지만 출력물의 크기와 색깔을 다르게 해 작품에 대한 느낌이 원작과 상당히 다르다. 원작이 회색이라면, 3D작품은 붉은색, 흰색, 검은색이다. 크기도 작가의 의도에 따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원작에 비해 얼굴, 옷주름, 염주 등 표현에 정교함이 떨어지지만,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제의 표현에 있어서는 손색이 없다. 기계복제시대 예술의 한 유형으로 의미 있는 작업이다. 3D미술은 원작을 재현하는 방식으로, 미술교육의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지공예 #점토공예 #예술혼과 시대정신 #생활용품 #3D로 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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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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