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꼭 가봐야 할 이름난 들꽃 숲길

숲을 걸어보라, 꽃과 나무가 말을 걸어올 것이다

등록 2017.06.12 11:45수정 2017.06.1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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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에 일을 그만두고 잠시 쉬던 때였다. 여러모로 지친 때라 의욕이 잘 생기지 않았다. 집 뒤가 산으로 바로 이어지는 곳이라 자주 산책을 나가곤 했다. 그날도 산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때 길옆 푸른 풀들 사이에 삐죽이 올라와 있는 보랏빛 붓꽃이 눈에 쏙 들어왔다. 그런데 그걸 발견한 순간 마음이 울컥 흔들렸다. 알 수 없는 위로의 감정이 밀려왔다. 마치 붓꽃이 아는 척하며 힘내라고 말 거는 느낌이랄까. 인생은 이렇게 홀로 꽃을 피우며 사는 거라고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이후 나는 숲을 걸으면서 꽃과 나무를 보며 나직이 말을 건네거나, 그들이 말을 걸어오지 않나 귀 기울이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 때면 숲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숲으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사람이 채워주지 못하고, 도시의 풍요와 편리가 달래줄 수 없는 빈자리를 넉넉하게 품어주는 숲의 기운이 그립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도 권하고 싶은 마음에 이번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푸른 숲에 방긋방긋 인사하는 들꽃들이 마음을 사로잡는 들꽃 숲길을 소개한다.


금대봉 대덕산 생태숲길

태백과 정선의 경계에 위치한 금대봉 대덕산 생태숲길은 백두대간을 밟고 지나는 깊은 숲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무수히 많은 들꽃들이 피고 지는 야생 꽃길이다. 길은 해발 1268m의 두문동재에서 시작된다. 두문동재는 해발 1330m인 만항재에 이어 국내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두 번째로 높은 고개이다. 그곳에서 출발하면 쉽게 깊은 숲으로 진입할 수 있어 걷는 부담을 덜 수 있다.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으면 걷는 원시 숲길은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고도가 높아 다른 지역보다 봄이 늦은 이 숲에는 5월이 되면 아직 초록물이 채 오르지 않은 무채색 풀과 분홍빛 얼레지와 바람꽃들이 수놓기 시작한다. 점차 연둣빛 잎들이 늘 때쯤 노란색 피나물이 군락을 이뤄 피어나고, 분홍빛 줄딸기 덤불이 펼쳐진다. 여러 색깔 제비꽃과 별꽃들은 땅바닥에 몸을 낮춘 채 아는 척을 한다. 과연 '천상의 화원'이라는 별칭이 과장이 아니다. 분홍색 은은한 철쭉은 오히려 너무 평범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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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대봉대덕산 생태숲길은 ‘분주령’. 매년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며 사전예약을 해야 숲에 들어갈 수 있다. ⓒ 정지인


계절이 깊어갈수록 숲은 새로운 주인공들로 채워진다. 덥다 싶으면 보라색 벌깨덩굴이 숲을 점령하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면 범의꼬리, 엉겅퀴, 전호가 장관을 이룬다. 자기의 때를 알고 순리대로 피고 지는 들꽃들의 자연스러운 소박한 아름다움이 숲을 걷는 우리에게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온다.

금대봉 대덕산 생태숲길은 '분주령'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금대봉에서 대덕산으로 이어지는 숲길 중간에 위치한 분주령 주변이 아름다운 들꽃 군락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걸으면서 들꽃만 보는 건 아니다. 고목나무샘도 만나고, 오래도록 걷고 싶은 낙엽송 오솔길도 지난다. 대덕산 정상에서 만나는 멋진 조망도 놓치기 아깝다. 숲길의 마지막은 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로 이어진다. 석회암반을 뚫고 하루 2천 톤의 물이 솟아오르는 검룡소는 오랜 세월 흘러내린 힘찬 물줄기로 암반의 모양이 마치 용틀임을 하는 모양으로 패여 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금대봉 대덕산 숲길은 태백산 국립공원이 관리하는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매년 5월 중순부터 10월까지만 한시적으로 출입이 가능하며 사전예약을 해야 숲에 들어갈 수 있다. 예약은 태백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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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배령 길.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00미터 고지의 넓은 평원에 각종 들꽃들이 피어난다. ⓒ 정지인


곰배령 하늘꽃밭

들꽃이 아름다운 천상화원으로 '곰배령'도 빼놓을 수 없다. 분주령보다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설악산에서 오대산으로 백두대간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해발 1424m의 점봉산 자락에 있는 곰배령은 곰이 배를 하늘로 향하고 누워있는 모습이라고 붙여진 지명이다. 해발 1100m 고지의 넓은 평원에 계절별로 각종 들꽃들이 군락을 이뤄 피어난다.

금대봉 대덕산이 푸른 숲길을 걸으면서 울긋불긋 들꽃들과 눈을 맞추는 분위기라면 곰배령은 고원 분지에서 한꺼번에 펼쳐진 넓은 하늘꽃밭을 만나는 느낌이라 색다르다. 분주령이 있는 태백산 인근보다 위도가 높은 설악산 근처라 그런지 곰배령의 들꽃은 종류가 조금 다르다. 봄에 피는 얼레지꽃을 시작으로 여름에는 동자꽃과 노루오줌, 물봉선이 피어나고 가을에는 쑥부쟁이, 용암, 투구 등이 피어난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입산 금지 지역이지만 산림청에 사전예약을 하면 강선마을부터 곰배령까지 편도 5km 구간의 숲길은 탐방이 가능하다. 곰배령으로 가는 길에 마주치는 강선마을은 방송에 소개된 적도 있는 산골 오지 마을이다. 이곳에서 숙박하면 보다 여유롭게 곰배령 탐방이 가능하다. 물 맑고 시원한 강선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 여행코스로도 괜찮다. 곰배령 탐방은 산림청 홈페이지에서 사전예약을 하면 이용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정지인님은 여행카페 운영자입니다. 전직 참여연대 간사였고 지금은 여행카페 운영자 입니다. 매이지 않을 만큼 조금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 자유가 많은 삶을 지향한다. 지친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여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들꽃 #숲길 #곰배령 #분주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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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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