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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심판대에 세웠더니 무죄? 조윤선 판결, <비밀의 숲> 떠오른다

[TV리뷰] 당연히 시즌2를 기다리게 되는 이유

17.08.01 15:02최종업데이트17.08.01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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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비밀의 숲> 포스터. ⓒ tvN


<비밀의 숲> 15회를 기점으로 거대한 음모의 배후가 비로소 드러났다. 그 통쾌함도 잠시, 그 배후는 16회가 시작하자마자 스스로 몸을 던졌다. 선배라는 말이 좋다던 이창준(유명재)은 마치 그것도 결자해지라는 듯 적폐의 대가로 자신을 내던지며 생을 마무리했다. 괴물이 되어버린 그. 그런 그가 만든 토양 속에서 자라 선배가 남긴 것들을 법대로 처리할 검사 황시목(조승우)은 그래서 당혹감을 느꼈고, 드라마는 마무리됐다.

법 앞에 선 사람들

이창준 검사 스스로 마무리한 듯이 보인 비밀에 쌓였던 숲의 거사는 엄밀하게 말하면 영일재(이호재 분)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가장 강직했던 법관 출신 장관, 그래서 후배들의 본보기가 되었던 영일재가 재벌 '한조'의 불법 재산 증여에 손을 대려고 하자, 하루아침에 불법 자금을 받은 죄인이 되어 끌려내려 왔다. 자신에게 벌어진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영일재는 가족의 안녕을 대가로 '전직 비리 장관'이 되는 걸 택했다. 그는 무기력했다.

영일재도 이창준도 곧 썩어가는 대한민국에 대한 자각이 분명했을 것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극단에서 법의 저울을 든 이들은 정권의 하수인이 되어가는 상황을 자각했지만 끝내 방향을 바꾸진 못했다. 스승의 몰락에서 교훈을 얻은 이창준은 적당히 누릴 것을 누리며 살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괴물이 됐다. 법의 저울을 쥔 사람이 기꺼이 살인을 교사하고 납치를 지시했다. 무너진 시스템을 복구시킬 잿밥으로 자신의 피를 뿌릴 각오를 했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피의 제물이 되고자 스스로 피를 묻힌 이창준이 펼쳐놓은 그물에 후배 강원철(박성근)과 더 어린 후배 황시목이 걸어 들어왔다. 한직으로 밀려나면서도 증거 수집을 포기하지 않았던 강원철, 그리고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수 없어 괴물이라 손가락질 받던 황시목은 이창준의 마지막 퍼즐을 맞출 인물로 간택당했다.

적폐의 사회 대한민국. 그 폐부에 감히 도전하는 법의 삼대는 그렇게 도전하고 깨지고, 피 흘리며 겨우겨우 죄인들을 심판대에 앉혔다. 영일재, 이창준, 강원철, 황시목 이들의 성취와 실패는 곧 청산의 역사라고 보는 게 정확할 듯하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던 시인의 말처럼 말이다. 영일재가 틀리고 이창준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적폐 청산의 땔감으로 기꺼이 산화했다.

드라마 <비밀의 숲>의 한 장면. ⓒ tvN


나무가 아닌 숲을 그렸던 드라마

주인공 황시목의 이름은 한자로 땔나무(땔나무 시에 나무 목)다. 그리고 그는 정말 땔나무처럼 사회 곳곳에 암세포처럼 퍼져나간 부정부패의 뿌리를 온몸을 바쳐 끊어냈다. 그런 땔나무 시목을 위해서 영일재와 이창준의 전사가 필요했던 것이다.

<비밀의 숲>이 빼어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직무에 엄정하고 헌신적인 전문가들의 활약상을 그려냈다는 점이다. 흔히 장르물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검사나 형사들은 정의의 사도 아니면 피해의 당사자로 그려졌다. 물론 <비밀의 숲>에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신을 던진 영은수 검사(신혜선 분)나 윤세원 과장(이규형 분)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는 마땅히 공공재여야 할 검사와 형사에 대해 묻는다. 촛불정국은 결국 몇몇 권력자가 아니라 이들이 꾸준히 만들어 낸 썩은 시스템 때문은 아닌지 말이다. 그걸 위해 복무한 수많은 공공재들이 문제였고, 드라마는 그 지점을 포착했다.

민주주의의 시초가 청교도적인 부르주아 체제를 기반으로 융성했듯, 헌법을 근간으로 하여 건강한 법질서를 근간으로 설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위해서는 공공의 자리에 있는 각자의 제 몫의 일을 해내야 한다는 것을 드라마는 역설한다. 자신과 가족의 안녕을 도모했던 영일재 장관에서 참담한 존속 상실이 도래한 것이며, 한번 눈감은 결과가 결국 시스템을 좀먹는 적폐가 탄생했다는 걸 이창준 검사를 통해 보여줬다.

선배들의 실패를 황시목, 한여진 등은 전문적인 직무수행으로 해결했다. 이 평범한 원리는 현재 적폐로 가득한 대한민국에 대한 가장 본질적인 해답이다. 물론 쉽지 않다. 국정농단의 주범 격인 조윤선 장관 등의 재판 형량과 이창준 검사가 언급한 가난해서 죄를 짓게 된 이들의 형량 비교가 인터넷에서 한동안 떠돌았다. 세상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음을 새삼 실감하던 순간이었다.

ⓒ tvN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던 서동재와 같은 이들은 다시 원래의 방식대로 살아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한여진의 말처럼 선택을 빙자한 침묵에 거절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는다면 조금 더 나은 세상에 한 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쩌면 '당신들이 바로 황시목이고, 한여진이어야 한다'며 드라마가 말은 거는 것 같다.

종영한 <비밀의 숲>은 장르 드라마의 한 획을 그었다. 대부분 장르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기 위해 매회 소소한 사건들을 터트리며 동력을 얻는 것과 달리 이 작품은 오직 .하나의 사건을 갖고 16부의 대장정을 달렸다. 사전 제작이었던 이 드라마는 조급하게 시청자의 시선을 잡기 위해 자극적 설정을 넣는 등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소리치고 절규하고 터트리는 장르 드라마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겐 오히려 이런 점이 주효했을 것이다. 말없이 고뇌하는 황시목과 함께 시청자들도 함께 고민했으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하는 드라마에 환호했다.

데뷔작 임에도 드라마 사에 한 획을 그은 이수연 작가, 숨은 보석이었던 안길호 피디, 그리고 배우 조승우, 배두나, 유재명, 신혜선 등은 모두 드라마의 개연성을 훌륭히 담보했다.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래서 당연히 시즌2를 기다린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비밀의 숲 배두나 조윤선 김기춘 조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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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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