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미국이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했다면?

[리뷰] 필립 K. 딕 <높은 성의 사나이>

등록 2017.08.25 17:00수정 2017.08.25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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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성의 사나이> 겉표지 ⓒ 김준희

SF 작가로 유명한 필립 K. 딕(1928 ~ 1982)의 1962년 작품 <높은 성의 사나이>는 SF 소설이라기보다 일종의 '대체 역사 소설'이다.

대체 역사 소설은 '과거에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혹시 일어났다면 현재는 어떻게 되었을까?'라는 가정과 의문에서 시작한다.


그러니까,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했다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지 않았다면? 오래전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이런 식의 설정으로 시작하고 전개되는 소설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소설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그리고 어찌보면 흥미로운 발상이 될 수도 있다. 반면에 작가에게는 다소 까다로운 작업이 될 수도 있겠다. 현재도 과거도 아닌 또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

전쟁에서 패한 미국의 모습

<높은 성의 사나이>는 미국이 2차 대전에서 패했다고 가정한다. 전쟁에서 패한 결과, 나치 독일이 뉴욕을 지배하고 일본이 캘리포니아를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작품에서 묘사하는 미국의 풍경도 과거와는 다르다. 샌프란시스코 번화가의 대부분은 폐허로 변했고, 천박한 유흥가로 전락해버렸다.

반면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과 일본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독일은 태양계를 정복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고, 지중해를 틀어막아 물을 빼고 경작지로 바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본은 남미 지역의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승전국의 돈 많은 사람들은 로케트를 타고 해외여행 또는 출장을 다닌다.


전쟁에서 패한 미국시민들도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간다. 등장인물 중 한 명인 로버트 칠단은 캘리포니아에서 부유한 일본인을 상대로 미국의 과거 유물을 판매하는 일종의 골동품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 프랭크 프링크는 기능공으로 일하던 공장에서 해고당하고 살 길을 찾고 있다.

프랭크 프링크의 부인이었던 줄리아나 프링크는 1년 전에 이혼을 하고 콜로라도 주에서 유도 선생으로 일하고 있다. 세 인물 모두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 패전국 국민들의 하루하루는 어떤 모습일까.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했던 작가

필립 K. 딕은 36편의 장편과 100여 편의 단편을 발표했다. 딕의 삶이 그리 긴 편이 아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다작(多作)형의 작가에 속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는 생전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고 그런 이유인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사생활도 그리 안정적이지 못했다. 젊은 시절에는 우울증으로 인해서 처방약을 복용했고, 여러 차례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다.

그의 작품들은 이후에 영화로 만들어지며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된다. 흔히 필립 K. 딕을 가리켜서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한 작가'라고 부른다. 그의 작품들 여러 편이 영화화되었고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 그의 1966년 작품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We Can Remember It For You, Wholesale)>는 이후에 <토탈 리콜>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 된다.

1968년 작품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원작이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작가가 1956년에 발표한 동명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다.

위의 세 작품은 모두 작가가 살던 시대에서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반면, <높은 성의 사나이>는 작가와 동시대를 무대로 한다. 또 하나의 현재를 다루고 있는 것. 2차 대전에서 연합군이 패했다는 가정도 독특하지만, 실제로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다면 지금은 어떤 모습일지, 한 번쯤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높은 성의 사나이> 필립 K. 딕 지음 / 오근영 옮김. 시공사 펴냄.

높은 성의 사나이

필립 K. 딕 지음, 오근영 옮김,
시공사, 2001


#높은 성의 사나이 #필립 K. 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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