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이성계도 찾아 기도한 '흰 옷 입은 부처'

전국 4대 관음기도 도량 중 하나인 서울 서대문구 옥천암 백불(白佛)

등록 2017.01.05 09:44수정 2017.01.05 09:44
4
원고료로 응원
a

홍제천 하천가에 자리한 전통사찰 옥천암과 바위에 새겨진 흰 부처. ⓒ 김종성


서울 홍제천(弘濟川)은 북한산에서 발원하여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으로 들어가는 소담한 하천이다. 홍제천의 정겨운 우리말 이름 '모래내'는 상류에서 맑은 냇물이 흐르면서 모래가 많아지고 물이 모래 밑으로 스며 내려간 데서 유래한 것이다.

산책로가 나있는 홍제천변 길을 지나다보면 천변가 절벽 밑으로 작은 암자와 누각이 보인다. 옥천암(玉泉庵, 서울시 서대문구 홍지문길 1-38, 홍은동) 이라는 아담한 절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의 직할사찰로 비구니의 수도도량이자 서울시 전통사찰이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서울에서 이름난 기도처였던 옥천암은 일찍부터 '불상이 새겨진 바위'라는 뜻의 불암(佛巖)으로 알려져 있던 고찰이었다.


산속이 아닌 하천가에 있는 이채로운 암자라 그런지 단번에 자전거 여행자의 눈길을 끄는 곳이다. 오늘날처럼 주변 동네가 도시화되기 전만해도 이곳은 옥같이 맑은 물이 흘렀단다. 많은 사람들이 맑고 깨끗한 이 샘물을 마시고 병이 나았다. 도성에 있는 남녀들이 줄을 서서 물을 마셨다고 하는 기록이 있어서 절 이름 또한 옥천암으로 지었다고. 홍제천의 상류지역이라 물이 더욱 맑았으리라.

문화재에서 국가보물이 된 '흰 부처' 

a

전국 4대 관음기도 도량으로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는 옥천암. ⓒ 김종성


a

1908년 여행가 버튼 홈즈(Burton Holmes)가 서울을 답사하며 촬영한 옥천암 백불. ⓒ www.burtonholmes.org


이 절은 사찰 자체보다 높이 6m의 커다란 바위에 새겨놓은 관음보살상으로 더 유명하다. 하천변 암자 안에 하얀 옷을 입은 불상이 앉아있다. 옛날 옛적 산사태나 큰 홍수 때 떠내려 왔을 큰바윗돌 앞면에 마애좌상을 새겼다. 정식명칭은 '홍은동 보도각(普渡閣) 마애보살좌상(弘恩洞普渡閣磨崖菩薩坐像)'이다.

'옥천암 보도각 백불(白佛)'이라고도 불리는 부처상으로 흰색의 분이 전체적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고, 머리에 관모를 쓰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얼굴은 둥근 편으로 가늘고 긴 눈과 작은 입이 표현되어 있어 고려시대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보도각 백불에서 '보도각'은 흰 부처를 둘러싼 전각을 말한다. 보도(普渡)는 모든 중생을 구원한다는 의미다.

바위의 왼쪽 편과 뒷면에는 소원을 빌면서 바위를 갈았던 붙임바위가 남아 있다. 옥천암은 예부터 서울의 여인들이 줄을 서서 예불했던 제일 기도처였다. 그런 역사를 증명하듯 연말연시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 있는 백불 아래에서 기도를 하는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백불 뒤편 붙임바위 아래 앉아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하고 있는 보살들의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흰 부처 앞에서 하는 예불만큼이나 간절해 보였다. 


기성종교의 시각으론 미개한 신앙 혹은 미신이라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바윗돌이나 노거수 나무·바다·심지어 역사 속 장군 등을 영적 매개로 하는 민간 신앙엔 한 가지 큰 미덕이 있다. 자기가 믿고 추앙하는 신이 타인과 다르다하여 그를 배척하고 전쟁까지 벌이진 않는다는 거다.    

a

백불 뒤편 붙임바위 아래서 소원을 빌며 기도를 하는 사람들. ⓒ 김종성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슨 소원을 그리 간절하게 비는 건지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못했다. 건강·합격·성공같은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의 특징상 세계평화나 분단조국의 통일 같은 건 아니겠지 추측만 할 뿐... 21세기 첨단의 현대사회에도 오래된 민간 신앙의 끈질긴 흔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내 어머니도 무언가를 소망하고 기원할 적마다 북한산 자락 삼천사라는 절의 큰 바위에 새겨져있는 마애부처 앞으로 가곤 했다.

확실히 신앙심은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큰 듯하다. 내 아버지는 새해를 맞아 신에게 의지하기 보다는 복권을 사서 소원성취를 바랐다. 한낮의 일요일 TV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방바닥에 깔린 복권 4장을 바라보던 아버지 뒷모습이 생각난다. 간절한 기도를 하는 신도와 다름없어 보여 차마 말을 붙이지 못하고 조용히 안방 문을 닫았다. 커가면서 두 분의 믿음이 부질없음을 목도한 난 북한산엔 산행을 하러 가고, 복권살 돈으로 인형 뽑기를 즐긴다.   

옥천암 백불은 서울시 제17호 유형문화재였다가, 2014년 3월 대한민국 보물 제1820호로 승격되면서 공식명칭은 '옥천암 마애좌상'이 되었다. 구한말엔 '백의(白衣) 관음상' 혹은 백불(白佛)로 불렀는데, 선교사 등 당시 외국인들 사이에 'The White Buddha'로 알려져 서양인들의 주요 답사지가 되기도 했다. 1908년 버트 홈즈(Burton Holmes)라는 여행가가 서울을 여행하며 남긴 사진에도 흰 부처의 모습이 고스란하다.

a

조선초 태조 이성계도 찾아왔던 고찰 옥천암. ⓒ 김종성


a

하천가에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옥천암 경내. ⓒ 김종성


흰 옷 입은 부처에 담긴 전설

옥천암은 오래전부터 비구니의 도량이어선지 주로 중장년의 여성 불자들이 많이 찾아온다. 아마도 옥천암에 있는 흰 부처 덕분이지 싶다. 알고 보니 옥천암은 동해 낙산의 홍련암, 서해 강화도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4대 관음기도 도량이란다. 불교 경전에 나오는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구제하는 대중적인 보살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민간에서 많은 신앙을 받았던 불상이기도 하다.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염불하면 모든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어떠한 고난이나 재액 속에서도 해탈을 얻게 된다고 한다. 옥천암에서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을 정도로 기도 효험이 뛰어나다 하여 지금도 서울 시민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불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특히 이 부처님이 계신 곳은 따로 문이 없고, 하천가에 있어서 아무 때나 어렵지 않게 찾아와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이기도 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도 이 부처 앞에서 기원했을 정도로 영험이 있는 부처님으로 소문나 있었다. 구한말 고종의 어머니이자 흥선대원군의 부인이 이곳에서 아들의 복을 비는 치성을 드리면서 불상에 하얗게 칠을 하였고 이때부터 '백불(白佛)'로 불렸다. 홍제천에 걸려 있는 작은 보도교 다리를 건너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a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전설을 품고 있는 흰 옷 입은 부처. ⓒ 김종성


'보도각 백불에 대해서는 임진왜란 때 왜군을 물리친 권율 장군의 이야기가 전한다. 당시 권율 장군이 이끄는 부대는 왜군과 대항하며 힘든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위세에 밀려 삼각산(북한산)으로 밀려왔다. 왜군들은 한강을 타고 들어와 서대문을 넘어 자하문을 지나 한양도성으로 쳐 들어오는 작전으로 진군을 계속하고 있었다. 사태가 불리하게 된 권율 장군 부대는 옥천암을 요새로 삼아 배수진을 쳤다.

"여기서 더 이상 밀리면 안 된다. 반드시 이곳에서 왜군을 격퇴시켜야 한다." 군령이 떨어진 조선군은 홍제천을 사이에 두고 야간매복에 들어갔다. 적은 병력이지만 옥천암을 사이에 두고 거리를 둔 조선군과 왜군은 상대방의 군사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처음 이 지역으로 들어온 왜군들은 옥천암 마애부처를 조선의 장군으로 오인하면서 탄약을 발포하기  시작했다. 왜군의 탄환은 이내 바닥이 났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탄환이 떨어진 왜군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허겁지겁 퇴각하던 왜군들은 권율 장군의 반격에 모두 전멸하고 말았다.'

고찰의 아담한 누각들과 바위에 새겨진 흰 부처가 홍제천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부터는 홍제천의 최상류로 지금까지의 동네속 물줄기가 아닌 북악산을 향한 자연계곡의 힘찬 모습으로 바뀐다.
덧붙이는 글 * 참고 자료 : 옥천암 누리집 (www.okcheonam.com)
* 지난 12월 31일에 다녀 왔습니다.
* 서울시 '내 손안의 서울'에도 송고하였습니다.
#옥천암 #보도각 백불 #보도각 마애좌상 #THE WHITE BUDDHA #홍제천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구순 넘긴 시아버지와 외식... 이게 신기한 일인가요?
  2. 2 전주국제영화제 기간 중 대전 유흥주점 간 정준호 집행위원장
  3. 3 주목할 만한 재벌 총수 발언... 윤석열 정부, 또 우스워졌다
  4. 4 '윤석열 대통령 태도가...' KBS와 MBC의 엇갈린 평가
  5. 5 청보리와 작약꽃을 한번에, 여기로 가세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