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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수, 영화제 조롱"... 영화인들 '부산시 입장문'에 반발

[기획] BIFF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 사퇴가 능사? 맥락을 봐야

17.08.11 16:18최종업데이트17.08.11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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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묵부답 부산국제영화제 파행의 주축인 서병수 부산시장은 3년 간 이어지고 있는 영화계의 사과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 정민규


하나, 서병수 부산시장의 공개사과. 둘,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 셋, 부산영화제의 영구적 독립을 위한 정관 개정.

지난 2014년 부산영화제의 <다이빙벨> 상영 이후 현재까지 각종 폭풍을 지나오면서 영화인들이 외쳤던 일관된 요구사항이다. 뒷내용이 다소 바뀌었을지언정, 각 영화인단체들이 영화제 보이콧을 두고 첨예하게 갈렸을 때도 첫 번째 선결 조건은 늘 같았다. 심지어 서병수 시장에 대처하는 부산영화제 수장들 자세를 비판해온 이들도 언제나 '서병수 시장의 공개사과'를 내세웠다.

지난 7일 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이 성명서를 냈다. 국내영화제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고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타계 이후 후임을 정하고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직원들과 소통 없이 독단적으로 일을 진행해 온 수장과 집행부를 질타했지만, 그럼에도 가장 먼저 요구한 건 서 시장의 공개사과였다.

여기에 가장 먼저 응답한 건 서병수 시장이 아닌 부산영화제 자신이었다. 부산영화제 측은 8일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최근 일련의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기로 했다"고 짧은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부산시는 다음날인 9일 "두 분의 사퇴가 안타깝다"는 내용과 함께 '시와 영화제 간 갈등은 오해', 블랙리스트 등과는 관련 없다' 라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과연 이게 맞는 반응일까. <오마이스타>는 각 분과에서 책임질 위치에 있는 영화인들의 입장을 직접 모았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지키기 범 영화인 비대위가 지난해 8월 "서병수 부산 시장의 사과가 없다면 영화제를 보이콧 하겠다"고 밝혔던 당시. ⓒ 권우성


분노하는 영화인

일련의 상황과 부산시 입장에 대해 안영진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아래 PGK) 대표는 "명령권자가 구속된 마당에 실무 책임자가 관계없다고 하는 게 말이 되나"라고 반문하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며, 파렴치한 짓"이라 말했다. PGK는 서병수 시장의 사과 없는 영화제는 없다며 지난해까지 보이콧을 유지하다 최근 조합원들 투표로 철회를 결정했다. (관련 기사 : BIFF 보이콧 철회 온탕? 영화제 주요 실무자는 줄사직 '냉탕')

"이미 (블랙리스트 작성, 문화예술인 탄압 등의) 명령권자인 김기춘과 조윤선 등에 대한 자료가 다 공개됐다. 부산시가 그걸 진행했다. 그로 인해 영화제가 망가지고, 영화인들끼리 분란이 일어났고, 이용관 전 위원장이 아직도 고통 받고 있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이 올해를 끝으로 물러난다는 마당에 부산시에서 자기 책임이 없다 하는 건 책임회피를 넘어 영화제를 조롱하고 있는 거다." (안영진 대표)

지난해 보이콧을 철회한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소속이지만 개인적으로 보이콧을 유지해 온 이준동 나우필름 대표는 "서병수 시장이 지금까지 해온 걸 보면 예측 가능하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후안무치할 줄 몰랐다"며 "당연히 (부산시 입장 표명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 불쾌하다. (블랙리스트 문제 등) 사태가 밝혀졌는데 이걸 지금도 호도할 수 있다 생각하는 건지 어리석다는 느낌도 든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김영진 전주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 역시 "(부산영화제 파행의) 원흉인데 그런 입장문을 낸 건 말이 안 된다"며 "망가진 부산영화제를 영화인들이 수습하려다 분열이 일어나고 있는데 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부산시가 고의가 아니었다고 하며 싹 빠지는 건 비열한 행동"이라 전했다.

현재까지 부산영화제 보이콧을 풀지 않고 있는 전국영화산업노조의 홍태화 사무국장은 "작금의 사태에 대해 (서 시장이) 아쉬움이라도 표할 것 같았는데 변한 모습이 전혀 없다"고 비판하면서 "사실 지난해 영화인들의 보이콧을 풀고 영화제를 원활하게 열려고 서병수가 조직위원장에서 발을 뺐지만 그가 빠진다고 그 지시가 없는 게 아니잖나"라고 반문했다.

"일단 사과를 해야지, (서 시장이) 영화제와 오해 있을 게 뭐가 있나. 수장인 사람들 문제를 부각시켜 고발까지 했는데 이용관 전 위원장의 명예회복이 급하다. 임기야 당연히 끝났지만 물러나는 과정에서 명예훼손 시킨 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 분이 영화제에 돌아오든 아니든 그건 차후 문제고, 영화제 조직 자체를 훼손시킨 (서 시장의) 책임은 분명 져야지. 그게 정리돼야 보이콧을 철회할 것이다." (홍태화 사무국장)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해 6월 27일 부산시청 기자회견장에서 고개를 숙였다. 영화제가 아닌 가덕신공항 유치 무산에 대한 사과였다. ⓒ 정민규


시각 차 그리고 이례적 성명

부산시 입장과 별개로 전격 사퇴를 결정한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에 대한 영화인들의 생각엔 온도차가 있었다. 부산시 입장에 강한 분노를 표한 이준동 대표는 "사퇴 외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소 두 분이 억울한 점이 있을 순 있겠지만 선의로 (영화제 수습을 위해) 한다고 한 게 문제를 꼬이게 했고, (그것에 대해) 신변 정리 결정을 했으니 개인적으론 고마운 점이 있다"고 답했다.

이 말의 배경엔 지난 3년간 사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영화제 내부와 외부 인원들에 대한 복잡한 심경이 깔려 있다. 영화제 보이콧과 정상화를 놓고 개론은 일치했지만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병수 시장의 분명한 사과가 없는 상태에서 부산영화제를 지난해 개최하게 되면서 영화계 직능단체들과 영화인들이 분열조짐을 보였고, 그래서 이 상황에 영화인들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산지역 영화인은 "현재 부산에 퍼져있는 위험한 논리가 부산영화제가 망가진 게 영화인들의 보이콧 때문이라는 것. 부산 언론도 대부분 그렇게 보도하고 있다"며 "왜 보이콧이 일어났는지는 돌아보지 않으려 한다. 서병수 사과가 우선인데 그게 없으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 지적했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은 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이 성명서까지 냈는데 진지하게 대화할 생각은 안 하고 사퇴를 밝힌 것"이라 꼬집은 그는 "책임 있는 태도라면 사퇴 입장문을 밝힐 때 서병수는 사과하라는 말을 했어야 한다. 서병수 역시 잘못을 인정하고, 최소한 유감 표명이라도 했어야 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좌측부터). 김동호 부산영화제 이사장과 서병수 부산 시장, 강수연 집행위원장의 모습. ⓒ 유성호


대부분 보도에서 건조하게 처리되고 말았지만 분명 이례적이다. 3년 간 내홍을 겪으면서도 영화제 진행에 묵묵히 헌신한 직원들이 현 집행부와 서병수 시장의 사과를 촉구하는 기명 성명서를 냈다. 그리고 직후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위원장이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 과정에서 사라진 맥락은 없었을까. 사무국 직원 중 한 사람을 접촉했다. 그는 부산시 입장문과 영화제 수장의 사퇴 발표에 대해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전했다.

"부산시 입장은 올해 영화제를 재정적으로 행정적으로 지원은 하되 서병수 시장 사과는 없다는 거다. 영화제 직원이라서가 아니라 이건 일반인이 봐도 부적절한 처신이다. 지난 정권의 국정농단이 특검에서 드러났는데 서 시장 본인이 직접 입장을 밝힌 것도 아닌 직원을 통해 그런 입장을 밝히다니 어이가 없다.  

우리가 심증만 가지고 문제 삼는 거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수사를 통해 다 밝혀진 상황이잖나. 이건 사견인데 그의 개인스타일, 정치적 입장에서 사과를 못 하겠다고 할 수 있다. 근데 영화제 전 직원까지 성명을 냈다. 사과는 아니더라도 유감을 표하거나 영화제가 간섭 없이 진행돼야 한다고 돌려서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닐까.

김동호 이사장, 강수연 위원장님의 사퇴는 우리 입장에선 실망스럽다. 우리 성명서를 보면 두 분에게 물러나라 하는 걸로 읽힐 수도 있지만 그걸 낼 때 심경은 어쨌든 지난 정권 탄압으로 영화제가 꼬였고, 이렇게 됐지만 우린 방관 못하고 실무자로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였다. 여기에 두 분은 물러나야겠다고 생각하실 수는 있지만 김동호 이사장은 명예롭게 퇴진했다가 바로 잡기 위해 오신 분 아닌가. 강수연 위원장도 오랜 기간 집행위원이셨고.  

(두 분 다) 영화제가 어려운 상황에 오셨기에 성과가 다소 부족해도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실 의무나 책임이 있다고 보는데 바로 그만 두시겠다고 발표하셨다. 직원들 성명서는 두 분과 상의 없이 낸 거고 발표 직전 먼저 보여드리긴 했다. 그렇다면 수장이시니 직원 대표나 실장급을 만나서 교감하실 수 있진 않았을까. 올해까지 치르겠다고 했지만 이미 리더가 없는 영화제나 마찬가지다. 아쉽고 한편으론 죄송하다."

지난 7월 21일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은 뒤 대법원에 상고 의사를 밝히던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 ⓒ 성하훈


한편 부산영화제 독립성과 자율성 침해 재발방지를 주장해 온 전재수 의원(부산 북구 강서구갑) 측은 10일 <오마이스타>에 "영화계, 영화제 사무국도 그렇고 이견 없이 하나로 모이는 공감대가 서병수 시장 사과이고, 영화인들 보이콧 철회 조건에도 들어가 있다"며 "블랙리스트를 분명 작동시켰고, 자유에 대한 탄압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부산시가) 그걸 '오해'라고 표현했다. <다이빙벨> 상영 금지 요청에 대해 서 시장이 개인 의견 개진이라 했는데 그게 어떻게 의견 개진이 되나"라고 전했다.

올해 부산영화제의 개막일은 10월 12일. 주요 인원이 사표를 제출했고, 수장마저 사퇴 의사를 밝혀 준비가 늦어지고 있다. 영화제 측은 "남아 있는 인원들이 각 부서별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암울하다"며 "조만간 전 직원이 모여 이후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 덧붙였다.

서병수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강수연 이용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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