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동성애 옹호 '아니'라는 반기문, 이 영화부터 보시라

[하성태의 사이드뷰] 트렌스젠더 딸, 싱글맘 엄마, 레즈비언 외할머니... <어바웃 레이>

16.12.13 16:36최종업데이트16.12.13 16:36
원고료로 응원

<어바웃 레이>에서 트랜스젠더 소년 레이를 연기한 엘르 패닝. ⓒ 오퍼스픽쳐스


"<걷기왕>으로 시작해 <비밀은 없다>-<아가씨 확장판>-<연애담>-<캐롤>로 이어지는 12월 18일 일요일은 올해 기획전의 특징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하루입니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이 많고 또 좋은 해였어요."

매해 한 해를 마무리하며 좋은 영화들을 재확인하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는 <2016 CINE ICON: 상상마당 배우기획전>. 홍보 담당자가 언급한 오는 18일 프로그램 외에도 <고스트 버스터즈> <스틸 플라워> <우리들> 등 유난히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들이 풍년인 한 해였고, 그 수준과 의미도 남다른 작품들이 다수였다.

여기에 한 편을 더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타이틀 롤을 맡은 엘르 패닝을 비롯해 나오미 왓츠, 수잔 서랜든 등 각자 다른 성적 지향을 지닌 캐릭터를 연기한 검증된 배우들의 잔잔하고 호소력 있는 연기가 눈에 띄는 <어바웃 레이>가 바로 그 작품이다.

아마 개봉 시기가 조금만 일렀다면(지난달 24일 개봉), '2016 CINE ICON'에서 함께 만나 봐도 좋았을 작품임이 틀림없다. 여성과 가족, 성차에 관한 이야기에 목말랐던 관객들이라면 분명히.

"손녀야,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니..."

영화 <어바웃 레이>의 한 장면. 이 가족의 선택에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까. ⓒ 오퍼스픽쳐스


'새로운 가족의 탄생'까진 몰라도, 분명 세상에서 흔치 않은 가족 구성원이리라. 주인공 레이(엘르 패닝 분)의 가족이 그러하다. 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레즈비언 외할머니 돌리(수잔 서랜든 분)와 '싱글맘'인 매기(나오미 왓츠 분), 그리고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지만 4살 때 스스로 남성임을 자각하고 성전환을 위한 호르몬 요법을 받는 16세 소년 레이.

뉴욕에서 살아가는 이 '삼대'의 고민은 어쩔 수 없이 트랜스젠더로 태어난 레이의 평범한 삶으로 수렴된다. <어바웃 레이>의 지향이 그러하다. 호르몬 요법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전학을 가서 새 출발을 하고 싶은 레이와 그러한 딸의 선택을 지지하면서도 모든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 엄마 매기, 그런 둘을 지지하고 응원하면서도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면 안 되겠느냐"라며 걱정하는 할머니 돌리.

영화는 이러한 세 사람의 관계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 간다.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아니, 어찌 그럴 수 있겠나. 레이는 끊임없이 내외적 고민과 마주하는 중이다. 성적 정체성은 확고하지만, 치료의 효과도 효과거니와 자신을 바라보는 또래들의 시선과 때때로 가해지는 물리적 폭력까지 감내해야 한다.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주는 가족들이 때때로 보내는 불완전한 눈빛도 이 10대 소년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그 갈등이 폭발하는 지점으로 게비 델랄 감독은 아버지의 존재를 끌어온다. 병원에서 양측 부모의 모두의 동의서를 요구하면서, 레이의 진짜 아빠가 누구인지 하는 사실이 레이와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크게 염려할 것은 없다. <어바웃 레이>는 그 감정들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다룰 줄 안다.

영화 속 캐릭터들이 레이가 성장하는 시간 동안 염려하고 배려했던 감정들을 함부로 훼손시키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의 도드라지는 장점이자 매력이라 할 만하다. 전통적으로 가족영화라는 장르가 지닌 편안함과 안정성을 활용하면서도, 주제의 의미망을 훼손하지 않는다고 할까.

<어바웃 레이>가 한국에서 만들어진다면 

영화 <어바웃 레이>의 한 장면. 성 소수자 버전의 대안 가족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 ⓒ 오퍼스픽쳐스


게비 델랄 감독은 뉴욕과 런던에서 이성애 가족과는 다른 여러 다른 형태의 가족들을 접하게 되면서 "수십 년간 변화된 성과 성별에 관한 생각들"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그러면서 "변화된 문화 속에서 틴에이저를 키우는 일"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 마치 예전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이 이성애 안에서 '대안 가족'의 가능성을 모색했다면, <어바웃 레이>는 '여성 삼대'와 성 소수자 버전의 대안 가족의 현재형을 제안하고 있다.

무리 없는 서사 구조와 편안한 편집, 딱히 힘을 들인 것 같지 않은 배우들의 연기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중화시키는 <어바웃 레이>의 강점이다. 다만, '가족'에 무게를 두면서 '레이'의 내면에 도드라지게 강세를 주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니까, 성 소수자 고민과 가족 간의 갈등을 아우르려는 욕심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결과랄까.

음악과 영상에 관심을 두고 남성성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성 소수자 틴에이저와 매기나 돌리의 시선에서 보살펴줘야 하는 존재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레이의 이중적인 내면에 좀 더 천착했으면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도 그 때문이다. 후반부 레이의 아버지와 결부된 극적 갈등이 다소 손쉽게 해결된 부분 가족드라마로서의 봉합과 해피엔딩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그런데도, 확연히 달라진 외모의 엘르 패닝이 연기한, 이 레이의 고민을 접할 수 있다는 점만으로 <어바웃 레이>는 분명 의미 있는 작품으로 남을 만하다. '성 소수자로서 이 사회에 살아남기'라는 주제와 함께 10대 성 소수자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모색하는 어른 세대와 가족의 모습을 그리는 것만으로, <어바웃 레이>는 분명 그 가치를 인정받을 만하다.

이러한 소재를 위트와 여유를 탑재한 채 균형까지 잡기가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더욱이 생경한 방식이 아닌 일반 관객들의 심리적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는 가족드라마의 형태로 재현해내려는 시도는 주목해야 마땅해 보인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지난 5월 30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국내일정을 마치고 출국하고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특히 한국 관객들에게 <어바웃 레이>는 그래서 더 오래오래 꺼내 볼 만한 작품으로 남아야 할 듯싶다. 불과 3년 전 "동성애를 금기시하는 한국이 우려된다"던 반기문 유엔총장이 대선을 염두에 둔 듯 최근 "동성애를 옹호한 적 없다"는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TV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반기문 총장은 임덕규 전 국회의원에게 "동성애를 지지하고 찬양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다. 2010년대 들어 성 소수자를 향한 한국 보수층과 개신교의 광기 어린 공격을 염두에 두고 대권 행보에 나서는 건 아닌지 '우려'되는 대목이다.

그들 모두에게, 가족의 입장에서 성 소수자의 갈등과 처지를 간적 체험해 볼 수 있는 시청각 자료로서 <어바웃 레이>를 추천하는 바다. 짓는 미국의, 서구의 이야기로 한정 지어도 좋다. 그만큼 한국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성 소수자에 대한)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이 '후지고' 낙후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퇴행했던 사회를 다시 진보시킬 수 있지 않겠는가.

'여성'으로 시작해 성 소수자와 가족으로 갈무리하는 <어바웃 레이>는 이대로 극장에서 떠나보내기엔 아쉬운 영화다. 아니, 한국판 <어바웃 레이>를 보고 싶게 만드는 작품이다. <어바웃 순이>면 어떠한가. 한국의 성 소수자들과 그들의 손을 잡는 이성애자 가족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날을 앞당기려면, 먼저 <어바웃 레이>와 같은 선행학습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어바웃레이 성소수자
댓글1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