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느끼는 '부심', 광장 밖에서의 자유

등록 2016.12.14 10:48수정 2016.12.14 11:26
0
원고료로 응원
"진짜 놀 줄 모르는 애들이네."

누구나 인정할 만한 세계적인 힙합 가수의 내한 공연이었다. 무대 바로 앞에 자리를 잡기 위해 그날은 한여름 땡볕에서 땀을 뻘뻘 흘려도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 뿐이었다. 해가 지기 시작할 무렵이 돼서야 시작된 공연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환상적이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옆에 있는 관중들은 모두 땀에 절어 환호성을 질렀다. 두 발로 방방 뛰며 나는 공연의 흥을 몸소 즐겼다.

그런 나에게 무대 저 멀리 계단식 좌석에 앉아 공연을 즐기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을 가기 위해 간신히 군중의 무리를 뚫고 나온 나에게 그들은 정말 '놀 줄 모르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입석도 아닌 좌석에서 손만 대충 까딱거리는 그들이 진짜 이 공연을 즐기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공연이 끝나고 나가는 길, 그들은 땀에 젖은 나와는 달리 뽀송한 얼굴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분명 공연을 충분히 즐겼다는 표정들이었다. 코앞에서 가수를 보며 관중들과 함께 호흡한 나에 비하면 그들이 느낀 감동은 절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좌석의 관중들에게 일종의 우월감을 느꼈다.

a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의 바다와 적막한 청와대 '촛불의 선전포고-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 6차 범국민행동'이 열린 3일 오후 촛불로 밝혀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뒤로 적막한 모습의 청와대가 보인다. ⓒ 사진공동취재단


요즘 유행하는 말로 '부심'을 느낀 것이 사실이다. 부심이란 한 개인이 무언가에 대해 지나친 자부심을 표출하는 행태를 비꼬는 신조어다. 서울 강남에 사는 것을 자랑한다면 '강남부심', 육군, 공군이 아닌 해병대 출신임을 강조하는 남성들에겐 '해병대 부심'이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그런데 요즘 주말마다 이뤄지는 민주집회에 다녀온 몇몇 이들에게도 이러한 '부심'의 빛을 얼핏 느낀다. 매 주말마다 데이트를 겸해 집회에 잠깐이라도 참여한다는 지인은 두어번 집회에 들른 나를 꾸짖으며, 매 주말마다 가야 하지 않겠냐며 은근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 날 좌석에 앉아 있던 놀 줄 모르는 애들이 떠올랐다.


광장에 참여하는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분명 좋은 현상이다. 모든 시위는 폭력적이고 정치적일 것이라는 기존의 집회, 시위에 대한 편견이 이번 대규모 평화시위로 인해 많이 희석된 것은 꽤나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의 계몽주의적 행태로 나아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만이 진정한 민주시민이고, 광장 결집만이 작금의 불합리한 문제에 대해 저항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광장이 허락한 자유의 가치에 정확히 반대된다.

현실적인 문제로 집회에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다른 방법으로 민주시민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장소가 어디든 개인은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 있을 권리가 있다. 광장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것을 원하더라도 누구는 좀 더 가까이, 좀 더 다가가 보고자 하는 반면, 누군가는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기를 원할 수 있다.

광장 안은 분명 전보다 자유로워졌다. 시위 초기 군중과 어울리지 못했던 노조, 시민운동 세력도 이제는 광장 안에서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신 광장 안에서의 자유가 광장 밖에 있는 이들의 자유를 위협하려 하고 있다. 광장은 군중들의 뜨거운 열기와 함성이 쏟아져 나오는, 촛불로 치자면 심지에 붙은 뻘건 불씨다.

하지만 초가 빛나기 위해선 불씨를 둘러싼 은은한 빛이 있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광장에 선 촛불들은 우월감에 젖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광장 #광화문광장 #평화시위 #촛불 #불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아파트 놀이터 삼킨 파도... 강원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3. 3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4. 4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5. 5 나의 60대에는 그 무엇보다 이걸 원한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