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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높은 곳에 있었지만, 모든 것을 보진 못한 눈

[리뷰] <아이 인 더 스카이>, 당신은 하늘의 눈을 믿는가?

16.11.27 16:12최종업데이트16.11.28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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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인문학 열풍이 불던 시절,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윤리적 딜레마와 관련된 질문들을 종종 받곤 했다. 가령 이런 식의 질문이다. 한창 달리는 기차의 선로 위로 한 사람이 쓰러진다. 만약 기차가 멈추지 않고 달린다면, 그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차를 무리하게 멈춘다면, 승객들의 크게 다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이 질문 뒤로 학창 시절 윤리 교과서에서 보았을 법한 대화들이 종종 이루어지곤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차는 그냥 달려야 한다는 입장, 한 사람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입장 등등.

나의 경우,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질문을 마주하면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가정이라지만 사람의 목숨을 값으로 윤리적 논쟁 나누자는 것도 불편했거니와 각자가 선택한 도덕적 가치관이 그렇게 현실에서 단순하게 관철되는 것을 본적도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마치 장기 훈수를 두듯이, 특정한 딜레마 앞에서의 최선을 말할 수 있는 건 제 3자의 입장일 때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마치 게임처럼 질문을 던진 사람에게 거꾸로 질문해보곤 했다. 만약 본인이 선로 위에 쓰러진 사람이라면 어떤 게 맞다고 하시겠냐고. 만약 당신이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그 둘 중 하나가 본인의 가족이라면 그때는 무엇이 옳은 일이라고 말하겠냐고.

<아이 인 더 스카이>가 그리는 복잡한 딜레마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스틸컷 ⓒ 엔터테인먼트 원


아마도 언급한 질문의 매우 현실적인 버전이 바로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내용일 것이다. 영화는 드론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을 사살하는 임무를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다룬다. 줄거리는 이렇다. 영국 합동사령부의 파웰 대령은 드론을 통해 자신이 6년 동안 쫓던 테러리스트를 발견한다. 더불어 이들이 자살폭탄 테러를 앞두고 있다는 사실 또한 발견하게 된다. 생포 임무는 이런저런 논쟁 끝에 사살 임무로 변경되고, 드론은 미사일 발사를 준비한다. 그러던 중 드론의 조종을 맡은 와츠 중위는 목표 지점 근처에서 빵을 파는 소녀를 발견하게 되고, 이 소녀의 안전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미사일을 쏠 수 없다고 거부한다.

어쩌면 테러범 소탕에 눈이 먼 냉혹한 지도부와 소녀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도덕적인 조종사의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펼쳐진 이야기는 단순한 양자택일의 늪에 빠지는 것을 지양한다. 대신 영화는 하늘의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는 군인, 직접 미사일을 쏴야하는 조종수, 그리고 폭격의 현장에 있는 요원과 이 모든 사태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하는 관료들의 모습을 능란하게 담아낸다. 말하자면 다양한 인물들이 점한 서로 다른 위치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선택의 간극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늘에 있는 눈'을 믿지 말라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스틸컷 ⓒ 엔터테인먼트 원


아마 이 영화를 보며 누구의 선택이 옳고 그른가를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화 역시도 몇몇 캐릭터만을 특별히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모든 캐릭터들은 각자가 보고 믿는 것에 기대,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가장 옳다고 믿는 결단을 내릴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정답이 뭐냐(즉, 우리는 누구를 선한 주인공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을 지지해야 하느냐)'를 질문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영화는 그런 것에 관심없다. 대신 나는 이 영화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건 어쩌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눈, 영화의 제목처럼 '하늘에 있는 눈'이 모든 것을 정확하게 보고 있다고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는 가장 멀리 떠있는 눈이 모든 상황을 조망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눈이라고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그 시선을 쉽게 신뢰하곤 한다. 하지만 '객관'이 전제하는 것은 특정 대상이나 상황과의 거리다. 이는 '멀어짐'을 의미하지, 그것 또한 하나의 위치이자 입장이 아님을 의미하진 않는다. 말하자면 우리는 객관을 주관의 반대어라고 생각하지만, 멀어진 그 위치도 하나의 주관이 될 수 있다. 가령 이 영화에는 '부수적 피해'라는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한다. 타격 지점과 다른 나라의 지하 벙커에 있는 사람에게야 주변 민간인들의 피해는 '부수적'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미사일을 쏘거나 혹은 그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 가장 멀리 떠있던 그 눈은 수긍할 만한 판단을 내렸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의 스틸컷 ⓒ 엔터테인먼트 원


그래서 종종 추상적인 차원에서 '무엇이 정의이고 윤리적으로 옳고 그른가'를 질문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나는 우선 스스로의 '위치 점검'과 '맥락 파악'을 할것을 요청하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런 작업 없이 특정한 도덕적 입장을 채택한다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다. 생명은 소중하고 불의에는 저항해야 한다? 진짜 문제는 그 순간에 무엇을 포기하고 누가 댓가를 치를 것인가다. 나의 위치를 질문하지 않는다면, 왜 나에게 어떤 것은 '부수적'일 수 있는지를 생각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에 부수적 피해가 아니라 치명상을 입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이것이 '해일이 오는데 조개나 줍는다'의 결과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에서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 등장한 드론(하늘에 있는 눈)을 기억하지만, 정작 그 눈을 통해 상황을 보고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파웰 대위가 있던 곳을 잊곤한다. 그녀는 세상과 가장 동떨어져 있는, 깊은 땅 속의 지하 벙커에 있었다. 모든 것을 보고 있지만 정작 아무것도 들을 수 없는 곳. 나는 이 극단적인 공간 배치가, 사람들이 그토록 욕망하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눈'에 대한 정확한 은유라고 생각한다.

아이 인 더 스카이 윤리 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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