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화맹'이 호주에서 겪는 이중 고충의 날

대화에 익숙치 않은 나, 파티가 두렵다

등록 2017.09.06 17:02수정 2017.09.0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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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과의 대화를 하는 일에 서툰 대부분의 한국인에게 파티는 두려운 일이다. ⓒ Flickr


아들이 여섯 살 생일에 초대하고 싶다는 다섯 명의 명단엔 한국, 호주, 브라질, 중국 아이들이 섞여 있었다. 호주에서 아이들의 생일은 테마를 정해 집에서 열어주거나 키즈카페를 예약한다. 당일 저학년 아이들의 부모는 파티 주최자인 부모들과 담소도 나누며 함께 놀다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인 이민자에게 아이들 생일은 이중 고충의 날이다. 무덤까지 극복하지 못할 듯한 영어의 장벽은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확인되었기에 두려움이 덜하다. 막상 생일 파티를 포기하게 만드는, 매번 아들의 생일 파티를 열지 못하고 있다는 지인 말대로 '시어머니 생신준비'보다 무서운 것이 "호스팅"이다.

파티 주최자로서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을 서로 소개도 하고, 재밌고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몇 시간 이끄는 일이 한국인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설상가상, 양육에 있어 남녀 구별이 적은 멜버른에서는 엄마 대신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와 엄마들 틈에서 대화를 나누다 가는 경우가 흔하다. 한국 엄마들에 비해 현지 문화 적응이 한참 느린 한국 아빠들은 자연스러운 호스팅은 고사하고, 생일 당일에 외출만 하지 않아도 다행인 경우가 적잖다.

한국인이 '대화맹'이란 걸 깨닫게 된 것은 우연히 만난 브라질 출신 남편 덕이다. 10여 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진지하게 물었다. "왜 한국인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소리를 지르며 싸워요?"

파티가 두려운 나는 '대화맹'이었다

그 당시 한국인이 '의사소통에 취약하다'란 문제의식조차 가져본 적이 없던 나는 대답을 못 하고 어물쩍 넘겼다. 반대로 그가 신기했다. 주말마다 브라질에 계신 아버지와 통화를 시작하면 족히 한 시간 이상을 통화하는 그에게 물었다. "아버지랑 무슨 주제로 한 시간 이상을 대화할 수 있죠?"


아버지와 말 못할 주제가 어디 있냐 반문하는 그에겐 내가 의아스러웠을 테다. '식사하셨어요?', '건강은 괜찮으세요?' 외의 대화 소재가 없어서 오래간만에 전화한 엄마와 5분 이상의 대화를 나누지 못하던 나였다.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즐긴다.' 하지만, 아는 만큼 육신이 고달프기도 한 법이다. 나 또한 오랫동안 교사로 근무하며 알게 되었다. 학교가 수시로 아이들의 표현 의지를 질식시키는 온상이 된다는 것을. 교사에게 "왜요?"라는 사춘기 전유물인 퉁명스러운 대답은 결국 '되바라지고 건방진 녀석'으로 귀결되기 일쑤였다. 심한 경우엔 교사로부터의 체벌이나 폭행 또는 폭언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결국, 아침저녁으로 인천의 소래포구에서 부천까지 아이를 실어날랐다. 초등 입학 전에 영어, 한글, 한문, 산수가 아닌 대화하는 법(인간관계를 맺는 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필요했고 최종적으로 찾아간 곳은 '공동육아어린이집'이었다.

그곳의 여러 규칙 중 '교사를 포함한 모든 어른들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아이들에게 존댓말 대신 평어 사용을 허용한 점'이 가장 매력적이었다. 별난 규칙의 이유는 간단했다. 어른과 아이들의 호칭에 따른 수직적 관계를 조금이나마 해소하여 표현을 장려하기 위함이었다. 등산 준비 중인 교사 진달래에게 아이들은 또박또박 물었다. "진달래, 난 오늘 책 읽고 싶은데 왜 등산을 가야 하는 거야?"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곳이 절실했다

부모 면담을 함께 갔던 한 부모는 아이들과 교사의 대화를 듣다, "애들을 저렇게 버릇없이 키워도 되는 거예요?" 혀를 차며 떠났다. 내가 꼭 그곳에 보내야만 하는 이유가 누군가에게는 결코 보낼 수 없는 조건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루에 3시간 넘게 길바닥에서 보내는 시간들에 지쳐갈 무렵, 굳이 대안 교육기관이 아니어도 최소한 남녀노소, 지위에 무관하게 '의사 표현 정도는 맘 놓고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우리는 호주로 왔다.

"Mummy, please stop saying what I have to do." (엄마, 나더러 이래라저래라 하지 말아줘)
"I am going to play with you only when you speak to me in anice manner." (엄마가 부드럽게 말할 때만 엄마랑 놀아줄 거야)

아이의 잘못에 언성을 높이면 어김없이 듣게 되는 말이다.

한국에서나 멜버른에서나 언어만 다를 뿐 아이의 대꾸는 한결같았다. 단지 주변의 반응만 다를 뿐이다. 한국의 가족들조차 아이의 반응에 당황하며 '부모가 매를 들지 않고 키워서 애가 막 돼먹었다'며 문제로 받아들였다면, 이곳에선 자연스러운 성장의 과정으로 여긴다. 결국 아이의 대답들은 담임 교사나 부모가 대화 예절을 가르치는 표현들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감정과 의사 표현은 최대한 보장하되, 말하는 태도만을 가르친다."

한국의 대화맹이 멜버른에서 이중 고충을 자청해 보기로 결심했다. 일상이 파티인 듯 살아가는 브라질인과 10년 살았으니, 두시간 정도의 호스팅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최면을 걸면서.

#대화맹 #생일파티 #멜버른 #호주 #의사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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