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헌법 소송, 왜 그렇게 매달릴까

[서평] 이석연 변호사의 <헌법은 살아있다>

등록 2017.03.07 10:27수정 2017.03.10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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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규정하고 있다. 제1조 제2항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런 헌법 규정은 지금은 당연한 문구지만, 군사독재 시절만 해도 '권력은 청와대로부터 나온다'는 화장실 낙서가 흔했다고 한다. 그 시절의 헌법은 토론이나 논의의 대상이 아니었고, 국민들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이 성공하고 87년 체제가 성립하면서, 헌법재판소가 문을 열었고 본격적인 재판이 시작되었다. 헌법은 헌법소원을 통해서, 위헌법률심판을 통해서, 탄핵을 통해서 국민과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수도이전법 위헌결정',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 등은 엄청난 파장을 주고 정치권과 사회에 큰 파장을 미친 바 있다. 국민 사이에서 헌법과 헌법재판소의 중요성은 점점 커져가고 있고,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사회를 바꿔가고 있다.

이렇게 변해가는 헌법의 위상을 지켜보고, 헌법소송을 위해 노력하며 살아온 변호사가 쓴 책이 있다. 이석연 변호사의 <헌법은 살아있다>는 헌법에 관한 대중 교양서다. 헌법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대한민국을 바꾼 헌법의 결정, 헌법을 둘러싼 대담을 다룬다. 이 책에는 다른 교양 법률서적과는 다른 특별한 장점이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끌어내기 위한 준비와 결정에 대한 관련자로서의 느낌과 평가가 담겼다.

이는 저자의 경력 때문이다. 이석연 변호사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행정고시와 사법고시에 모두 합격하고, 제1호 헌법연구관으로 헌법재판소에 근무한 뒤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는 헌법재판소와 관련한 헌법소원에 참여했다. 그 유명한 '수도이전법 위헌결정'과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의 내용 전개에는 설명이나 참조가 아닌 본인의 상세한 진술이 담겨 있다.

제1장 '헌법은 무엇인가'는 시사 이슈와 관련된 헌법적 쟁점을 다룬다. 저자는 이 장에서 특히 촛불집회의 의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촛불집회는 '주인이 임명한 심부름꾼을 바꾸기 위한 헌법의 틀 내에서 이루어진 평화적인 저항권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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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미


저자에 따르면, 촛불집회는 가장 큰 심부름꾼의 잘잘못을 문서로 남기기 위하여 마지막 헌법 수호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로 올린 것이다. 이는 혁명이나 헌정 중단이 아닌, 헌법에 근거를 둔 정당한 행위라고 한다. 저자는 여기서 더 나아가 향후 개헌 시에 국민의 저항권을 독일 헌법(독일기본법 제20조 제4항은 국민의 저항권에 관해 규정한다) 수준으로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

제2장 '개헌을 말하다'에서는 개헌 논의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그동안의 개헌 과정에 대해 검토하고, 앞으로의 개헌안이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 논한다. 특정 정치 체제를 지지한다는 표현은 없으나 5년 단임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해 비판적이다. 저소득층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기본권 내용을 명확히 할 것을 주장한다. 이외에도 지방자치제도의 확대를 위한 근거 보완,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경쟁의 결과 뒤처진 계층을 끌어올려 주고 희망을 포기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입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 소외계층의 눈물과 한숨을 제대로 담아내는 법제와 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사회적 기본권의 내실화, 또는 실질화가 요구됩니다. 따라서 기존 기본권을 보다 명확히 규정하고 기본권에 대응하는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는 한편, 새로운 기본권을 추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 56p.

제3장 '헌법은 살아있다'에서는 한국을 바꾼 10대 위헌결정을 살펴보고, 제4장에서는 지승호 인터뷰어와 헌법에 대한 대담을 펼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이 일반적인 헌법 교양도서와 다른 면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통 다른 헌법에 관한 책은 주요한 결정의 배경과 전개에 대해 제3자의 입장에서 설명하지만, 이 책은 직접 저자가 그 정황을 직접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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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은 살아있다> ⓒ 와이즈베리

저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약칭 수도이전법)과 '행정중심복합도시법(약칭 행복도시법)'에 헌법소원을 걸어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을 받아낸 바 있었다.

이 당시 수도이전은 노무현 정부의 공약이자 주요 정책 기조였기 때문에 위헌 결정 이후에 헌법재판소와 정부를 둘러싼 갈등이 대폭발했다. 세종시 논란은 MB 정부까지도 이어진다. 수도이전 반대 5적에 지목된 이석연 변호사는 서초경찰서에서 경호를 제안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행복도시법' 헌법소원 당시에는 살해협박도 받았음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수도이전과 관련한 절차적 문제에 주목했다고 한다. 수도이전에 관련된 정략적 밀어붙이기가 있었다고 본 것이다. 이후 수도이전법 헌법소원 과정에서 정치인과의 접근을 끊은 채 법리적 검토에 착수하여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저자는 헌법소원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고 봤고, 법리적으로도 자신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술회하고 있다.

저자는 국회의원 공천 제안을 거절하며 비정치인의 삶을 살았다. 다만 이명박 정부의 법제처장(2008~2010)을 맡은 바 있는데, 저자는 이에 대하여 국무위원이 아닌, 중립적으로 일하되 전문성이 요구되는 자리임을 언급하며 테크노크라트(기술 관료)로 근무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에 맡겨야 할 것 같다.

제대군인 가산점 제도 위헌결정에 대한 입장도 있다. 저자는 5퍼센트라는 당시 법률의 공무원 지원 가산점은 과하다고 생각했기에 헌법소원(98헌마363)을 걸었다. 그리고 재판관 만장일치의 위헌 결정이 나왔다. 저자는 5퍼센트는 과하지만, 헌법 제39조 제2항에 의거해 1퍼센트 정도의 가산점을 주는 것은 헌법 위반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외에도 저자는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 위헌 결정,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위헌 결정을 받아낸 바 있다. 이 저자가 참여한 헌법소송이 150여건, 위헌 결정을 받아낸 것이 30여건에 이른다고 하니 엄청난 실적이다.

헌법소송은 돈이 안 되는 소송이다. 일반 민사 소송처럼 재산권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소송이 아니다. 또, 제도에 관련된 소송이기 때문에 위헌 결정이 나온 이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만 그 결정을 받아내는 선례가 되기 위해 뛰어드는 사람은 적다.

저자는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를 위해 이런 일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불편한 제도나 국민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일이 크게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을 눈물짓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철학이다.

저자의 헌법관에 대하여 사람마다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헌법재판소 성립 이후 이정도로 헌법소송에 주력해온 사람은 드물다. 저자의 생생한 경험이 자칫 건조해질 수 있는 내용을 살려주는 책이라 하겠다.

책에 '헌법의 길은 국격 향상의 길'이라는 언급이 있다. 국민의 일상을 제대로 반영하고, 그 위반에 대하여 국민이 감당할 수 있는 법령을 마련하며, 공권력이 적법 절차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법치주의가 이루어진다면 법치 선진화와 국격 향상이 가능하다고 한다. 헌법에 대한 관심이 극도에 달한 지금, 앞으로의 법치와 국격에 대해 궁금한 시민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

헌법은 살아있다

이석연 지음,
와이즈베리,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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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에디터. '은경의 그림책 편지'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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