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사 문제, 방송 촬영을 거부한 이유

등록 2017.02.14 16:08수정 2017.02.14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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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농촌마을보다는 무연고 노인들의 경우가 사정이 더 딱하다. 무연고 노인들의 경우 고독사를 당해도 한 달 혹은 그 이상 방치되다가 발견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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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 활동하다 보면 이따금 TV출연을 제안받기도 한다. 지난 13일 시골집에 CCTV를 설치한 기사 때문에 모 지상파 방송사의 촬영 제안을 받았다. 물론 필자는 방송사의 촬영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관련기사] 시골집에 CCTV 단 아버지, 도둑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그 기사의 핵심은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아버지'이다. 방송에서 원하는 '그림'이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작진은 고독사를 바라보는 시골 마을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사실 기사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필자의 아버지가 고독사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또 있다.

친인척은 물론이고 이웃과의 왕래가 잦은 시골 마을의 경우, 버젓이 자식들이 있는데도 혼자 외롭게 죽음을 맞는 것은 큰 '흉'이다. 아버지는 자신의 갑작스러운 '변고(죽음)' 때문에 혹시라도 자식들이 이웃으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하신 것이다. 물론 이것은 아버지를 직접 인터뷰해 얻어낸 결론은 아니다.

평소 이웃이나 타인에게 피해가 되는 일을 극히 꺼리는 아버지의 성정을 통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의 아버지는 "명절을 쇠고 있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된다"며 어머니가 돌아 가셨을 때 부고도 내지 않으셨다. 필자의 어머니는 지난 1월 29일 설 다음날 돌아가셨다.

이런 아버지에게 카메라를 들이 밀며 "고독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CCTV를 왜 설치했는지"를 물을 필요가 있을까. 게다가 필자의 고향 마을에서는 고독사가 흔한 일도 아니다. 아버지는 고독사가 흔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희박한 가능성까지 염두하고 CCTV를 설치하셨다.


실제로 CCTV를 설치한 표면적인 이유도 "도둑이 들까봐"였다. 아버지는 고독사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하마터면 고독사를 당하실 뻔한 '이웃집 아저씨 사건'을 이야기 하며 아버지의 생각을 우회해 표현했을 뿐이다. 물론 필자는 그 말을 듣고 CCTV설치를 반대하지 않은 것 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웃 공동체도 살아 있고, 게다가 자식들도 있는 노인이 고독사를 한다는 것은 시골 마을에서는 큰 '허물'이다. 필자의 아버지나 이웃들이 고독사를 차마 입에 담지 않는 것도 바로 그런 정서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해당 기사를 작성한 이유는 시골 고향 마을에 혼자 되신 부모를 두고 있는 사람들, 즉 필자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고향집에 자주 찾아가고, 이웃이 수시로 살피더라도 시골 고향집에 혼자 계신 부모가 있으면 늘 불안한 것이 현실이다.

그 불안감을 CCTV가 어느 정도는 해소시켜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CCTV를 설치할 경우 혼자 계신 부모의 동선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필자의 아버지는 심각한 난청이 있어서 전화 통화도 어렵다. 사족이지만 아버지는 종합병원 두 군데와 전문 병원까지 찾아 갔지만 맞는 보청기를 구하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아버지의 경우, 귀에 대고 적당한 크기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하면 간신히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아버지와의 전화 통화는 불가능하다. 필자의 아버지처럼 난청으로 전화 통화가 어려운 경우, CCTV는 전화 못지 않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공동체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시골 마을에서는 고독사는 여전히 흔치 않은 일이다. 자주 찾아 주는 이웃 혹은 친척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역할은 조만간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할 수도 있다.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시골 마을의 공동체도 서서히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동체가 살아 있는 농촌마을보다는 무연고 노인들의 경우가 사정이 더 딱하다. 무연고 노인들의 경우 고독사를 당해도 한 달 혹은 그 이상 방치되다가 발견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CCTV설치는 임시방편일 뿐 늘어나는 고독사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CCTV를 설치할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경제적인 여력이 있고, 누군가 CCTV를 수시로 들여다 봐 줄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방송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필자의 '고향 마을'이 아니라,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 무연고 노인들이 아닐까 싶다.

시골 마을의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CCTV와 고독사 문제를 곧장 연결 짓는 것도 무리가 있어 보인다. 농촌 마을에서는 단순히 좀도둑 때문에 CCTV를 설치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변고'까지 염두에 두고 CCTV를 설치한 필자 아버지의 사례가 이례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또, 귀가 어두운 필자의 아버지는 방송 인터뷰 자체가 큰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필자가 방송 촬영을 거부하는 이유이다.
#고독사 #CCTV #난청 #무연고노인 #방송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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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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