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있다? 없다?... 차라리 이렇게 하세요

굿바이 산타클로스? 35년 전 편지를 쓰던 한 아이가 떠올랐다

등록 2016.12.24 09:23수정 2016.12.24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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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가 산타에게 쓴 편지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 받으려면 한 해 동안 착한 일 한걸 적어보랬더니 숙제를 열심히 했다고 적은 큰 아이. ⓒ 이정혁


둘째 아이가 산타에게 쓴 편지 둘째 아이의 착한 일은 엄마 심부름과 밥 잘 먹은 것 ⓒ 이정혁


인생은 냉정하다.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생기는 건 없다. 공들인 만큼 결과가 나오고, 준만큼만 받게 돼 있다. 우리는 지극히 어린 시절부터 이런 냉혹한 구조를 강요받았다. 시련과 고통의 눈물은 겉으로 드러내선 안 되는 나약함이었다. 삶의 모순과 부딪혔을 때, 짜증을 낸다거나 누군가에게 시비를 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선과 악의 근원을 알고 있는 절대자, 그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모든 것을 알고 있었을까? 성탄절을 며칠 앞두고 의구심이 들었다. 그로 인해 형성된 가치관이 과연 내 삶에 긍정적 영향만 끼쳤던가. 우리는 그에게 선물을 받기 위해 억지로 눈물을 삼켜야 했다. 착하게 행동해야만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어떤 날에는 펑펑 울고도 싶고, 가끔 멋대로 행동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산타클로스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행동에 제약을 받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로써 일곱 번째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게 됐다. 아직은 산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에게 언제쯤 현실을 이야기해 줄지 고민이 들었다. 큰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둘째는 유치원 졸업반이다. 큰 아이의 또래들은 이미 스마트폰을 다룰 줄 알고 상당수가 지니고 다닌다. 검색 한 번이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아이들은 점점 절대자의 구역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내 아이들에게 동심을 지켜주며, 아비의 전철을 밟게 할 것인가? 산타클로스의 외압에 의해 형성된 순종형 인간의 틀을 하루 빨리 벗어나게 해줄 것인가? 물론, 선물 사주는 게 아깝거나, 번거로워서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니다. 다용도실에 장난감을 쌓아두고도 또 사달라는 아이들에게 소심한 복수를 가하고자 하는 사심은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다. 이건 지극히 공적인 고민인 거다.

산타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지 못한다

아이들 방에 설치한 작은 트리와 산타 양말 산타 할아버지에게 적은 편지를 양말에 넣어두었다. 성탄절 아침, 양말은 아이들의 선물로 채워질 것이다. 당연히 산타할아버지의 소행이다. ⓒ 이정혁


내 안의 두 가지 목소리에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들이 존재한다. 먼저 산타의 허상을 알려줄 때가 됐다는 입장. 성격 형성 단계의 아이들이 착한 사람 콤플렉스에 빠지는 걸 미리 방지하고자 함이다. 언제까지 순수한 영혼으로 세상을 살 것인가. 산타를 믿고, 파랑새를 믿고, 무지개 끝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전설을 믿기에 세상은 너무 탁하다. 산타에 대한 철석같은 믿음은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지 못한다.


더구나 여전히 산타의 존재를 믿는 우리 집 아이들이 친구들과의 논쟁 끝에 상처를 받거나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성탄절 아침 마다 "어머, 산타할아버지가 밤새 다녀가셨네"라면서 어설픈 연기를 했던 부모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비뚤어질지도 모른다. "엄마, 아빠는 거짓말쟁이!"라고 외치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가는 아이를 상상해 보라. 아이가 진실을 알기 전에 이실직고 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반면, 산타에 대한 동심을 지켜줄 필요가 있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크리스마스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아이들. 우리 집에는 굴뚝이 없어서 산타가 그냥 지나칠지 모른다는 작은 아이와 선물 주러 오는 동안 썰매는 어디에 주차해야 할지 고민하는 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간은 인생에서 길지 않다. '요즘은 보일러실 창문으로 들어오시고, 크리스마스에는 경비아저씨가 불법주차 스티커를 안 붙이신대'라고 아이들을 달래는 재미도 쏠쏠하다.

산타가 허구였음을 알게 되면 아이들은 상상의 나래를 접을 지도 모른다. 유치원에 다녀간 산타는 등록금 마련하려고 나온 대학생 형이었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나는 루돌프 썰매가 컴퓨터그래픽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부터 아이들을 기다리는 건 퍽퍽한 삶 뿐이다. 루돌프 사슴의 반짝이는 코보다 녹용이 더 귀한 값을 쳐준다는 걸 알아챈 아이들의 인생은 생각만 해도 씁쓸하다.

며칠간 치열하게 고민했다. 산타의 비밀을 누설할 것인가? 아니면 지켜줄 것인가? 우주의 비밀을 풀 열쇠 하나를 가지고 하루 종일 열쇠구멍에 넣다 빼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와중에 내 어린 시절의 산타가 떠올랐다.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의 성탄절로 또렷이 기억한다. 살림살이 뻔히 알면서 요즘 아이들처럼 장난감 사달라고 졸라댈 정도로 분별력이 없진 않았다. 산타할아버지께 장문의 편지를 썼다(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다섯 살에 한글을 깨쳤다).

결국 나의 선택은...

크리스마스 트리와 산타 양말-2 산타에게 쓴 편지가 들어 있는 양말을 트리에 걸어두었다. ⓒ 이정혁


내용은 이랬다. 내년에 국민학교를 가야 하는데, 부모님 형편이 좋지 않아서 가방이랑 학용품을 사주실지 모르겠다. 산타할아버지께서 책가방이랑 필통이랑 공책을 사주시면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을 약속하는 바이다.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러저러한 법적, 도덕적 책임을 지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그 선한 의도만큼은 진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산타는 나의 제안에 흔쾌히 응했다.

그 시절, 내게 선물을 보내준 산타가 떠오르는 순간 이미 갈등은 막을 내렸다. 산타는 소년의 바람에 친절히 응했다. 그 소년은 자라서 훌륭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산타의 뒤통수를 치려고 한다. 내가 산타라면 참 슬플 것이다. 이러려고 산타가 됐나 자괴감이 들 법도 했다. 마음이 부끄러웠다.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번 주 일요일이 크리스마스인거 알지? 산타 할아버지 오실 건데, 선물 받으려면 미리 편지를 써야 해. 1년 동안 착한 일 한 거랑, 받고 싶은 선물 적어서 양말에 넣어두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책상에 앉아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35년 전, 방바닥에 엎드려 산타에게 편지를 쓰던 소년이 오버랩 된다. 산타클로스는 그때도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꼭 눈으로 보이는 것만이 존재하는 건 아니다. 평생 동안 오로라를 보지 못한 사람도 오로라의 경이로움을 의심하지 않듯이.

조만간 아이들은 산타의 존재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서서히 멀어져 갈 것이다. 산타할아버지, 제가 당신을 지켜 드릴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산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면서부터 순수함이 사라져 간다고 한다. 몇 살부터 산타를 믿지 않으셨나요? 누군가 내게 물어 온다면, 나는 몇 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산타클로스 #크리스마스 #루돌프 썰매 #착한남자콤플렉스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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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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