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죽는다? 이거 깨려고 100km 걷습니다"

[인터뷰] '옥스팜 트레일워커' 도전하는 소아암 경험자 이담희, 윤서영씨

등록 2017.04.16 21:03수정 2017.04.17 14:15
0
원고료로 응원
한국 사람들에게 '기부'는 어떤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구호단체의 캠페인이나 <사랑의 리퀘스트> 같은 TV를 통한 ARS 기부 프로그램을 흔히 생각할 것이다. 단순 일회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한국의 기부 문화는 무척 단순하고, 구호 단체 등 한 다리를 건너 이루어지곤 한다.

그런데 옥스팜 트레일워커라는 행사가 있다. 일종의 글로벌 기부 프로젝트인데, 마실 물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이 맨발로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 왕복해야 하는 현실을 경험해보고 가난을 퇴치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걸을수록, 이겨낼수록, 같이할수록 시작되는 변화, 옥스팜 트레일워커"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행사에는 4명 한 조를 이루어 100km에 달하는 길을 38시간 내에 완주해야 한다. 사전 펀딩 프로젝트로 각 팀당 최소 50만 원의 기금을 조성해야 하는 미션도 주어진다.

일생에서 꼭 도전해봐야 할 '인생기부 프로젝트'라고도 불리는 이 옥스팜 트레일워커 행사는 1981년 시작되어 지금까지 36년간 세계 11개국 17개 도시에서 약 20여 만 명이 참여했다. 후원액은 2억 달러(약 2300억 원)에 달한다.

이 행사는 오는 5월 20일~21일, 전라남도 구례군과 지리산 국립공원 일대에서 국내 최초로 개최된다. "어라? 이게 될까?" 싶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생소하고 프로그램이지만, 모집 팀 100개 중 이미 89개 팀(16일 오후 9시 기준)이 참가신청을 했다.

이들 중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다. 여대생 4명, 그 중에서 2명의 팀원이 소아암 경험자로 구성된 '뻔한칠드런'이라는 팀이다. 지난 5일 소아암 경험자 팀원, 이담희씨와 윤서영씨를 만났다.

"숨어 지내는 소아암 환자에게 희망이 됐으면"


a

<뻔한칠드런> 의 소아암 경험자 이담희(왼쪽), 윤서영(오른쪽) <뻔한칠드런> 의 소아암 경험자 이담희(왼쪽), 윤서영(오른쪽) 팀원이 손가락 하트를 만들고 있다. ⓒ 장성열


- '뻔한칠드런'이라는 팀에 대해 소개 부탁드릴게요.
이담희: '뻔한칠드런'이란 이름은 "Fun한 Child+Run"이라는 뜻인데요. 먼저 Fun한 방식으로 기부를 하자, 칠드런은 'Children'이 아니라 'Child'와 'Run'을 합친 단어입니다. 아이들을 위해 달려가겠다, 재미있는 기부방식으로 아이들이 달릴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에요.

윤서영: 저는 원래 담희와 같은 팀이 아니라 다른 팀으로 나오려 했어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한 팀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담희와 저는 소아암 경험자로 활동했는데요. 이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같이 하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중고생 자원봉사상을 함께 수상한 고유정이라는 친구와 라오스 해외봉사를 함께 다녀온 최윤지라는 친구도 합류하게 됐어요.

- 두 분의 자기소개도 부탁드려요.
담희: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이담희라고 합니다. 5살 때 백혈병을 경험했고, 고등학교 때 완치 판정을 받았어요. 지금은 말을 안 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그런 건강한 이미지를 얻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죠. 고등학교 때 공부도 일부러 더 열심히 하고, 반장과 임원도 일부러 맡았고요. 남들 앞에 서서 잘 하는 모습을 보여야 아프다는 이미지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부러 더 씩씩하게 생활하면서 건강한 이미지를 얻었어요.

<옥스팜 트레일워커>에 참여하게 된 건 소아암 경험자들이 아프고 연약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꿋꿋하게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후원 받는 입장이 아니라, 저희가 남을 후원할 수 있다는 걸 더 알리고 싶었습니다.

서영: 저는 중국어를 전공하는 윤서영이고요. 소아암은 중학교 2학년 때 발병했는데 치료기간이 무척 짧아서 3학년 때 바로 복귀했어요. 원래 공부보다는 다른 대외활동 하는 걸 좋아해서, 봉사활동과 대외활동을 하면서 엄청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러다 소아암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소아암 환아들도 이런 편견 때문에 위축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런 친구들이 적어도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 소아암 '경험자'라고 하셨는데, '완치자'라고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경험자'가 더 정확한 표현인가요?
담희: 사실 완치라는 표현이 맞지 않더라고요. 옛날에는 소아암 치료 종결 후 5년이 지나면 '완치' 판정을 내려 줬는데, 요즘은 5년이 지나고 나서도 재발하는 사람도 있어서, 그래서 '경험자'라고 부르는 게 맞다고 해요.

- 인터뷰 사전 답변서에 "내가 경험했다고 이야기하기까지가 힘들었다"는 대목이 있었던 거 같아요.
담희: 저는 발병 후에 약 1년 간 입원 치료를 받았는데, 초등학교 수업 빠지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입장이었어요. 그러면 애들이 알잖아요. 2학년 때는 담임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제 병명을 소개해 준 적이 있어요. "이 아이가 이것 때문에 이렇게 아프니까 잘들 챙겨주라"고요. 선생님은 저를 배려한다고 그렇게 하신 건데, 제 입장에선 그게 아니었죠.

그 이후 사람들이 저에 대해 선입견을 확 가졌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말하는 걸 꺼려했어요. 지금은 내가 소아암을 겪었다는 게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내가 이겨낸 것 자체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이런 걸 밝히는 거에 대해서 지금은 꺼려하지 않아요.

-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건가요?
서영: 소아암 경험자 친구들을 모아서 활동하는 한국소아암협회라는 단체가 있어요. 가끔씩 캠프나 봉사 활동을 하는데, 거기 나갔다가 만났어요. 동갑이고, 같이 밥 먹고 하다 보니 친구가 됐어요.

- 거기서 어떤 봉사를 했나요?
담희: 저는 1년간 모발 기부 업무를 했어요. 사람들이 모발을 기부하면 그걸 가발로 만드는데, 저는 사람들이 보낸 모발을 정리하는 일을 했어요.

서영: 저는 일반적인 사무 보조 봉사를 했어요. 그리고 환아들과 놀아주는 역할도 했고요. 병원이나 학교에 찾아가고 병원에서 체험부스 운영하는 것도 했어요.

- 행사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담희: 지금은 팀원 네 명이서 하루에 1만 보씩 걷고 있어요. 그 외에 따로 하는 건 없어요.

서영: 저는 원래 검도를 좀 했어요. 그래서 사실 저는 걱정을 안 해요. 다른 두 명의 친구들도 기아체험을 하거나, 혼자서 자전거로 국토대장정을 한 경험이 있어요. 팀원들은 걱정이 안 돼요.

- 후원 리워드로 팔찌를 만드신다고 하셨죠?
담희: 네. 왜냐면 저희는 대학생 신분이니까 기초 자금이 없잖아요. 그래서 이왕이면 최저가로 시작해서 조금씩 벌자는 생각으로 했어요.

서영: 일단 1차로 팔찌를 팔아 보고 안 되면 다른 걸로 바꾸기로 했어요. 근데 이게 잘 팔려요. 주변에서 계속 연락이 와요.

- SNS로 판매하면 배송비가 또 들어가지 않나요?
담희: 저희가 커버 가능한 지역은 직접 가요. 아무래도 주변인들이 많이 사니까요. 아는 봉사단체 오빠한테도 사라고 했더니 알겠다며 열 개 가져오라고 하더라고요.

- 네 분 다 여성이라, "여자인데 완주는 힘들지 않겠느냐?" 같은 말도 들었을 거 같아요.
서영: 아직까진 그런 이야기는 안 들었어요. 또 저희가 완주하면 그런 이야기는 못 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걱정도 안 하고요.

- 부모님들은 뭐라고 하세요? 걱정은 안 하세요?
담희: 어머니는 "네가 좋은 일 하는 거니까"라며 응원해 주시고요. 100km라는 이야기를 안 했던가?(웃음) 아무튼 평소에 걱정을 많이 안 하세요.

서영: 저는 원래 고집도 있고 그냥 하는 편이라서 엄마가 별로 신경을 안 쓰세요. 그래서 지난해에도 혼자 유럽여행을 다녀왔거든요. 혼자 100일 동안 여행하는 걸 처음엔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준비과정에서 여행 자금도 열심히 벌고, 자격증도 따니 더 이상 뭐라고 안 하시더라고요. "네가 알아서 잘 하겠거니"라면서요.

- 대학생들이 이런 도전을 한다고 하면 "쟤 또 스펙 쌓으려고 한다"는 편견이 있잖아요. 스펙 한 줄 때문에 취업계 내고 회사 다니는 학생도 많이 봤고요. 그런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담희: 근데 그 한 줄 때문에 100km를 걷기에는... (웃음)

서영: 저희는 100km 걷고, 돈이 안 모이면 우리가 그 돈 내야 해요. 이걸 '스펙'으로 보는 사람은 딱 그만큼의 가치를 가진 사람인 것 같아요.

"암 걸릴 것 같다는 말, 어이 없어요"

a

하트를 만드는 <뻔한칠드런> <뻔한칠드런> 의 팀원 이담희(왼쪽), 윤서영(오른쪽) 씨가 하트를 만들고 있다. ⓒ 장성열


- 이런 질문은 실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운데요, 장애나 질병에 대한 차별적 표현이 굉장히 많이 쓰이고 있어요.
서영: "암 걸릴 것 같다"는 표현이 대표적이죠. 저희도 가끔 "아, 재발할 것 같다", "다시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을 쓰기는 하는데, 저도 쓰고 나서 아차 해요.

담희: 전 쓰지 않아요.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 어이가 없어요. 특히 부정적 편견을 강화하는 게 드라마 속 소아암 환자 캐릭터예요. 곧 죽을 것처럼 설정하고... 요즘은 아닌 경우도 많거든요. 굉장히 부정적인 이미지만 만드는 것 같아요. 왜 저렇게 너무 자극적으로 보여주나 싶고요. 당사자들도 병원에서 저런 드라마를 볼 텐데 좀 자제했으면 좋겠어요.

서영: 엊그제 본 드라마에서도 골수 검사하면 죽는 것처럼 나오는 거예요. 근데 그냥 검사 하는 거거든요. 이식 하는 것도요. 물론 안에 있는 걸 빼는 거라 좋지는 않지만요.

- 미디어에서는 백혈병이 어린이 환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집니다.
서영: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프면 무조건 백혈병으로 나오죠. 사실 백혈병 자체는 별로 없고, 다른 종류가 많거든요. 파생되어서 나오는 병들이 더 많은데 무조건 다 백혈병이래요. 마치 혈액암에 백혈병만 있는 것처럼요. 제가 협회에서 만난 친구들 보면 백혈병보다는 다른 병을 가진 친구들도 많거든요. 소아암이 곧 백혈병은 아니라는 건데, '소아암이면 백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소아암에도 백혈병 말고 종류가 많다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담희: 이번 '옥스팜 트레일워커'를 통해서 소아암에 대해서 사람들이 좀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스쳐 지나가거나 어디서 들어본 게 아니라 "아 이런 게 소아암이구나" 이렇게요.

- 사람들이 소아암에 대해서 '이 정도까지는 알았으면 좋겠다'라는 게 있나요?
서영: 전염병이 아니고 치료가 될 수 있다, 그 정도? 전염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요. 환자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잖아요. 그게 사실 저희를 보호하려고 쓰는 거거든요. 저희가 면역력이 약해서 다른 사람들로부터 오는 균을 차단하기 위해서 쓰는 건데, 사람들은 전염 때문에 쓰는 거라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게 많아요.

담희: '걸리면 무조건 죽는다'는 인식이 많아요. 그런데 요즘은 소아암의 완치율이 80%는 돼요. 그걸 사람들이 몰라요.

서영: 그리고 요즘은 기술이 좋아서 웬만하면 초기에 발견하기 때문에 안 죽어요. 말기나 엄청 심각한 경우, 병원 의료사고가 아니면 안 죽거든요. 근데 사람들은 걸리면 죽는다고 생각해요.

a

팔찌를 감아주는 <뻔한칠드런> 윤서영(오른쪽) 씨가 팀원 이담희 씨에게 건강과 장수를 바라는 의미의 팔찌를 걸어주고 있다. ⓒ 장성열


- 참가 이유를 설명하면서 '걱정의 대상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를 후원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 참 좋은 말 같아요.
담희: 보통 아이가 소아암 경험자면 어디 내놓기보다는 자기 품 안에 두려고 하시는 부모님들이 많거든요. 저희 엄마도 그랬고요. 그런데 감싸 안는 것보다는 나가서 할 수 있다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를 통해서 '우리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봤으면 좋겠어요. 또 한국 사회에서 '암환자'라고 하면 보통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병원에 누워서 링거 맞고 호흡기 꽂고 있는, 아니면 항암치료 때문에 모자를 쓰고 있는 이미지. 그런 인식에도 확실히 도전하실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요.

서영: 사실 그게 저희가 병실에서 봤던 바로 그 모습이거든요. 저도 병실에 누워서 마스크 쓰고 있고, 친구들 오면 보여주기 싫으니까 모자 쓰고 있고 그랬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런 걸 말하지 않으면 모르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완주를 해서 소아암 경험자들도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 특별히 후원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
서영: 이름 자체가 '칠드런'이고 그렇게 지은 이유도 아이들을 위한 거잖아요. 처음에는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 할까 했지만, 결국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팔찌를 만들기로 했어요. 이 팔찌가 우리나라 전통 팔찌인데 부모가 아이에게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만들어 주었다고 해요. 저희도 같은 마음으로 만들고 있어요.

담희: 그리고 옥스팜이 세계 아이들의 가난의 불공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저희는 한국에서 태어났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런 환경이 안 되어 있는 곳에서 사는 아이들은 치료 받을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어요. 조금만 치료하면 극복할 수 있는데 환경이 안 되어서 죽는 경우도 많으니까 그런 걸 도와주고 싶었어요.
#옥스팜 #트레일워커 #뻔한칠드런 #기부 #소아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현실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글로 기억하는 정치학도, 사진가. 아나키즘과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가장자리(Frontier) 라는 다큐멘터리/르포르타주 사진가 팀의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 '좋은 기자'가 된다고 믿습니다. 오마이뉴스 정치부에디터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