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은 항명?

거부하지 못했던 항암

등록 2017.06.02 15:27수정 2017.06.02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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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암은 암세포가 생명체의 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한다.


의학계는 발암의 원인 규명을 위해 오랜 시간 연구에 공을 들였지만 현재도 섭취하는 음식물에 의한 이상이나 암세포의 돌연변이일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신체의 부위와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고 하는데 원론적인 이야기일 뿐 환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은 아니다.

발암 후 방치하면 결국 사망에 이르는 병이라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발암을 자연적인 현상으로 봐야할 것인지,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저항인지는 의문이었다.

의학적으로 보면 분명 사람이 예견하지 못한 저항적인 돌연변이일 수 있지만, 신의 섭리를 개입시키는 종교적인 입장에서는 운명적인 자연현상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연현상의 관점에서 본다면 항암은 자연을 따르는 순리라기보다는 주어진 운명에 대한 항명이 되고 만다.

그러나 현세에서 항명일지라도 암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그 길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개인적 의지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다.


어떻든 항암(抗癌)은 신체의 일부에 발생한 암의 세포 증식을 억제하거나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병원에서는 주로 화학적으로 독약에서 추출된 항암제라는 약물치료를 선택하고 있다. 항암을 바라보는 이론은 많지만 암의 상태나 환자의 나이 체질 등에 따라 다르게 반응해도 항암제의 치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우세한 편이다.

한편 항암제도 일종의 독약으로 암 증식을 막는 건강한 면역세포마저 죽인다는 점에서 약물에 의한 항암의 효과에 부정적인 의견을 가진 의사들도 있다.

요즘 각종 건강 프로그램에는 자연 속에서 식이요법이나 운동을 통해 면역력을 증가시켜 항암 효과를 거두었다는 사람들을 소개하는 것도 보았다.

그러나 장루 복원 수술 전 4주 간격으로 5일씩 4회의 항암을 해야 한다는 말은 무엇보다 항암 중에 겪은 극심한 고통과 후유증의 기억 때문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미 암은 관해가 되었다는데 또 무슨 항암이냐고 우겨도 봤다. 그리고 항암을 하더라도 항암 치료의 횟수를 줄일 수는 없는지 물었다. 그렇지만 담당 교수는 항암을 하는 이유는 "몸속에 남아있는 암세포를 소탕하여  완치하기 위한 치료"라고 했다.

대직방 환우들의 경험을 살폈으나 나처럼 갈등했다는 글보다는 병원 측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낫다는 경험담이 많았다. 아내마저 만약의 경우를 이야기하면서 병원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나 역시 어차피 살고자 시작한 일인데 완치로 가는 길이라면 거부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2015년 6월 8일부터 장루 복원 수술 전 1차 항암이 시작되었다. 항암 주사약은 수술 전 방사선 치료와 병행했던 5FU(플루오로우라실), 투여량은 100mg이었다.

수술 전 1, 2차 항암 때와 달리 장루를 착용하였기에 대변보는 일과 항문의 통증으로 인한 고통은 없으리라 여겼지만 그래도 부작용이 클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도 컸다. 그런데 금요일인 6월 12일까지 5일간의 항암 후 부작용은 예상보다 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주사액이 몸에 들어가면 스멀거리는 기분 나쁜 이질감이 온 몸을 도는 듯했고, 바늘을 뽑아 던지고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에 몸을 떨기도 했다.

텔레비전에 집중도 안 되고 옆 사람의 소리만 커도 짜증이 났다. 항암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면 걸음걸이가 붕 뜬 느낌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머리가 멍하고 소변 기능 장애, 손 저림, 몸살처럼 몸을 가누기 힘들어 천천히 운전하여 집에만 도착하면 긴장이 풀리면서 의식은 몽롱해졌다. 도저히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다만 일반적으로 보이는 탈모현상이나 피부 혈색의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역시 음식이었다. 평소에 잘 먹던 음식도 어느 순간 시각적인 거부감은 물론 냄새도 싫어지는 후유증 때문에 아내의 고생이 컸다고 본다. 다행히 시원한 과일과 채소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식사 대신 사과 오이 귤 바나나 등 과일로 끼니를 떼우기도 했다.

7월 6일부터 10일까지 5일간 2차 항암, 8월 3일부터 8월 7일까지 3차 항암이 있었고 마지막 4차 항암은 8월 31일에 시작하여 9월 4일에 마쳤다. 일단 병원에서 실시하는 화학치료는 끝난 것이다. 2차 항암부터는 좀 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는데 항암에 대한 공포가 많이 가셨기 때문으로 본다.

그리고 의외로 고통이 적었고 또 빨리 일상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첫째 5월 암 제거 수술 전처럼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를 죽여 암의 크기만 줄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신장이나 다른 기관에도 영향을 주는 치료였다. 그렇다보니 몸이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했고 그 후유증이 컸던 것이다. 

두 번째 고통이 적었던 요인은 아무래도 대변을 항문으로 배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루에 30여 회 많게는 60회 가량 대변을 봐야 했던 고통은 트라우마로 남았는데 역설적이게도 장루가 항문이 당하는 고통을 해소하는 기능을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후유증이 없지는 않았다. 수술 전이나 첫 번째 항암에 비하면 고통이 덜한 편이지만 2차 항암 역시 머리가 어지럽고 미묘한 메스꺼움이 괴롭게 했던 것은 사실이다. 

항암 기간 중에는 몽롱한 의식으로 이성적인 사고가 마비되는 시간이었다. 여전히 상태는 좋지 않아 집에 돌아오면 점심도 거르고 오후 내 잠만 자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나에게 나타났던 항암 후유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 얼굴색 검게 변함.
둘, 잇몸이 부실해져서 질기고 단단한 음식을 먹기 곤란함
셋, 오심과 울렁증 지속
넷, 같은 음식은 물론 비슷한 음식도 두 끼니를 먹으면 싫증남
다섯, 앉았다 일어서면 어지러움
여섯, 오른쪽 다리가 당기고 아픔
일곱, 손발이 저림
여덟, 눈의 시력이 떨어진 느낌 - 특히 다초점 렌즈의 효력이 떨어짐.
아홉, 자고 일어나면 혓바닥을 포함한 입안 전체가 건조해지는 현상. 

그런데 희한하게도 항암이 끝난 지 1주일이 되면서 얼굴은 밝아졌고 오심과 울렁증은 금세 사라졌다. 그렇지만 항암 후 2년이 되는 지금도 손발이 시리고 입안이 건조해지는 증상 등의 후유증은 남아있다.

9월 11일 항암 후 몸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오후 3시 30분부터 채혈, ct 촬영이 있었다.
그간 치료 결과에 따른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그것을 근거로 복원 수술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2015년 9월 21일, 종양내과 정 교수 면담이 있었다. 외래 진료라기보다 차트상 아주 깨끗하다는 통보라는 편이 옳을 것이다. 앞으로 문제가 없겠느냐는 질문에는 웃기만 했다.

그간 나의 병에 관해 구체적인 수치를 알아볼 생각을 안 했다. 지금도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냥 좋다는 말만 들으면 되는 것이지 전문가도 아닌데 수치를 따진들 무엇을 더 알 수 있을 것인가. 감사하다는 인사만 하고 나왔다.

이어서 11시 대장항문과 김 교수 진료가 있었는데 ct상 이상은 없으며 직접 항문을 진찰한 후 수술 날짜를 잡자고 했다. 환자복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워 기다렸다. 이상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과 웬만한 외상에는 약을 바르지 않아도 상처가 잘 아무는 체질인지라 잘 되었을 것이라는 기대가 엇갈리는 시간이었다.

항문에 손을 넣어 검사하는 김 교수의 진찰. 입으로 숨을 쉬면서 고통을 참았다. 대장과 연결한 부분도 봉합이 잘 되어 결과가 좋았다. 복원 수술은 10월 14일로 잡혔고 전신마취를 한단다. 13일 입원하여 퇴원까지는 1주일가량 걸릴 것이라고 했다.

벌써 1년 9개월 전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 때가 고작 1년 9개월밖에 안 되었느냐는 생각도 든다. 엊그제 일 같기도 하고  아득한 꿈속의 일 같기도 하다. 201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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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 #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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